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봉의 호모 인베스티쿠스] 정치의 중심 장치가 된 숫자
숫자는 정치의 중심 장치가 되었다. 2022년 대선에는 국력 세계 5위, 국민소득 5만 달러, 코스피 5000을 묶은 ‘5·5·5’ 비전이 나왔다. 15년 전 ‘7·4·7’을 빼닮았다는 말이 나오자, 임기 안에 닿을 수치가 아니라 지향할 비전이라는 해명이 돌아왔다. 그럴 만도 했다. 코스피 5000은 2007년 대선에서 한 후보가 먼저 장담했지만, 그가 집권한 5년 내내 지수는 2300선을 넘지 못했다.

2025년 공약집에도 숫자가 넘쳐났다. AI 3대 강국, 글로벌 5대 문화강국, 방한 관광객 3000만 명, ‘5극3특’ 초광역 균형발전, ‘서울대 10개 만들기’. 숫자 정치에는 직관적으로 와닿는 선명함이 있다. 그러나 근사한 숫자가 곧 상황의 개선을 뜻하지는 않는다. 코스피가 그렇다.

비전에 그칠 줄 알았던 숫자는 정부 출범 반년 만에 ‘초과현실’이 됐다. 2~3년을 내다본 목표가 6개월 만에 이뤄졌다는 자찬도 나왔다. 올해 1월 엑스에 “불법 부정 판치던 주식시장 정상화=5천피 개막”이라는 등식이 올라왔다. 등식은 곧 연금으로 번졌다. 6월에는 주가 상승이 “고통 없는 연금개혁의 좋은 수단”이고, 고갈 시점이 늦춰져 누가 손해를 떠안을지 당분간 따지지 않아도 되니 “정권을 위해서도 다행”이라는 글이 이어졌다.

문제는 등식을 세운 쪽이 그 등식을 끝까지 지키지 않는다는 데 있다. 6월 장중 9300선을 찍은 지수는 11월 6일 5000선이 무너지기도 했다. 8000선이 깨진 6월에는 대폭락이라는 비판에 2700에 비하면 엄청 오른 것이라는 반박이 돌아왔다. 오를 때는 개혁의 성과로, 내릴 때는 출발점과 견주라는 것이다. 지수가 정말 개혁의 증거라면 내릴 때도 그렇게 읽어야 한다.

실제로 지수를 끌어올린 힘도, 끌어내린 힘도 대부분 개혁 바깥에 있었다. 6월 무렵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비중이 시가총액의 절반을 넘었고, 최근 급락도 같은 길을 밟았다. 월가의 AI 수익성 의구심에 미국 반도체주가 먼저 꺾였고, 그 충격이 두 대형주를 거쳐 코스피로 건너왔다. 여기에 중간선거로 양원을 쥔 민주당이 AI 산업 속도 조절에 무게를 싣는다는 변수도 얹혔다. AI 3대 강국부터 부동산 자금의 증시 이동까지 한 바구니에 담은 정부 구상은 그 바구니를 서울 바깥에 맡겨 둔 셈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지수는 시장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재는 척도가 아니다. 주가조작이 들끓는 시장도 오를 수 있고, 깨끗해진 시장도 내릴 수 있다. 사상 최고치를 찍던 6월은 시장이 가장 건강하던 때가 아니라 빚투와 레버리지가 가장 뜨겁던 때였다. 그런데도 지수를 목표로 내걸면 정부는 시장을 고치기보다 숫자를 관리하고 싶어진다.

국민연금은 올해 1월 국내 주식 리밸런싱을 한시 유예했고, 5월에는 목표 비중을 20.8%로 높였다. 시장 충격 완화라는 설명과 증시 부양이라는 의심이 맞섰다. 어느 쪽이 옳든, 지수가 정권의 목표가 된 나라에서는 연기금 운용마저 그 목표와 엮여 읽힌다.

지표가 목표가 되는 순간 좋은 지표이기를 멈춘다는 굿하트의 법칙이 있다. 목표가 된 지표를 움직이는 결정은 모두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는다.

주가조작을 처벌하고 소액주주를 보호하는 개혁은 지수가 오르든 내리든 옳다. 패착은 개혁과 지수를 동일시한 데 있다. 정부는 그 등식을 철회해야 한다. 개혁은 불공정거래가 얼마나 줄었는지, 시장의 다수인 시민·투자자의 목소리가 얼마나 커졌는지로 평가받아야 한다. 지수는 그 뒤를 따라올 수도, 따라오지 않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