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능한 사랑’의 장면들.  /넷플릭스 제공
영화 ‘가능한 사랑’의 장면들. /넷플릭스 제공
영화를 무대예술과 구분 짓는 것은 카메라의 존재다. 관객은 카메라의 시선으로 영화를 본다. 미장센의 함수는 복잡하다지만, 그 미학을 꿰뚫는 본질은 간명하다. ‘모든 영화적 요소가 카메라 프레임 안에 얼마나 완벽하게 담겼는가.’ 거장 곁에 늘 최고의 촬영감독이 함께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6일 넷플릭스에 공개된 이창동 감독의 신작 ‘가능한 사랑’의 힘도 여기서 나온다. 앞서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이 영화가 은사자상(심사위원대상)을 받았을 때 외신은 이 감독만큼이나 김지용 쵤영감독에게 주목했다. 자연광과 ‘핸드헬드’(손으로 찍는 기법) 활용, 대사 없이도 불안과 갈망으르 채워 넣는 촬영이 이창동 특유의 복잡다단한 서사를 선명하게 드러낸다는 평가를 받았다.
비우고 덜어내니 비로소 보이는 '가능한 사랑'
첫 장면부터 남다르다. 해질 무렵 외출하는 호석(설경구)과 미옥(전도연), 철이(정섶) 가족은 평범하지만 어딘가 석연치 않아 보인다. 카메라가 안정적 구도를 좀처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물은 프레임 중심에서 미묘하게 벗어났고, 화면 균형도 어긋나 있다. 오프닝이 영화의 전반적인 성격을 규정한다는 점에서 관객은 직감한다. ‘이 가족에게 평온한 일상은 없겠구나.’

최근 한국경제신문 아르떼와 만난 김 감독은 이를 두고 “긴장감과 불안을 주려고 의도한 촬영”이라고 설명했다. “이창동 감독은 ‘꾸미지 않고 자연스럽게, 눈으로 보는 것 같은 화면을 만들고 싶다’고 했어요. 영화를 찍으면서 꾸미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죠. 어떻게 구현할지 고민을 많이 할 수밖에요.”

충무로가 신뢰하는 이름

영화 ‘가능한 사랑’의 장면들.  /넷플릭스 제공
영화 ‘가능한 사랑’의 장면들. /넷플릭스 제공
영화계에서 김 감독은 손꼽히는 실력자 중 한 명이다.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2005)으로 데뷔한 뒤 내로라하는 감독과 호흡을 맞췄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2022)에 참여했고, ‘도가니’(2011)로 인연을 맺은 황동혁 감독과는 ‘남한산성’(2017)을 거쳐 2024년 넷플릭스 흥행 시리즈 ‘오징어 게임 시즌2’를 함께했다.

그의 필모그래피 대표작으로 ‘남한산성’을 앞단에 놓는 영화 애호가가 적지 않다. 혹한 속 고립된 조선 조정의 절망을 차가운 푸른빛과 촛불의 희미한 온기로 그려냈다. 김 감독은 이 작품으로 2018년 ‘촬영 분야 아카데미’로 불리는 폴란드 카메리마주 국제영화제에서 알폰소 쿠아론 등 쟁쟁한 영화인을 제치고 한국인 최초로 대상 격인 황금개구리상을 받았다.

영화 촬영으로 잔뼈가 굵은 김 감독에게 ‘가능한 사랑’은 놓치고 싶지 않은 기회였다. 그는 “이 감독의 영화를 워낙 좋아했고, ‘내가 이창동 영화를 찍을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갑자기 연락이 왔다”며 “어떤 내용인지 파악도 안 됐지만, ‘일단 하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여기서 ‘이창동 영화를 찍을 일이 있을까’라는 속내에는 중의적 의미가 담겼다. 이창동이라는 영화인에 대한 동경인 동시에 현실적 거리감이었다. 그간 김 감독의 작업은 인상적인 명암 대비와 스타일리시한 구도로 주목받았다. 인물을 집요하게 응시하면서도 카메라의 존재를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이창동의 연출과는 다소 결이 달랐다. 그럼에도 김 감독은 그의 카메라가 영화적으로 쓸모 있겠다는 감이 왔다고 했다.

“사실 촬영을 오래할수록 일관성(스타일)이라는 게 생기기 마련이고, 그게 나라는 사람을 찾는 이유가 될 테죠. 그 틀을 깨기가 쉽지 않은데 ‘가능한 사랑’은 그걸 시도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충분히 해볼 만한 경험이겠다 싶었던 거죠. 보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르게 읽힐 수 있는 이야기의 복잡성도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덜어낼수록 정교해진 화면

영화 ‘가능한 사랑’의 장면들.  /넷플릭스 제공
영화 ‘가능한 사랑’의 장면들. /넷플릭스 제공
촬영 준비 단계에서 김 감독은 “무심하게 찍고 싶다”는 이 감독의 말을 듣고선 ‘덜어내기’를 키워드 삼았다. 그는 “자연광으로 조명을 최소화하고, 카메라워크를 돕는 장비를 모두 빼고 그냥 어깨에 둘러멘 채 찍으려고 했다”며 “말 그대로 가장 단순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화가로 치면 팔레트의 물감을 제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촬영을 덜어내다 보니 직접 연출에 관여하는 비중은 높여야 했다. 영화의 위기감이 고조되며 절정으로 치닫는 장소인 상우(조인성) 부부의 별장을 짓는 과정이 대표적이다. 이 감독이 부동산 유튜브를 훑은 끝에 찾아낸 부지에 직접 세트를 세웠는데, 창문 개수·방향 등 설계 전반에 김 감독이 참여했다. 그는 “해의 방향을 고려한 집의 위치, 실내 벽지 색깔 등에 모두 관여해 만들었기 때문에 조명을 적게 쓰면서 자연스러운 화면을 담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미옥이 호석과의 첫 만남을 떠올리는 장면에도 그의 고민이 녹아 있다. 사실 이 장면은 이창동 영화를 좋아하는 애호가라면 대개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 감독이 그간 ‘플래시백’(현재에서 과거로 넘어가는 기법)을 사용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시나리오 작법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 감독은 플래시백을 좋게 보지 않았지만 이번 영화에는 어울릴 것 같다고 했다”며 “다만 플래시백 같지 않게 덤덤히 넘어가길 원한 만큼 현재와 과거를 어떻게 보여줘야 할지 고민해야 했다”고 말했다.

필터를 씌우거나 조명을 달리하는 일반적인 접근 방식이 영화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한 김 감독은 1990년대 여름 이미지를 떠올렸다. 그는 “과거를 어떻게 다시 구현할 수 있을까를 두고 시나리오를 쓴 오정미 작가와 논의한 끝에 의상과 분장에 신경 쓰기로 했다”며 “촬영 기술적인 부분은 아니지만, 오히려 이렇게 관여하며 과거 장면을 잘 채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영화 말미의 바다 수영 장면도 빼놓을 수 없는 기억이다. 미옥이 옷을 벗어 던지고 바다로 뛰어들자 상우도 덩달아 나체로 헤엄쳐 들어가는 신으로, 이 감독조차 어떻게 찍을지 쉽게 답을 내지 못한 장면이다. 김 감독은 카메라를 들고 바다에 들어갔다. 그는 “잠망경 같은 장비를 써서 카메라가 수면 위아래를 오갈 수 있게 하고, 배우들은 멀리 떨어지지 않게 고무줄로 연결했다”며 “실제로는 제자리에서 수영하는 건데, 파도가 치니 화면에선 마치 먼바다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고 했다. 이 장면이 꼭꼭 눌러둔 해방감을 만끽하는 인물의 모습을 연출하려는 의도였다면 꽤 절묘하게 촬영한 셈이다.

‘가능한 사랑’은 넷플릭스에 공개되기 전 극장에서 관객과 만났다. 반응은 흥미롭다. 김 감독은 “러닝타임이 두 시간이나 된다고 경고했는데, 지루하지 않다는 평가가 많았다”며 “그간 촬영한 영화 중 이렇게 다양한 피드백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전했다. 그래서일까. 김 감독은 이런 말을 덧붙였다. “앞으로도 안 해본 작업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가능한 사랑’처럼 익숙하지 않은 것을 계속 시도해보고 싶습니다.”

유승목 기자 m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