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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화가 3인
그렇다고 미술이 무조건 ‘예쁘고 잘 그린 것’만을 뜻하는 것도 아닙니다. 예쁘고 사실적인 이미지는 이미 차고 넘칩니다.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명작 풍경화보다 더 사실적인 사진을 찍는 세상입니다. 게다가 AI는 몇 초 만에 그럴듯한 그림을 뽑아냅니다. ‘닮게 그리기’만으로는 미술의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그런데도 어떤 그림은 여전히 우리를 붙잡습니다. 화면 속 빛의 온도, 공기의 습기,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 말로 설명하기 전에 몸이 먼저 알아채는 감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소개할 북유럽 화가 세 사람은 바로 그런 식으로 그림의 힘을 보여줍니다.
사진에 없는 손맛, 묀스테드
우리는 멋진 풍경을 마주할 때 “그림 같다”고 감탄합니다. 그런데 정말 잘 그린 그림을 볼 때는 “사진 같다”고 칭찬합니다. 재미있는 아이러니입니다. 페데르 뫼르크 묀스테드(Peder Mork Monsted·1859~1941)는 바로 그 ‘사진 같은 그림’의 정점에 있는 화가입니다.
그런데도 오늘날의 우리가 그의 이름을 거의 들어본 적 없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그의 ‘사실적으로 그리는’ 실력이 너무 완벽했기 때문입니다. 당대 비평가들은 이렇게 비판하곤 했습니다. “묀스테드? 저런 그림이 무슨 의미가 있어. 돈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예쁜 엽서나 그리는 화가야.” “곧 사진 기술이 발전하면 저 사람도, 저 사람 그림도 쓸모없어질 거야.”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묀스테드의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가 풍경을 단순히 베껴 낸 기술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숲을 그린답시고 눈앞의 나뭇잎을 하나하나 다 묘사하는 미련한 짓은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능숙하고 빠른 붓놀림으로 주목할 만한 질감만 툭툭 살리고, 그 위에 맺힌 빛의 반짝임을 세련되게 강조했습니다.
그의 그림은 멀리서 보면 영락없는 고해상도 사진 같지만, 한 발짝 다가가서 보면 화가의 힘찬 붓 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사진이나 AI는 흉내 낼 수 없는 그림만의 ‘손맛’이자 생명력입니다. 밟으면 뽀드득 소리가 날 것 같은 눈밭 위로 쏟아지는 따스한 햇살. 묀스테드는 사실주의의 차가운 정밀함 속에 사람의 온기를 불어넣은 화가였습니다.
그림에 담은 우정, 베그만
묀스테드가 “자연이 이렇게 아름다워!”라고 외쳤다면, 덴마크 화가 베르타 베그만(Bertha Wegmann·1847~1926)의 그림은 조금 더 낮고 깊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을 건네는 듯합니다.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이 얼마나 멋진지 좀 봐.”
두 사람은 독일 뮌헨과 프랑스 파리의 아틀리에에서 동고동락하며 서로의 모델이자 버팀목이 돼 줬습니다. 그 특별한 우정이 만들어낸 작품이 ‘예술가 제나 바우크’입니다. 르누아르나 마네 같은 남성 거장들의 그림 속 여인들을 떠올려 보세요. 수줍게 웃거나, 어딘가 멍하니 먼 곳을 바라보고 있거나, 벌거벗고 있는 ‘예쁜 인형’ 같은 모습이 많습니다. 하지만 베그만이 그린 친구 제나는 다릅니다. 제나는 책상 모서리에 아무렇게나 걸터앉아 우리를 정면으로 빤히 쳐다보며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누가 뭐래도 나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고, 내 일을 사랑해.”
결국 베그만은 실력 하나로 여성 최초의 덴마크 왕립 미술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습니다. 제나는 독일 뮌헨에서 여성들을 위한 미술 학교를 세운 뒤 탁월한 제자들을 길러냈고요. 이들의 그림에는 편견에 맞서 서로의 캔버스이자 방패가 돼줬던 두 여성의 우정이 녹아 있습니다.
한정된 도구로 펼친 무한, 소른
마지막 화가는 스웨덴이 낳은 당대 세계 미술의 슈퍼스타, 안데르스 소른(Anders Zorn·1860~1920)입니다. 앞의 두 사람이 차분한 느낌이라면 소른은 그야말로 에너지 덩어리입니다. 가진 것 없이 태어나 두 손으로 위대한 성공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그의 인생은 한 편의 소년 만화와 같습니다.
소른의 그림에는 그가 걸어온 길처럼 거침없는 활력이 넘칩니다. 그의 장기는 바로 ‘물’입니다. 그는 미술사에서 물을 가장 잘 그리는 화가 중 하나입니다. 누군가 “왜 물을 이렇게 자주 그리냐”고 물어봤을 때, 소른은 자신 있게 답했지요. “다른 화가들과 내 수준 차이가 가장 잘 드러나는 주제니까.” 자만심이 아니라 근거 있는 자신감이었습니다. 소른의 물은 가까이서 보면 그저 쓱쓱 문지른 거친 물감 자국 같지만, 한 걸음 물러서서 보면 햇빛에 반사되어 일렁이는 물결이 춤을 춥니다.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소른. 어느 날 돌연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성공의 한가운데에서도 그는 도취하지 않고 마음속에 있는 고향의 풍경과 소박한 생활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었거든요. 금의환향한 소른은 한가롭고 여유 있는 생활을 즐기며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다 평온하게 세상을 떠납니다.
놀라운 건 그의 화려한 그림 중 상당수가 네 가지 색, 검정, 흰색, 빨강, 노랑만 써서 그린 작품이라는 사실입니다. 검은색과 노란색을 섞어 녹색 숲을, 검은색과 흰색을 섞어 푸른 물결을 창조해낸 그의 팔레트는 ‘소른 팔레트’라 불립니다. 단 네 가지 색으로 삶의 환희를 폭발시킨 그의 붓질은 수만 가지 색을 조합하는 AI의 그림보다 훨씬 더 경이롭게 다가옵니다. 그의 그림은 우리에게 이렇게 외치는 듯합니다. “가진 게 별로 없어도, 인생은 이렇게 즐거울 수 있는 거야!”
그림 보는 즐거움
지금까지 소개한 세 명의 화가는 혁신과 거리가 멉니다. 피카소의 입체주의 그림이나 마르셀 뒤샹의 변기가 주는 충격은 이들의 작품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작품에는 묀스테드가 숲속에서 느꼈던 한기, 베그만이 친구를 바라보던 따스한 눈길, 소른이 만끽했던 여름날의 환희에 있는 ‘삶의 온도’가 있습니다.이 세 화가들은 메시지나 파격을 앞세우는 대신 자신이 직접 보고 느낀 단 한 번뿐인 순간을 그렸습니다. 특별하지 않은, 누구나 한 번쯤은 봤을 비슷한 풍경입니다. 하지만 그 붓질 하나하나에는 평생 쌓아 올린 노력과 삶의 경험이 정직하게 묻어 있습니다. 그래서 평범한 대다수의 사람에게 이 화가들의 그림은 더욱 피부에 와닿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 궁금증이 핵심입니다. 미술에서는 정답을 맞히는 것보다 내가 무엇에 끌리는지 발견하는 게 훨씬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기사는 Peder Mönsted. Zauber der Natur(Hans Paffrath 지음), Bertha Wegmann (Gertrud Oelsner, Lene Bøgh Rønberg 지음), Anders Zorn: Sweden's Master Painter(Johan Cederlund 지음) 등을 참조해 작성했습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