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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구하려면 침실로 들어와"…'300억 스타'의 기막힌 운명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아르데코의 여왕'
타마라 드 렘피카(Tamara de Lempicka)
타마라 드 렘피카(Tamara de Lempicka)
그녀에겐 비밀경찰에 잡혀간 남편이 있었습니다. 생사도 알 수 없는 남편을 찾으러 헤매던 그녀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평소 안면이 있던 스웨덴 영사를 찾아갔습니다. 영사는 며칠을 굶은 그녀에게 음식을 내주고, 허겁지겁 배를 채우는 그녀를 잠시 지켜봤습니다. 그리고는 비릿한 미소를 띠고 용건을 말했습니다. “도와주겠소. 하지만 삯을 치러야 할 거요.” 그녀는 스웨덴 영사가 무엇을 원하는지 본능적으로 알아챘습니다. 도덕이냐, 나와 남편의 생존이냐. 그녀는 후자를 택했습니다.
그날 밤, 그녀는 맹세했습니다. 다시는 굶주린 약자가 되지 않겠다고. 내 운명을 스스로 헤쳐 나가는 승리자가 되겠다고 말입니다.
1920년대 강렬한 그림으로 ‘아르데코의 여왕’이라 불리며 유럽 미술의 한 시대를 풍미한 타마라 드 렘피카(1898~1980). 루이 뷔통과 카를 라거펠트, 마돈나와 잭 니컬슨 등 수많은 명사에게 영감을 줬고, 2020년대 들어 작품이 300억원에 낙찰되는 등 화려한 부활을 겪고 있는 그녀의 드라마틱한 삶은 이 차가운 밤거리에서 시작됐습니다.
소녀, 다시 태어나다
1898년 폴란드 바르샤바의 부잣집에서 태어난 타마라는 장밋빛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10대에 접어든 그녀는 러시아 제국의 수도이자 당시 유럽에서 가장 화려한 도시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 사교계에 데뷔했습니다. 타마라는 똘똘하고 허영심 넘치는 아가씨였습니다. 그녀의 꿈은 단 하나. 잘생기고 돈 많은 남자를 만나 평생 공주처럼 사는 것이었습니다.
타마라는 자신의 전략적인 기질을 발휘해 이 상황을 돌파합니다. 경쟁자들이 입은 화려한 드레스 대신 시골 처녀로 분장한 뒤, 살아있는 거위 한 마리를 끌고 가장무도회에 나간 겁니다. 이 엉뚱하고 당돌한 매력으로 그녀는 바람둥이 타데우시의 시선을 훔치는 데 성공했습니다. 타데우시는 그녀를 택했고, 1916년 둘은 결혼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듬해인 1917년 터진 러시아 혁명이 모든 걸 바꿨습니다. 거리에서 총성이 울리고 세상이 뒤집혀도 부부는 애써 현실을 외면했습니다. “설마 우리한테 무슨 일이 생기겠어? 우린 부자야.” 하지만 12월의 어느 밤, 비밀경찰이 아파트에 들이닥쳐 남편을 잡아가면서 악몽은 현실이 됐습니다. 타마라는 남편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습니다. 스웨덴 영사를 찾아간 것도 남편을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평소 타마라를 눈여겨보던 영사는 대가를 요구했고, 결국 비극적인 ‘거래’가 이뤄졌습니다.
영사의 도움으로 위조 여권을 얻어 핀란드로 탈출한 타마라. 얼마 후 우여곡절 끝에 풀려난 남편과도 다시 만나게 됐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이미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감옥에서 겪은 고통, 재산을 모두 잃고 도망쳤다는 사실, 어렴풋이 짐작이 가는 아내의 ‘거래’…. 남편은 우울증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반면 타마라는 그런 남편이 한심했습니다. 자신을 비참한 운명에 빠트린 남편에 대한 원망, 무기력한 남편에 대한 혐오, 그리고 스스로 가족을 구해냈다는 우월감이 뒤섞여 하나의 감정으로 굳어졌습니다. 경멸이었습니다.
타마라, 붓을 든 여왕이 되다
문제는 방법이었습니다. 가진 기술도, 돈도 없는 망명자 타마라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타마라는 파리 건축학교 유학 중이라 혁명의 불길을 피했던 여동생을 만나 이런저런 하소연을 했습니다. 여동생은 말했습니다. “언니는 뭐든 할 수 있어. 그림을 그려. 언니한테는 화가의 재능이 있잖아!” 이 말은 타마라의 인생을 바꾸는 계시였습니다. 그녀는 그길로 화방에 달려가 팔레트와 물감을 샀습니다.
여기에 더해 타마라는 자신의 이미지를 포장하는 천재적인 감각을 발휘했습니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녹색 부가티를 탄 자화상’에 이런 전략과 감각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사실 그녀는 작은 노란색 르노 자동차를 탔지만, 그림 속의 타마라는 당대 최고급 스포츠카인 녹색 부가티 핸들 위에 가죽 장갑 낀 손을 얹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운명, 남성들을 포함한 이 세상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선언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녀는 욕망에 충실한 파리 사교계의 ‘스캔들 메이커’였습니다. 대중적이면서도 독창적인 화풍, 여기에 더해 스타성까지. 타마라는 어느새 사람들 사이에서 ‘아르데코의 여왕’이라 불리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 격정적인 전보를 처음 본 건 타마라가 아니라 남편이었습니다. 평소 타마라의 불륜을 눈감아 주던 남편의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애증이 뒤섞인 관계였지만 타마라는 남편을 붙잡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지칠 대로 지친 남편은 결국 떠나버렸습니다. 타마라는 그동안 그리던 남편의 초상화 속 왼손, 결혼반지가 있어야 할 자리를 미완성으로 남긴 채 마음을 정리했습니다.
작전은 적중했습니다. 그림을 볼수록 남작은 나나의 천박함과 변덕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반면 이런 작품을 그린 타마라의 매력과 재능은 점점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결국 남작은 나나와 결별하고 타마라를 선택했습니다.
여왕, 추락하다
1939년, 유럽에 다시 제2차 세계대전의 먹구름이 드리울 때였습니다. 오스트리아 알프스로 신혼여행을 떠난 타마라의 눈에 한 무리의 제복을 입은 금발 소년들이 들어왔습니다. 히틀러 청소년단(나치 유겐트)였습니다. 순간 그녀는 20년 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겪은 악몽에 사로잡혔습니다. 전쟁과 혁명의 피비린내를 맡은 타마라. 그녀는 남편 쿠프너를 거세게 다그쳤습니다. “당장 전 재산을 파세요. 우린 미국으로 가야 해요.” 쿠프너는 무슨 소리냐며 주저했지만, 집요한 설득에 결국 타마라의 말을 따르게 됩니다.
하지만 그녀는 곧 깨달았습니다. 이곳에서 자신은 위대한 예술가가 아니라, 그저 신기한 구경거리라는 사실을요. 누군가가 별 생각 없이 한 칭찬은 타마라의 자존심을 비수처럼 찔렀습니다. “타마라 남작 부인은 정말 재미있고(she is such fun), 그녀의 그림도 정말 재밌어(her pictures are so amusing).” 영혼을 울리는 감동과 감탄이 아니라,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인 잠깐의 재미와 웃음이라니. 진지한 예술가를 자처하던 타마라에게는 충격적인 모욕이었습니다.
좌절은 분노가, 분노는 광기가 되었습니다. 한 갤러리 주인이 그녀의 신작 전시를 정중히 거절하자, 타마라는 그 자리에서 바로 캔버스를 갈가리 찢어버렸습니다. 그녀를 위대한 화가로 만들었던 집념은 이제 병적인 강박이 되어 딸과 주변 사람들을 괴롭혔습니다.
말년에 그녀의 전성기 아르데코 그림을 재평가하는 바람이 반짝 불기도 했습니다. 은둔 생활을 하던 타마라는 70대에 접어든 나이로 다시 붓을 잡았습니다. 하지만 손은 예전 같지 않았습니다. 결과물은 전성기 작품 특유의 칼 같은 선과 빛나는 색채가 사라진, 초라한 모작(模作)에 불과했습니다.
멕시코 화산에 부는 바람
그녀는 격동의 시대에 맞서 자신의 운명을 멋지게 개척했고, 독창적이고 스타일리시한 작품으로 성공을 거둔 시대의 아이콘이었습니다. 1920~1930년대 서양 사회를 멋지게 묘사해낸 타마라의 업적은 최근 미술계에서 재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2020년 그녀의 작품 ‘마르조리 페리의 초상’이 약 311억 원에 낙찰된 게 이를 증명합니다. 평론가 세바스찬 스미는 이렇게 말합니다. “타마라는 속도, 성(性), 그리고 여성의 독립성을 찬미하며 한 시대를 풍미했다. 마치 최고의 패션 사진가들처럼.”하지만 스미는 여기에 덧붙여 냉정한 평가를 내립니다. “나는 이 그림들의 흠 잡을 데 없는 아름다움이 이제 낡아 보인다. 이 작품들은 벼락부자들의 환상을 맞춰주려는 듯한 느낌을 준다. 작품을 보고 난 후, 나는 그 시대가 아닌 지금 현실로 다시 돌아오고 싶어진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이 그림들이 없어도 살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타마라의 이야기. 평생을 자기 뜻대로 세상을 움직이려 했던 그녀, 유언장조차 수없이 고쳐 쓰며 마지막까지 삶의 통제권을 놓지 않으려 했던 타마라는 1980년 멕시코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어머니의 부고를 들은 딸 키제트는 짧게 내뱉었습니다. “음, 이제 끝났어(Well, it’s finished).” 그동안 어머니에게 시달렸던 세월을 생각하며 내뱉은 짧은 탄식이었습니다.
마지막 순간, 타마라는 자신의 뼛가루를 멕시코의 포포카테페틀 화산 분화구에 뿌려달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끝까지 극적이고 싶었던 타마라다운 선택이었습니다. 딸은 그 말에 따라 헬리콥터를 타고 화산 위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거센 바람이 불어닥쳤습니다. 허공에 뿌려진 타마라의 뼛가루는 분화구로 떨어지는 대신 역풍을 타고 다시 헬리콥터 안으로, 딸의 옷 위로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자신의 마지막 장면까지 완벽하게 연출하려 했던 타마라. 하지만 최후의 순간 헬리콥터 안으로 들이닥치는 바람으로 그 의지는 물거품이 됐습니다. 운명과 의지의 줄다리기, 그 사이에서 펼쳐지는 드라마와 더없이 극적인 아이러니야말로 타마라의 삶과 예술을 관통하는 주제이자 독특한 매력의 원천이었습니다.
**이번 기사는 Tamara de Lempicka: A Life of Deco and Decadence(Laura Claridge 지음), Tamara de Lempicka(Gilles Néret 지음), Passion by Design: The Art and Times of Tamara de Lempicka(Kizette de Lempicka-Foxhall 지음) 등을 참조해 작성했습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