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강서구 한선엔지니어링 신사옥의 밸브 제조 공정. /민건태 기자
부산 강서구 한선엔지니어링 신사옥의 밸브 제조 공정. /민건태 기자
지난달 30일 오후 부산 강서구 한선엔지니어링 신사옥. 991㎡(300평) 넓이에 아파트 10층 높이로 세워진 거대한 창고에선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 조명이 완전히 꺼진 상태로 컨베이어만 조용히 가동되고 있었다. 3만개에 이르는 한선엔지니어링의 부품이 이 창고를 오간다. 제조 공정과 조립 라인에서 창고로, 다시 창고에서 포장 라인으로 이동하는 구조다. 밸브 모듈 엔지니어링 기술을 보유한 이 기업은 글로벌 전력 기업 블룸에너지의 1차 공급사로 선정된 이후 매출과 영업이익률이 가파른 속도로 오르고 있다.

부산 한선엔지니어링, AI 붐 타고 고속성장
이제훈 한선엔지니어링 대표(사진)는 이날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보기술(IT) 기업과도 같은 유연함이 우리 회사의 강점”이라며 “인공지능(AI)이 제조업에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창업 2세 출신 창업가’다. 미국 메릴랜드대에서 컴퓨터공학 박사 과정을 거쳐 어도비의 엔지니어로 근무하며 실리콘밸리의 IT 버블을 직접 경험했다. 그 후 한국선재 창업주 고(故) 이명호 회장의 부름을 받아 경영 일선에 뛰어든 뒤 2012년 한선엔지니어링을 직접 창업했다. 철강 사업만으론 미래를 개척할 수 없겠다는 판단에서다. 이 회사는 설립 11년 만인 2023년 코스닥 시장에 상장됐다.

한선엔지니어링이 미국의 블룸에너지와 손을 잡은 건 2014년부터다. 첫 시작은 단순 밸브 제조품 납품이었다. 이 대표는 “수주 물량은 적었지만, 항공우주나 반도체에서 요구하는 수준의 까다로운 스펙을 요구했다”며 “이익만 생각했다면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공급 구조는 2021년 AI 투자 증가 흐름에 따라 전환점을 맞았다. 블룸에너지는 발전소로부터 전기를 송전받는 대신 AI 데이터센터 인근에 현장형 분산 발전시스템을 설치해 전력을 공급한다. 고체산화물 연료전지(SOFC) 기술 기반으로 발전 설비가 변화하면서 연료 공급과 분배, 연료원이 이동하는 배관 설계 시스템 고도화가 중요해졌다.

한선엔지니어링은 2019년부터 ‘불순물 제로’를 달성하는 밸브 모듈 개발에 착수해 2021년부터 블룸에너지에 납품을 시작했다. 현재 블룸에너지에 밸브 모듈을 공급하는 기업은 전 세계 단 두 곳으로, 한선엔지니어링은 1차 공급사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얻은 밸브 모듈 설계 지식은 한선엔지니어링의 경쟁력이 됐다. 밸브 모듈 설계는 블룸에너지와 한선엔지니어링이 공동으로 개발하는 구조다. 전체 설계도를 공유받은 뒤 밸브 모듈 설계를 양사 엔지니어들이 함께 손본다. 밸브 모듈 설계 기술 확보로 현재 반도체·2차전지 등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성과는 실적으로도 나타났다. 블룸에너지 밸브 모듈 납품 직전인 2020년 212억원에서 납품 이듬해인 2022년 410억원, 지난해 630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률은 25.7%로 전년 동기 대비 10.5%포인트 늘었다.

올해는 블룸에너지로부터의 추가 수주를 따내는 것은 물론 미국 빅테크 기업과 계약 체결을 앞두고 있어 내년도 실적도 오름세를 기록할 전망이다. 이 대표는 “새로운 기회들이 열리면서 현재 추가 설비 도입을 위한 투자를 검토 중”이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인재를 채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민건태 기자 mink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