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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를 벗다, 향기를 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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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명품 향기'를 찾다…내 취향의 완성 '향수'
나만의 '명품 향기'를 찾다…내 취향의 완성 '향수'
디자이너 크리스챤 디올은 생전에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글씨체에 저마다의 개성이 묻어나듯 향수에도 그 사람만의 취향과 분위기가 배어 있다는 뜻일 것이다. 어떤 이는 꽃향기를, 어떤 이는 비에 젖은 나무 냄새를 좋아한다. 향수는 보이지 않지만 때로는 옷이나 액세서리보다 더 선명하게 한 사람을 기억하게 한다.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시력을 잃은 주인공 프랭크는 향기로 여성이 뿌린 향수를 알아맞힌다.
그렇게 보면 향수는 조금 특별한 명품에 가깝다. 가방이나 시계처럼 눈에 보이지 않고, 비싼 향수를 뿌렸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향이 나는 것도 아니다. 같은 향수라도 뿌리는 사람의 피부와 체온, 시간에 따라 미묘하게 다른 향을 남긴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전에 스스로 가장 먼저 즐기는 아이템이다. 평범한 풀, 흙 냄새 등이 누군가에게는 잊지 못할 여행의 기억으로 소비되기도 한다.
향수의 세계에서는 오랫동안 일종의 서열이 존재했다. 샤넬과 디올, 겔랑 같은 유럽 유명 하우스가 만든 향수는 부와 세련된 취향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누구나 유명 브랜드의 향수를 살 수 있게 되자 남들과 다른 향을 원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20세기 후반 조향사의 개성과 독창적인 철학을 앞세운 ‘니치(niche) 향수’가 주목받은 이유다. 그런데 니치 향수마저 최근 대중화되면서 향수 애호가들은 또 다른 숨은 향을 찾아 나섰다.
K 향수가 최근 새로운 ‘니치 향수’로 뜨고 있는 이유다. 요즘 서울 서촌의 작은 골목에서는 한국의 24절기를 향으로 표현하고, 갓 빻은 고춧가루나 시골집 장작불 냄새를 향수병에 담는다. 누군가에게는 낯설고 기묘한 냄새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향이 된다. 희소성과 개성을 앞세운 한국식 향수 공방이 모인 ‘K퍼퓸 로드’를 여행삼아 걷는 이들도 늘고 있다.
향수를 즐기는 방식도 다양해지고 있다. 손목에 뿌리는 대신 머리카락에 향을 입히고, 향수병에 이름을 각인해 기억을 봉인하기도 한다. 값비싼 원료와 화려한 병만큼이나 향을 둘러싼 경험과 감정이 중요해진 것이다.
향수의 세계에선 그래서 정답이 없다. 좋은 향수가 반드시 남들이 알아주는 향수도 아니다. 백화점 1층에 진열된 오랜 베스트셀러일 수도, 이름조차 낯선 국내의 작은 공방에서 발견한 향일 수도 있다. 누구나 명품을 살 수 있는 시대, 자신만의 향을 발견하는 일은 어쩌면 가장 사적이고도 특별한 럭셔리일지 모른다.
안혜원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