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3년 봄, 조선의 화가와 문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강세황은 거문고를 타고, 최북은 바둑을 뒀다. 젊은 김홍도는 퉁소를 불었고, 심사정은 담뱃대를 물고 앉았다. 이 모임을 담은 그림이 <균와아집도>다. 모임에 참석한 화가들은 각자 역할을 맡아 그림을 완성했다. 김홍도가 인물을, 심사정이 소나무와 바위를, 최북이 채색을 맡았다. 강세황은 전체 구도를 잡았다. 그림에 담긴 사연이다.
"나는 성리학의 금기를 넘었다"....신간 <조선의 그림이 내게 말하길,>
미술사학자이자 시인인 임희숙의 신간 <조선의 그림이 내게 말하길>은 조선 화가 16명의 삶을 그림 속 글귀와 문헌으로 되짚는다. 그림을 그린 때와 장소 등을 적은 '관지', 그림에 곁들인 시 '제시', 감상과 사연을 기록한 '발문'에 주목한다. 저자는 그림만으로는 알기 어려운 화가들의 상처와 우정, 희망을 이 글들에서 찾아낸다.
심사정이 1744년 그린 <와룡암소집도>도 그런 사례다. 김광수의 와룡암에 모여 서화를 논하던 일행은 갑작스러운 소나기를 만났다. 비가 그치자 심사정이 종이를 구해 풍경을 그렸다. 훗날 김광국은 우연히 이 그림을 다시 보고 이미 세상을 떠난 벗들과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글을 남겼다. 저자는 그림 속에 한여름의 풍경뿐 아니라 오랜 세월을 건너온 그리움이 담겼다고 설명한다.
윤두서의 <유림서조도>에는 숲에 깃든 새와 함께 친구들의 시가 남았다. 이잠이 시를 쓰고 이서와 윤두서가 화답했다. 저자는 정치적으로 소외됐던 윤두서가 이들과 학문과 문예를 나누며 어려운 시절을 견뎠다고 소개한다. 그에게 친구들은 몸을 기댈 수 있는 '숲'이었다는 것이다.
화가의 고집과 상처도 그림 너머에서 드러난다. 임진왜란 때 팔을 거의 잃을 뻔한 이정은 이후에도 대나무를 그렸고, 역적의 후손으로 살아간 심사정도 붓을 놓지 않았다. 장승업의 일화는 더 극적이다. 책은 장지연의 <일사유사>를 인용해 고종의 명으로 궁궐에서 병풍을 그리던 그가 술이 그리워 궁을 빠져나간 이야기를 들려준다. 다시 붙잡힌 뒤에도 군졸의 옷으로 갈아입고 도망쳤다고 한다.
신윤복은 <전모를 쓴 여인>에 자부심 섞인 사연을 남겻다. 그는 이전 사람들이 미처 하지 못한 일을 해냈다는 취지의 문구를 적었다. 저자는 기녀의 일상을 화폭으로 옮긴 신윤복이 당시 성리학 사회의 금기를 넘어섰다는 자부심을 표현한 것으로 읽는다.
저자는 그림 한쪽의 글을 읽으며 화가와 마주 앉아 옛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다고 말한다. 책은 정선과 김홍도부터 이름이 낯선 김지, 장한종까지 화폭에 남은 말과 삶의 기록을 함께 살핀다. 그림을 감상하는 일이 곧 그 그림을 그린 사람의 시간을 읽는 일이라는 설명이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