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할머니가 한 턱 쏜다!"를 돌아보며
“월급 탔다고 손자들에게 피자 한 턱을 냈는데, 너무 기뻤어요!”

몇 해 전 현장 구청장실을 찾은 박월선 어르신이 한 말이다. 어르신의 눈빛에는 손자들을 향한 애정과 함께 자신도 가족에게 무언가를 해줄 수 있다는 뿌듯함이 가득했다. 피자 한 판의 값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그 기쁨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박 어르신은 장위동에서 콩나물해장국 맛집으로 손꼽히는 ‘할매정(情) 국밥집’에서 일한다. “노인도 일할 기회를 달라”는 어르신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성북시니어클럽과 손잡고 작년 2월 연 식당이다. 열두 명의 어르신이 음식을 만들고 손님을 맞는다. 이곳에서 일하는 어르신들은 “월급은 생활에 보탬이 되는 돈이자, 가족에게 무언가를 해줄 수 있다는 기쁨”이라고 입을 모은다. 익숙한 솜씨를 발휘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보람도 더해진다. 어르신 일자리의 의미를 소득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다.

박 어르신의 말씀은 정책을 바라보는 기준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어르신을 도움받는 대상으로만 바라보면 그분들이 가진 경험과 능력은 물론 스스로 하고 싶은 일까지 놓치기 쉽다.

성북구 곳곳에는 어르신들이 자신의 경험과 관심을 살려 활동하는 현장이 있다. 올해 3월 오래된 경로당을 카페로 바꾼 ‘행복 더함’에서 이금숙 어르신은 커피와 음료, 디저트를 만들어 손님에게 대접한다. 작년 11월 개소한 ‘한올한올 봉제단’은 어려운 이웃의 이불과 의류를 수선한다. 이곳에서 일하는 이부남 어르신을 비롯한 단원들의 봉제 경력을 합치면 200년이 훌쩍 넘는다. 초로기 치매를 겪는 어르신들이 2023년부터 운영 중인 ‘기억품은 카페’에서는 스마트팜 수경 재배 활동에 참여한다.

이처럼 어르신의 경험은 지역사회에 보탬이 되고 새로운 관계도 형성된다. ‘돌봄의 확장’도 이어진다. 모든 일을 대신 해주는 게 아니라 당사자가 자신의 일상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어르신 삶의 질과 맞닿은 중요한 차이다.

물론 일자리가 노년의 어려움을 모두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모든 어르신에게 일을 권하는 것도 답이 될 수 없다. 쉬고 싶은 분에게는 편안한 휴식을, 보살핌이 필요한 분에게는 충분한 돌봄을 제공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각자의 바람과 상황에 맞게 뒷받침하는 일이다.

기초정부의 역할도 여기에서 시작한다. 어르신을 위해 무엇을 마련했는지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어르신의 뜻이 얼마나 반영됐는지 살펴야 한다. 기회를 마련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기회가 각자의 생활 속에서 어떻게 실현되는지 확인하는 것이 행정의 몫이다.

손자에게 피자를 사주고 싶은 마음, 익숙한 솜씨로 이웃을 돕고 싶은 마음, 집 밖에서 사람들과 만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품을 수 있는 바람이다. 행정은 그 바람을 작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어르신 한 분, 한 분이 자신의 뜻에 따라 하루를 꾸려갈 수 있도록 ‘무엇이 필요한지’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함께 질문해 보자. 도움이 필요할 때는 기댈 수 있고 참여하고 싶을 때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 그것이 행정의 사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