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에서 졌다는 이유만으로 헌법재판소에서 다시 다툴 수 있을까. 지난달 열린 재판소원 첫 공개변론에서는 법원의 판단에 대한 불만과 기본권 침해를 어떻게 구분할지가 쟁점이 됐다. 녹십자 사건에서는 형사·행정재판의 결론이 달라진 이유를 법원이 충분히 설명했는지가, 압수수색 영장 사본 사건에서는 참고인이 압수수색에 제대로 대응할 기회를 보장받았는지가 논의됐다. 판결이 부당하다는 주장을 넘어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어떤 권리가 어떻게 침해됐는지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법조계의 평가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지난달 21일 참고인에게 압수수색 영장 사본을 교부하지 않은 사건, 23일 녹십자 백신 입찰 담합 과징금 사건의 공개변론을 진행했다. 지난 3월 도입된 재판소원은 법원의 확정된 재판이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헌재에 그 재판의 취소를 청구하는 제도다. 헌재 결정에 어긋나거나,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아 기본권을 침해한 재판, 헌법·법률 위반으로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 명백한 재판으로 한정다.
◇엇갈린 판결, 이유 설명 어디까지
녹십자는 백신 입찰 담합 관련 형사사건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에서는 패소했다. 대법원이 행정사건 상고를 심리불속행으로 기각하자 재판청구권을 침해당했다며 재판소원을 냈다.
청구인 측은 같은 행위가 경쟁을 제한했는지를 두고 두 재판의 결론이 달라졌는데도 대법원이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공정위 측은 형사재판과 행정재판에서 요구하는 증명의 정도가 다르고, 사실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수 있다고 맞섰다.
재판관들은 두 재판의 판단이 갈린 지점을 집중적으로 물었다. 다른 유통업체가 백신 공급확약서를 받을 가능성 등 기초 사실을 다르게 본 것인지, 경쟁 제한성이라는 법적 요건을 다르게 적용한 것인지 확인했다.
결국 쟁점은 두 재판의 결론이 다르다는 사실 자체보다 그 차이에 대한 대법원의 심리와 설명이 충분했는지다. 판결에 대한 불복과 기본권 침해 주장을 구분하는 기준도 이 과정에서 가려질 전망이다.
◇영장 보여주면 대응 기회 충분한가
영장 사본 사건에서는 압수수색을 받는 사람이 영장 내용을 충분히 확인하고 대응할 기회를 보장받았는지가 쟁점이 됐다. 이예람 중사 사건 특검의 압수수색을 받은 청구인은 참고인이라는 이유로 영장 사본을 받지 못했다. 법원은 휴대폰 등에 대한 압수 처분은 취소했지만, 사본 교부 거부에 대한 불복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형사소송법 제118조는 압수수색 대상자에게 영장을 보여주도록 하면서 사본 교부 대상은 피고인으로 정하고 있다. 수사 단계에도 적용되는 이 규정을 근거로 법원은 참고인에게 사본을 줄 의무는 없다고 판단했다.
공개변론에서는 피의자와 참고인을 다르게 취급할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영장을 잠시 보여주는 것만으로 당사자가 압수 범위를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는지도 논의됐다. 권리 침해를 어느 절차에서 다퉈야 하는지도 쟁점이었다. 법무부 측은 법률 내용에 따른 재판을 문제 삼는다면 실질적으로 법률 자체의 위헌성을 다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판소원이 아니라 기존 위헌소원 절차를 이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어떤 기본권이 어떻게 침해됐나
두 사건은 구체적인 권리 침해뿐 아니라 이를 왜 재판소원으로 다퉈야 하는지 설명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문제가 법률 규정 자체에 있는지, 법원의 해석·적용이나 재판 절차에 있는지를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과 로펌은 기존 소송에서 어떤 권리 침해를 주장했고 법원이 이에 어떻게 답했는지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판결이 엇갈렸다면 두 재판에 제출된 증거와 인정된 사실, 판단이 갈린 지점과 그 차이가 결론에 미친 영향을 살펴야 한다. 압수수색 사건이라면 영장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는지, 사본이나 촬영·메모를 요청했는지, 수사기관이 어떻게 대응했는지 등이 권리 침해를 설명할 자료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