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에서 택배업체 관계자들이 배달할 물건을 분류하고 있다. 사진=뉴스1
서울 종로구에서 택배업체 관계자들이 배달할 물건을 분류하고 있다. 사진=뉴스1
"배송할 때까진 멀쩡한 날씨였는데, 배송 후에 비가 내려서 고객이 받을 때는 이미 젖어 있는 경우가 있어요. 그럼 결국 제가 책값을 물어줘야 하는 상황이 생기더라고요."

경기 지역에서 배송 업무를 하는 A씨는 요즘 장마철이 두렵다. 비가 내렸다 멈췄다를 반복하는 날씨 탓에, 배송 완료 버튼을 누른 뒤에도 마음이 편치 않다.

A씨는 23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배송기사의 현실'이라는 글을 올려 "하루 50집에서 많게는 100집 가까이를 돌며 열심히 일한다. 문제는 배송하는 상품 중 상당수가 책이라는 점이다"라며 "책은 종이로 만들어진 만큼 물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상품인데, 비싼 책일수록 파손 시 물어내야 하는 부담도 커진다. 문 앞에 두고 가야 하는 '부재중 배송'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배송 이후 내리는 비까지 배송기사가 예측하고 막을 방법은 사실상 없다"고 하소연했다.

A씨가 제기한 문제는 포장 방식이다. 장마철에도 대부분의 상품은 평소와 다름없이 종이 박스 포장만으로 출고된다. 박스는 비를 맞으면 금방 젖고 눅눅해지며, 시간이 지나면 내용물까지 손상되기 쉽다. 특히 책처럼 물에 극도로 약한 상품일수록 이런 포장 방식은 계절과 날씨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셈이다.

그는 "배송기사는 배송 과정에서 최선을 다하지만, 배송 완료 후 고객이 물건을 수거하기 전까지 비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 않냐"며 "배송기사가 벌면 얼마나 번다고 예방 가능한 포장 문제까지 책임져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택배 표준약관에 따르면, 운송에 적합하지 않은 포장 상태로 물건을 접수했음에도 이를 수탁했다면 이는 안전하게 배송을 책임지겠다는 의사표시로 볼 수 있다는 게 법률 자문 기관의 설명이다. 파손 면책 조항이 있더라도, 운송 과정에서 안전한 배송을 위해 최선을 다했음을 입증하지 못하면 택배사 측에도 책임이 있다는 유권해석도 존재한다.

계절과 기후에 맞지 않는 포장으로 상품을 출고한 것 자체가 이미 구조적인 결함일 수 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최종 배송을 담당한 기사 개인에게 배상 부담이 돌아가는 일이 적지 않다.

A씨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장마철이나 우천 시에는 비닐 포장 또는 방수 포장을 기본으로 적용하는 등 계절과 날씨에 맞는 포장 방식으로 개선하자"고 제안했다.

네티즌은 "배송도 문제지만 배송 후가 문제다", "하루 수백 곳을 배송해야 하는 처지에 일일이 상품 포장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판매처에서 우천 시에 대비해 포장해야 정상 아닌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