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이름 없는 약속들로부터>1)를 추동하는 것은 결론이 아닌 ‘질문’이다. 결말에서 우현과 인경은 “어제보다 오늘이 더 나은 내일임을 문득 알게 되는 언젠가”에 닿을 수 있을지 질문하는 노래를 부른다. 보도연맹 학살지에서 각자 부르는 두 사람의 노래는 희망과 냉소, 희구와 자조 사이 어딘가에서 맴돈다. 그들의 노래는 희망의 끝을 붙잡고 있는 한 편의 꿈과 같다. 끝없는 혐오와 배제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더 나은 미래’는 없다는 메시지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름 없는 약속’을 기다린다는 희망이 충돌한다.
뮤지컬 <이름 없는 약속들로부터> 공연 사진 / 제공. 오차드뮤지컬컴퍼니
뮤지컬 <이름 없는 약속들로부터> 공연 사진 / 제공. 오차드뮤지컬컴퍼니
서로를 거울처럼 비춰주는 그들

<이름 없는 약속들로부터>는 여전히 모두 규명되지 않은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정면으로 다룬다. 보도연맹은 1948년 10·19 여순사건을 계기로 제정된 국가보안법에 의해 1949년 4월 창설되었다. 과거 좌익 경력을 가진 사람들 중 전향자를 보도(保導: 보호하고 지도)해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새로 출발할 수 있게 해준다는 취지를 표방했다.2) 하지만 실제로는 중도파를 포함하여 정치와 무관한 일반 국민도 보도연맹에 다수 가입했다. 보도연맹에 가입하면 생계를 지원한다는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으며, 가입자들은 대규모로 학살되었다. 한국전쟁 초기 국군이 급속히 패퇴하던 시점 남한의 국가기구인 군경은 연맹원들을 예비검속하고 학살했다. 군경에게 그들은 공산주의자들과 내통할 잠재적인 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름 없는 약속들로부터>의 질문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그들은 왜 학살당해야 했는가, 그들을 학살했던 사람들은 누구인가, 가해자와 피해자의 ‘그 이후’는 한국의 역사를 어떻게 이어가고 구성하고 있는가. 윤섭과 인경은 이 질문들을 각자의 위치에서 심화하고 이어가는 인물들이다. 국민보도연맹 사건의 당사자인 가해자 윤섭과 피해자 인경은 해결되지 않은 과거에 사로잡혀 현재를 살아간다. 윤섭은 스스로 무너지지 않도록 ‘지켜야 할 것’을 강박적으로 움켜쥐고 있으며 인경은 아버지의 비극적인 죽음을 규명하기 위해 현재가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두 사람의 지금/여기는 그래서 위태롭다.
뮤지컬 <이름 없는 약속들로부터> 공연 사진 / 제공. 오차드뮤지컬컴퍼니
뮤지컬 <이름 없는 약속들로부터> 공연 사진 / 제공. 오차드뮤지컬컴퍼니
공연은 이들을 이분법의 논리로 다루지 않는다. 피해자는 선하고 가해자는 악하다는 통상적 관념을 떠나 있다. 윤섭은 유약했다. 대범한 형 대신 순경이 된 것은 형이 온전히 지고 있는 삶의 무게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윤섭은 친일파였던 서장의 지시로 올라간 서울에서 전쟁에 징집되어 충북 온수로 흘러 들어가 민간인 학살에 나선다. 윤섭은 ‘그들’이 빨갱이 부역자가 아니라 민간인이었으며 심지어 보도연맹원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에 빠지지만, 상부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한 상황에 놓인다. 심지어 그는 죽은 피해자들을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방법까지 제시하는 무감각한 상태가 된다.

인경은 어린 시절, 자신을 가장 지지해 주던 아버지를 보도연맹 사건으로 잃었다. 온수 신문사 기자였던 아버지는 검속 명단에 있었으나 소집에 응하지 않았다. 어린 인경은 아버지가 도민증을 받으러 오지 않는다며 집을 찾아온 군인에게 초콜릿을 받고 대신 아버지의 소재를 알려준다. 이후 인경은 부패한 시체 더미에서 아버지를 찾았으나, 그 기억은 인경을 끝없는 죄책감으로 밀어 넣는다. 그리고 대학 진학 후 전국 양민 학살 유족회 청년학생위원장이 되어, 양민 학살의 진상 규명을 위해 스스로 몸을 불태우도록 만든다. 같은 역사가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공적인 목적과 사적 복수의 감정이 뒤얽혀 거대한 증오가 인경을 감싼다.

하지만 윤섭과 인경은 마치 서로를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 윤섭의 민간인 학살은 그의 의지와 무관했으나 사실 그는 인경의 아버지를 죽게 만든 군인-당사자였으며 인경은 피해자 중심의 윤리를 내세워 윤섭의 동생, 학교 후배 우현을 가해자 가족으로 대상화한다. 악몽과 죄책감에 시달리는 일상도 동일하다. 윤섭은 희택을 포함한 온수 사람들을 보도연맹원으로 가입시킨 과거의 사건에 여전히 사로잡혀 있다. 윤섭의 할당량을 함께 채우고자 했던 형 희택의 ‘순수한’ 도움이 희택 자신은 물론이고 마을 전체의 비극을 만든 사건은 윤섭에게 강박이 되어 떠돈다. 마찬가지로 인경에게 초콜릿은, 피처럼 달고 쓴 죄책감이자 악몽의 근원이다.
뮤지컬 <이름 없는 약속들로부터> 공연 사진 / 제공. 오차드뮤지컬컴퍼니
뮤지컬 <이름 없는 약속들로부터> 공연 사진 / 제공. 오차드뮤지컬컴퍼니


불완전한 인간, 끝없이 분파되는 우리

이처럼 극을 이끄는 두 인물을 선악으로 나누지 않는 공연의 관점은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킨다. ‘우리’가 ‘그들’과 ‘우리’로 끝없이 분파되고 갈등하는 현재의 역사는 국민보도연맹 사건이 벌어졌던 과거의 연장선 위에 있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역사의 반복은 무엇보다 ‘인간의 불완전성’에 근거한다. 반복과 질시, 그리고 헤게모니 싸움으로 이어지는 역사 위에서 인간은 ‘보다 더 나은 이해’ 안에 존재한다기보다 ‘달리 이해하는 가능성’ 안에 존재한다. 따라서 공연은 또다시 다음의 질문을 남긴다. 양심 고백을 준비하던 윤섭을 아들 선욱의 울음소리가 돌려세운 결말에 대해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그의 권총 자살은 비겁한 아버지의 마지막인가, 속죄 의식의 발로인가? 끝내 완성될 수 없는 질문을 품은 채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는 <이름 없는 약속들로부터>는 역사 뮤지컬의 새로운 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최승연 뮤지컬 평론가
1) 2025. 10. 10~12. 28, 제작 오차드뮤지컬컴퍼니, 극장 온
2) 김학노,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 형성의 헤게모니 투쟁으로서 국민보도연맹 사건」, 󰡔한국정치학회보󰡕 57집 1호, 한국정치학회, 2023, 8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