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환경 강조 파베르 CEO
7년간 이익 전망치 세차례나 낮춰
코로나 충격으로 매출 '곤두박질'
경쟁사에 뒤처져 주가 30% 폭락

행동주의 헤지펀드 압박에 사임
佛 언론 "시장의 법칙에 완패"
프랑스 최대 식품기업 다논의 에마뉘엘 파베르 최고경영자(CEO)가 최근 사임하기로 발표하면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딜레마가 부각되고 있다. 파베르 CEO는 대표적인 ESG 경영자로 알려져 있다. 회사 정관에 ‘지구와 자원을 보전한다’는 목표를 넣을 정도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경영 성과는 좋지 못했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회사 매출이 크게 감소하고 주가가 폭락하면서 주요 투자자인 영미권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공격을 받았다.

다논의 사례는 ESG 경영이 화두인 시대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수익성 사이에서 고민하는 경영자들의 현주소를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ESG 목표와 수익을 일치시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보여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ESG 경영의 딜레마 보여준 다논
파베르 CEO는 지난 15일 이사회 결정에 따라 회사를 떠나기로 했다. 다논의 주요 투자기관인 영국 블루벨캐피털파트너스, 미국 아티잔파트너스 등의 끈질긴 요구가 관철된 순간이었다. 이들 행동주의 헤지펀드는 다논의 주력 제품인 유제품·생수 판매 부진, 주가 폭락 등의 책임을 지고 파베르 CEO가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논은 생수 브랜드 에비앙과 요구르트 브랜드 액티비아 등을 거느린 유럽 대표 식품기업이다. 지난해 다논의 매출은 코로나19 충격으로 2019년 대비 6.6% 감소한 281억유로(약 37조9000억원)에 그쳤다. 주가도 작년 한 해 30% 가까이 폭락했다.

다논의 유제품과 유모차, 생수 사업 등은 코로나19 사태 초기 공장 폐쇄 등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청소용품과 위생용품 등을 판매하지 않는 것도 다논 실적이 좋지 못했던 이유다. FT는 “(코로나19 사태로) 다른 생활용품, 식료품 기업들이 호황을 누릴 때 다논은 엄청나게 나쁜 성적을 낸 것”이라고 혹평했다. 다논은 실적 부진에구조조정에도 나서 작년 11월 직원 10만 명 가운데 2000명을 감원했다.
'ESG 경영'의 딜레마…佛 다논, 사회적 책임 집착하다 최악 실적

“사회적 책임에만 너무 집착”
파베르 CEO는 기업이 지속가능한 사업을 하면서 이윤 창출과 함께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6월 다논 주주들이 ESG 경영을 통해 ‘사명(使命)을 다하는 기업’으로 만들자고 의결하자 파베르 CEO는 “밀턴 프리드먼의 동상을 무너뜨렸다”고 말하기도 했다. 프리드먼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윤을 늘리는 것”이라고 주창한 자유시장주의자다.

파베르 CEO는 소비자, 직원, 협력업체, 지역사회, 정부의 신뢰관계를 회복하며 2030년까지 세계 최대 ‘비코프’(B Corp) 기업이 되겠다고도 했다. 비코프는 일종의 사회책임 기업 인증으로, 주주의 이익뿐만 아니라 공익을 함께 추구하도록 정관에 담는다.

그러나 파베르 CEO는 ‘사명’을 강조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사업’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는 너무 적은 시간을 썼다고 FT는 전했다. 다논 이사회는 파베르 CEO가 네슬레와 유니레버 등 경쟁사에 비해 뒤처진 실적에 안주했고, 지난 7년간 연간 이익 전망치를 세 차례나 하향 조정하는 등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언론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프랑스의 경직된 기업 환경에서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승리한 드문 사례”라고 평했다. 프랑스 언론들은 영미식 주주 자본주의에 프랑스 토종 기업이 굴복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좌파 성향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파베르가 시장의 법칙에 완패해 잔인하게 해고됐다”고 날을 세웠다. 중도좌파 성향의 르몽드는 “프랑스 자본주의의 심장에 내려진 또 하나의 벼락”이라고 진단했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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