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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몰라야 니치 향수?…모두가 아는 향수가 됐다
Cover Story
남과 다른 향에서 시작된 니치 향수
소수의 특별한 취향에서
다수의 소비재로 떠올라
유행·이름값보다 '나다움'
나만의 니치 향수 찾아야
남과 다른 향에서 시작된 니치 향수
소수의 특별한 취향에서
다수의 소비재로 떠올라
유행·이름값보다 '나다움'
나만의 니치 향수 찾아야
큰맘 먹고 산 고가 향수를 뿌린 뒤 이런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나만의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어 산 ‘니치(틈새) 향수’인데, 막상 길거리에 나가면 똑같은 향을 수시로 맡는다. 순간 묘한 배신감이 든다. 백화점 1층의 비싼 자리를 차지하고 누구나 이름을 아는 브랜드가 여전히 니치라는 간판을 달고 있다. 마치 “나는 아무도 몰라서 유명해”라고 말하는 아이러니 같다. 니치 향수가 처음 등장한 이유를 알고 나면 이 모순은 더욱 흥미로워진다.
‘비주류’로 시작한 니치 향수
향수는 오랫동안 소수 특권층의 문화였다. 18세기 프랑스 왕실에서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전속 조향사 장 루이 파르종처럼 왕족과 귀족을 위해 향을 만드는 전문가들이 활동했다. 당시 향료를 추출하고 제조하는 데는 막대한 비용이 필요했다. 수많은 꽃에서 소량의 향료를 얻어야 했고, 이를 가공해 보관하는 과정에도 상당한 자본이 투입됐다. 향수는 예술적 창작물이면서 동시에 상업적인 상품일 수밖에 없었다. 겔랑과 르방 같은 전통적인 조향사 브랜드도 이런 환경에서 성장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 들어 이 같은 분위기에 반기를 든 괴짜들이 나타났다. 아는 사람만 아는 작은 골목길에 부티크를 열고, 투박한 병에 향수를 담았다. 자본이 부족했기에 당연히 광고와 마케팅은 없었다. 그 대신 그렇게 아낀 비용을 ‘남과 다른 향’을 만드는 데 오롯이 투입했다. 이것이 바로 니치 향수의 시작이다. 니치는 원래 건축 용어로, 장식품을 놓기 위해 벽을 파놓은 공간을 뜻하는 프랑스어에서 유래했다. 즉 니치 향수는 거대한 주류 시장의 벽 틈새에 숨은 ‘작가주의 향수’를 뜻하는 말이었다.
대표적인 브랜드가 1976년 나온 ‘라르티장 파르퓌메르’다. 이 브랜드의 ‘뮈르 에 무스크’는 블랙베리 향을 머스크와 결합한 제품이다. 당시 천연 향료만으로 재현하기 어려운 과일 향을 조향사의 상상력과 기술로 구현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딥티크’ 역시 독특한 출발점을 지닌 브랜드다. 무대 디자이너, 실내 건축가, 화가 출신의 세 창립자는 여행과 예술에서 얻은 영감을 향으로 표현했다. 이들은 향을 통해 자신들이 경험한 장소와 기억을 전달하고자 했다. 제품의 기능이나 유행보다 이야기를 중심에 놓은 것이다. ‘니콜라이’도 독립성을 지킨 향수로 꼽힌다. 겔랑 가문 출신인 파트리시아 드 니콜라이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를 설립하고 직접 조향한 향수를 선보였다. 대형 패션 브랜드의 기획에 따라 향을 개발하는 대신 조향사 개인의 취향과 창작 방향을 브랜드의 중심에 놓은 것이다.
대기업 품에 안긴 향수의 명암
다만 이 과정에서 질문도 생겨났다. 독립적인 조향 철학을 바탕으로 출발한 브랜드가 대기업에 편입된 뒤에도 고유한 개성을 유지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희소성을 내세우던 향수가 누구나 사용하는 상품이 된다면 소비자는 무엇을 기준으로 니치를 구분해야 할까.
그래서 소비자에게도 이제는 ‘향 주권’이 필요하다. 유명 연예인이 사용한다고 해서, 가격이 비싸다고 해서 반드시 나에게 좋은 향수인 것은 아니다. 니치 향수의 매력은 자신의 취향에 맞는 향을 발견하고 그 향을 일상의 일부로 만드는 데 있다. 유명한 브랜드의 향이 자신에게 잘 어울릴 수도 있고, 잘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에서 더 만족스러운 향을 발견할 수도 있다. 명성이나 가격표보다 자신의 후각을 믿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진짜 니치 향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김태형 조향사(Wave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