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처럼 나아가보는 영화 ‘어쩔수가없다’

음악회와 영화는 닮은 구석이 있다. 가장 먼저는 시작되면 문이 닫힌다는 것. 마에스트로와 오케스트라가 표현하고자 하는 음악은 무엇인가에 대해 상상하고 분석하며 즐거움의 나래를 달고 청중 각자의 머릿속으로 비상하는 일. 그리고 서사, 영상, 음향을 직조해 픽션이라는 허구와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낸 영화의 세상 속으로 뛰어 들어가 보는 일. 삼백 년 넘게 인정받아온 음악을 현재를 살고 있는 음악가들이 연주해 내는 일. 19세기 말 탄생한 영화가 축적해 온 기술을 박찬욱 감독과 그의 스태프들이 오늘의 이야기로 구현해 내는 일. 비슷한 두 시간 남짓의 예술을 구현하는 두 장르는 그렇게 닮았다. 두 시간 남짓의 예술을 표현하기 위해 그 뒤로 얼마나 많은 노력과 고생이 들어가 있을 것인가 짐작해 보는 일이 그리 어려울 것 같지는 않다. 객석의 문이 닫히기 전, 영화 속에 무수히 등장하는 조연인 ‘나무’와 ‘하늘’을 관객 스스로 어떻게 정리하고 영화를 바라볼 것인가는 빼먹지 말아야 할 숙제 같기도 하다.
매거진 <arte> VOL.18의 53쪽. / 사진. © 이동조
매거진 <arte> VOL.18의 53쪽. / 사진. © 이동조
Overture – 모차르트와 바흐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을 배경으로 시작되는 영화는 하늘을 담았다. 그리고 곧 각양각색으로 등장할 나무들을 보여주는 영상에 지난 세기말 미국 워싱턴포스트에서 다루었던 기사 하나를 떠올린다. 지난 천 년 동안 가장 훌륭했던 것들은 무엇일까에 대해 다양한 물음과 결론을 내던 이 기사에는 최고의 음악 작품 역시 선택되어 소개되고 있다. 긴 기사 속에서 지난 천 년 동안 가장 뛰어난 음악이라고 결정 내린 작품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이었다. 그다음이 필자가 사랑하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마태수난곡』이었고. 이유의 핵심은 “이 네 막의 오페라에서 탐구되지 않는, 빛을 보지 않는 인간의 본성이 있는가?”였다. 땅 위 인간 군상들의 지긋지긋한 전쟁을 제쳐두고 ‘천상’의 이야기만을 하는 바흐의 수난곡이 밀린 이유이기도 하고.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제23번 2악장의 배경인 하늘과 유만수가 영화 도입부를 정리하며 그의 가족을 끌어안고 마당 위에서 던지는 대사인 ‘다 이루었다’와 ‘다 이뤘다’의 중간쯤 되는 발음의 대사.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작품 『요한 수난곡』 속 알토의 아리아인 ‘성취되었다’를 금세 떠올릴 수 있는 이 말은, 천상의 모차르트와 세속의 바흐를 교차해 떠올려볼 수 있는 시작으로, 참 고왔다.
영화 '어쩔수가없다' 스틸 컷. /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어쩔수가없다' 스틸 컷. /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제1주제 – ‘재취업’이라는 이름의

제시부 - 유만수가 구범모를 살인하는 과정의 일련의 영상은 ‘군상극’을 닮았다. ‘살인’이라는 영화 속의 한 사건을 둘러싸고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이 시퀀스는 유만수와 구범모, 이아라와 그의 내연남 이준오(안현호 扮)까지 등장시켜 네 명의 인물이 보여주는 마치 영화 속의 작은 영화처럼 기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공(共)이라는 한 음절이 계속해서 떠오르는 이 첫 번째 살인의 이야기 중에는, 구범모가 아내의 불륜을 확인한 후 집의 문을 나설 때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의 속도로 뒤로 물러서는 카메라가 ‘바람’을 포착해 주는 장면이 있다. ‘죄’에 가까운 어감을 담은 ‘불륜’에 밀렸지만 어쨌든 불타는 사랑이기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바람’이란 국어. 아니면 바람에 실린 범모의 마음이 아내에게서 멀어지는 징표인 듯한 장치. 조용필 가수의 음악과 함께 아마 이 시퀀스의 백미가 아닐까 싶다. 두 개 이상의 감각을 함께 움직여 시너지가 상승하는 표현을 ‘공감각적’이라고 배웠는데, 영상과 단어의 중의적 의미를 결합해 낸 이 장면에는 어떤 이름을 붙여줄 수 있으려나. 곧 공감각적 표현을 보게 될 『고추잠자리』 장면 역시 노래의 제목부터 만만치 않다. 한 남성이 죽어 나갈 자리라는 하나의 복선 그리고 내연남을 비하하는 동시에 그 사랑의 장소를 나타낼 수 있다는 또 한 번의 사실까지.

전개부 - 한 번의 살인을 성공해 낸 유만수는 고시조를 대상으로 두 번째 살인을 실행한다. 첫 번째 살인의 시퀀스가 음악 연주의 형식으로 비유해 ‘앙상블’이라 할 수 있다면, 고시조를 살인하는 시퀀스는 독주에 가깝다. 이 두 번째 살인에서 가장 기억나는 장면은 화면을 가른 왼쪽 바다와 오른쪽 산길의 도로 위에 떨어지는 ‘탄피 한 알’. 영화 속 영상 단위의 크기를 쇼트(Shot)-씬(Scene)-시퀀스(Sequence)로 차근차근 확장해 본다면 음악 작품의 음표 하나는 쇼트에 비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럼 두 번째 살인에서 가장 중요한 쇼트이자 음표 하나는 ‘탄피 한 알’. 추리를 생명으로 하는 형사를 기만하는 데 성공해 결국 유만수의 가정에 면죄부를 주게 되는 단초가 되는 ‘탄피’. ‘탄피’를 으뜸음으로 시작된 파문과 그 변주는, 바닥에 떨어진 탄피 몸체인 북한제 권총의 모델 여부를 확인하는 염혜란 배우의 능청스러운 모습과 조응해 좋은 하모니를 이루는 것 같았다.
영화 '어쩔수가없다' 스틸 컷. / 사진. © CJ ENM
영화 '어쩔수가없다' 스틸 컷. / 사진. © CJ ENM
재현부 – 마지막 살인을 둘러싼 유만수와 이미리의 대립과 갈등의 해소

간접 살인 한 번 직접 살인 두 번째로 살인에 자신을 갖게 된 유만수는 최선출에 대한 세 번째 살인을 가장 잔혹한 모습으로 진행한다. 그리고 땅을 삽으로 파기 시작하는 유만수와 이미리. 유만수는 완벽한 살인을 위해, 이미리는 남편이 살인자인가를 확인하기 위해. 두 배우의 장면을 번갈아 화면에 등장시키며 그들이 이르게 된 장면은 화면을 좌우로 반을 갈라 왼쪽에는 꼿꼿이 선 채로 자신의 오른쪽 45도를 바라보는 유만수와 오른쪽에 선 채로 자신의 왼쪽 45도를 응시하는 이미리. 그들은 이 일을 서로에게 그리고 세상 그 누구에게도 발설할 수 없음을 단호히 맹세하고 있는 듯해 보였다. 거꾸로 그리고 바로 1분을 세며 진행하는 부부의 포옹에 다시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이 깔린다. 재취업의 투쟁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펼쳐진 이야기를 끝맺음하는 정확한 장치였다.

음악적 클라이맥스 – 조용필의 고추잠자리

이 전곡(全曲)의 아름다움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 두 편의 특정 장면에 대한 소개를 먼저 해야겠다. 영화 속 음향이란 기술적 부문은 대사(언어), 음악, 효과음의 3요소가 있다는 것을 상기하며.

① <복수는 나의 것>의 라스트 씬
피해자에게 곧 살인을 감행할 가해자들이 화면 속에 보이지 않는다. 자신이 왜 위협을 당하며 곧 죽어야 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동진(송강호 扮)은 그저 칼을 든 가해자들을 두려움과 의심 섞인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다. 이 장면의 긴장을 끌어 올려주는 가장 큰 요소는 화면에 보이지 않는 가해자들과 그들과 맞서 두려움에 떨며 몸을 움츠리고 있는 피해자의,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발들이 들려주는 소리다. 누군가는 죽이려 누군가는 피하려 흙길을 지치는 그 효과음은 마치 짧은 악절의 음악처럼 그 긴장을 한껏 돋우는 장치로 성공적이다.

② <올드 보이>의 장도리 씬
녹조 가득한 어항 같아 보이는, 그리고 그 안의 물고기들이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 같은 영화의 유명한 장면. 텍스트를 읽는 방향처럼, 스크린 안에서도 역시 안정적이고 옳은 방향일 수 있다는 좌에서 우. 감시인의 치아 모두를 뽑아낸 오대수(최민식 扮)는 그(오달수 扮)를 위한 수혈의 질문을 던지고 곧바로 한 무리의 적들을 향해 좌에서 우로 뛰기 시작한다. 이 순간 시작되는 조영욱 음악감독의 배경음악은 몽환이란 꿈을 켜는 라이터 같았다. 좌우로 흔들리는 화면과 17번의 촬영 끝 그 피곤이 담긴 최민식 배우의 얼굴은 오늘도 잊히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까지도 영상을 빛내주는 영화 음악 같았다. 이야기를 꺼낸 이상, 이 영상을 봐야 하는 일은, 어쩔 수가 없다.



③ <어쩔수가없다>의 고추잠자리 씬
한글의 자막을 선보이는 의미는 다시 말하면 그 대사는 알아듣지 못할 것이라고 가정하거나 심하게 이야기하면 소거된 대사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대사를 보고 있자니,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구절인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 떠올랐다. 1947년 유치환 시인에 의해 탄생한 시인 ‘깃발’의 첫 구절. 서양인에게는 누구나 알만한 영화인 1936년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 ‘모던 타임즈’가 연상되었을 수도 있고. 들리지 않는 아우성 같은 대사, 노래의 시간과 어울리는 LP와 여러 음향기기, 총을 쟁취하기 위한 6개의 나란한 코믹한 다리, 얼굴에 담은 다양한 표정으로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 염혜란 배우 등등. 영화를 구성하기 위한 필수 요소인 음악을 표현하기 위해 다른 모든 것들이 마침내 기능하는 것 같은 전율이 잠시 솟아오른 순간이었다.
'어쩔수가없다' 스틸 컷. / 사진 제공. CJ ENM, 모호필름
'어쩔수가없다' 스틸 컷. / 사진 제공. CJ ENM, 모호필름
제2주제 혹은 숨겨진 테마 – 유리원이라는 유만수의 딸

영화의 밖 현실에서 음악적인 천재가 10세를 전후해 한국에서도 탄생할 수 있음을 잘 경험해 왔다. 같은 성씨를 지닌 한 명의 첼리스트와 한 명의 바이올리니스트가 있었고, 콩쿠르의 수상 그리고 국제적으로 명망 높은 음반사와 계약을 하고 녹음을 시작한 나이 역시 10대 초반이었음을,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이라면 누구든 알고 있지 않을까 한다. 저 멀리 스페인의 첼리스트 파블로 카살스 역시 10대 초반의 나이에 헌 ‘책집’(서점을 이렇게 표현해 본다)에서 바흐의 무반주첼로 조곡 6곡의 악보를 발견하고 십 년이 넘는 연구 끝에 세상에 선을 보였다. 그중 5번은 악기 현의 조율에 관해 6번은 첼로 현의 개수에 관해 정리하였고. 그 후 한 세기 넘는 시간을 통해 이 작품은 첼리스트들의 클래식으로 멋지게 성장한다.

유만수의 딸 유리원은 먼저 타인들의 언어를 답습하는 일로 학습을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리원의 천재성을 확인해 주는 선생님이 한 분 등장하고, 그것을 반신반의하는 부모 역시 있다. 나무들이 하늘에 둥둥 떠다니는 숲을 그린 것 같이 악보를 창의하는, 유리원의 잠재력이 만개하게 되는 순간은 명확한 것 같다. 자신이 가장 아끼는 반려견의 ‘개집’(요즘 말로는 반려견의 휴식처라 표현할 수 있겠다)에 누워 무반주로 연주되는 첼로의 음악을 듣는 장면. 이 음악은 바흐의 무반주첼로 조곡이어야만 하겠다. 혹은 무반주첼로조곡 제5번 프렐류드 풍이여도 좋고.

이 장면을 둘러싼 두 어른(?)의 대사는 명백히 유리원 첼리스트가 천재 음악가임을 확인시켜 주는 조력자의 음표들 같다. 간단히 조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형사의 대사는 “무슨 아이가 저런 음악을 듣냐?”이고, 유리원의 아빠는 ‘이제 하나만 저거 하면 돼’이다. 멋진 솔로가 등장하기 전 그 독주의 미사여구가 되기 위해 봉사하는 관과 현의 악기들처럼, 타인에 대한 몰이해를 충분히 장착한 두 어른의 대사는 유리원의 아름다움을 그 반대편에서 더욱 빛내주고 있는 것 같았다. 결국 자신만의 언어인 음악을 습득하고 자신만의 기보법을 창의해 놀라움을 전해주는 마지막 첼로 연주는 영화 속에 자리한 하나의 ‘원더’ 같았다.
영화 '어쩔수가없다' 스틸 컷. /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영화 '어쩔수가없다' 스틸 컷. / 사진 출처. 네이버영화
인간이 배제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소설 원제인 『The Ax』가 지닌 이중적인 의미를 가장 함축적으로 그리고 시각적으로도 선명히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유만수가 타고 가는 소형차 하나를 제외하고는 벌목된 나무들을 실은 트럭과 온통 컨테이너를 실은 차량의 행렬을 보여주며 시작되어 유만수의 새로운 루틴인 ‘야호’와 ‘딱딱’을 지나 벌목 기계가 나무를 베는 장면을 보여주며 문을 닫는 영화. 영어로 ‘해고하다’라는 동사로도 사용된다는 영어 단어의 의미를 중의적으로 떠올려보면 인간이 그저 머리와 자루뿐인 도끼를 진화시킨 그 벌목 기계가 자르고 있는 것은 나무인가? 혹은 인간인가?

음악회를 구성하는 작품들의 마지막 부분을 ‘결론’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언제나 ‘종결부’라고 이름 붙일 뿐. 평범한 이들이 바꾸어가는 세상, 천재들이 바꾸어 놓은 세상, 음악 같은 영화가 변화시킬 세상, 영화 같은 음악이 발전시킬 세상, 보편적이며 100년이 지나도 찾아보는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감독의 꿈이 꼭 이루어졌으면 한다. 2036년이면 영화 <모던 타임즈>가, 2028년이면 영화 <올드 보이>가 사반세기를 잊히지 않는 데 성공한다. 혹시 2125년의 사람들이 <어쩔수가없다>를 보고 있다면, 후세의 누군가는 또 한 번의 밀레니엄의 첫 100년간 잊히지 않았던 영화로 대한민국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를 선택하고 그 이유를 일일이 나열하고 있을 거라는, 꿈을 꾸어본다.
영화 '어쩔수가없다' 스틸 컷. / 사진. © CJ ENM, 모호필름
영화 '어쩔수가없다' 스틸 컷. / 사진. © CJ ENM, 모호필름
P.S.) ‘하나’가 만들어내는 일

영화의 밑바탕이 된 소설의 제목을 <The axe>로 생각할 것이냐 <The Ax>로 간주할 것이냐에 따라 영화를 보는 재미가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수천 개의 쇼트 중 영화의 핵심에 다가설 수 있는 쇼트 하나는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보는 일도 재밌는 일인 것 같고. 영화 '매트릭스'에서 모니터 화면에 ‘Neo’라는 주인공의 이름을 소개하는 쇼트도 인상적이었다. 영화의 라스트씬에서 벽면에 흘러내리는 저 세상의 코드를 마침내 읽어내는 ‘새로운 신’의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제격이었던 쇼트 하나. 라틴어 Deus(신)의 여격인 'Deo'와 영어 단어 'New'를 결합한 영화적 이름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물론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즐겨 사용하던 표현인 'Soli Deo Gloria'라는 표현에서 연상할 수 있었던 일이고.

‘고추잠자리’의 답가 하나를 생각하고 싶었다. 손예진 배우가 영화를 위한 인터뷰에서 대사 속에 포함된 단어들의 장단을 디렉팅하는 감독의 모습을 언급했다. 하물며 음절 하나라면 그 차이는 얼마나 클까. 원곡에는 없던 하나의 음절인 ‘도’를 삽입하고 노래의 능력으로 ‘난’을 낚아채는 모습이, 오랜 시간 잊히지 않는다.



이동조 예술의전당 무대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