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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약국이 20억 따냈다…1.4조 쓸어간 '수상한 업체들'
"약국이 내진철근, 미용실이 산불장비 낙찰"…허술한 공공조달 사업
직원 0~1명·주거지 주소 업체에 3년간 1조3862억원
직원 1명 업체가 112억원어치 낙찰받기도
황정아 "AI로 부적격 입찰 걸러내는 조달 거름망 필요"
직원 0~1명·주거지 주소 업체에 3년간 1조3862억원
직원 1명 업체가 112억원어치 낙찰받기도
황정아 "AI로 부적격 입찰 걸러내는 조달 거름망 필요"
#경남 김해의 한 약국. 조달청 나라장터에 등록한 업종은 ‘약국’ 하나뿐이고 등록 직원은 0명이다. 그런데 이 약국은 최근 3년간 국립박물관 건립 현장의 내진철근 9억9500만원어치를 비롯해 지자체 굴착기, 해군 신호발생기 등 15건, 총 20억6000만원어치를 낙찰받았다.
#대구의 한 미용실 상호 업체도 과학벨트 가스엔진히트펌프(GHP) 실외기 3억9000만원과 대구시 산불 진화장비 2억8000만원을 낙찰받았다.
#대구의 한 미용실 상호 업체도 과학벨트 가스엔진히트펌프(GHP) 실외기 3억9000만원과 대구시 산불 진화장비 2억8000만원을 낙찰받았다.
이처럼 공급 능력을 가늠하기 어려운 업체들이 공공조달 사업을 잇달아 낙찰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부적절한 입찰을 사전에 걸러내는 ‘조달 거름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4일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조달청 나라장터 개찰 결과와 조달업체 등록정보 공공데이터를 AI 에이전트로 전수 분석한 결과, 등록 직원이 0~1명이면서 주소가 아파트·빌라 등 주거지로 표기된 업체 7063곳이 최근 3년간 2만1498건, 총 1조3862억원어치를 낙찰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분석은 2023년 11월부터 지난달까지 3년간 개찰된 물품·용역 낙찰 건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조달업체로 등록된 90만4759곳 가운데 직원이 0~1명이고 주거지 주소를 둔 업체는 6만7568곳이었다. 다만 등록 업체 수에는 폐업·말소 업체가 포함됐을 수 있다. 공공데이터 API 호출 과정에서 일부 개찰 건이 누락됐을 가능성도 있어 낙찰 건수와 금액은 최소치다.
등록 업종과 무관한 물품을 낙찰받은 사례도 적지 않았다. 조달청에 약국·급식·장례업·여행사 등 생활업종만 등록한 업체 109곳이 실험장비와 자재 등 무관한 품목을 낙찰받은 건수는 252건, 금액은 226억원에 달했다.
전북 익산의 장례업체 두 곳은 조달청에 등록한 업종이 ‘장의·장묘용역’ 하나뿐인데도 대학과 연구기관의 실험실습기자재, 강판, 오실로스코프 등을 각각 31건 22억7000만원, 27건 19억원어치 낙찰받았다. 두 업체의 등록 직원은 각각 1명과 0명이었다.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확인됐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의 슈퍼컴퓨터 6호기 상황실 디스플레이 구매 사업은 대구 달서구의 아파트를 주소지로 둔 직원 1명 업체가 낙찰받았다. 낙찰 금액은 1억8870만원으로, 입찰에는 296곳이 참여했다. 해당 업체는 말·쥐·천적·사료 등 2163개 품명을 등록해 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 주요 시설과 안전 관련 물품도 예외는 아니었다. 인천공항 수하물처리설비(BHS) 자재와 탑승교 중앙관제서버 등 4건, 79억3000만원어치는 모두 아파트·주상복합·주거용 오피스텔에 주소를 두고 직원이 0~1명인 업체들이 낙찰받았다. 소방서가 구매한 자동심장충격기와 인명구조경보기, 소방드론 역시 아파트·빌라 주소 업체들이 낙찰받았다. 이 가운데는 사료·화초를 등록 품명으로 둔 업체도 있었다.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일부 업체는 수천 개 품명을 등록해 두고 공고마다 낙찰하한율에 가까운 가격으로 투찰해 추첨식 낙찰을 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낙찰 이후 실제 제조·유통업체에서 물품을 공급받아 납품하거나 납품 권리를 넘기는 방식이다. 공급 능력을 충분히 갖추지 않은 업체가 공공조달 과정에 개입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황 의원은 “이재명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지적한 군납 조달 문제는 국방부만의 일이 아니라 조달 체계 전반의 문제”라며 “AI를 활용하면 공급 능력이 없는 업체의 부적합 입찰을 사전에 걸러낼 수 있는 만큼, 부적절 사례를 검토하고 제한하는 행정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입찰보증금 확대는 물론, 납품 권리만 파는 중개소식 입찰을 제한할 방법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지희 기자 keep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