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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아직 길 위에 있다
한지형 오토노머스에이투지 대표
처음에는 그저 앞만 보고 달렸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세상에 없던 자동차를 도로에 내보내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회사가 커지고 함께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길의 무게도 달라졌다. 어느 순간 두려운 마음에 잠시 멈춰 뒤를 돌아보면, 어느새 너무 많은 사람이 나를 따라오고 있다. 그리고 옆을 보면 내가 망설이는 동안에도 어둠을 헤치며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동료가 있다. 이제는 혼자 멈추고 싶다고 멈출 수 있는 길이 아니다.
창업 5년 차 무렵 인터뷰에서 “가장 힘들었던 위기가 언제였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시에는 자금이 부족했던 순간이나 사업이 계획대로 풀리지 않았던 일을 떠올리며 답했다. 그런데 요즘 같은 질문을 받으면 대답이 달라진다. “바로 지금입니다.” 회사가 성장하면 어려움도 줄어들 줄 알았는데, 오히려 책임져야 할 것이 많아지고 결정의 무게도 커졌다. 어제 해결한 문제보다 오늘 새롭게 마주한 일이 더 크게 느껴질 때도 있다.
물론 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는 그만큼의 기회가 있다. 경쟁자가 없는 블루오션을 개척하고, 새로운 시장을 먼저 차지하는 기업이 큰 보상을 얻는다는 이야기도 있다. 나 역시 그런 가능성을 믿었기에 안정적인 직장을 떠나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을 것이다. 지금도 그 꿈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달라진 생각이 있다. 처음에는 높은 산의 정상에 오르는 것이 목표였다. 정상에 서면 그동안의 고생을 모두 보상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산을 오르다 보니 정상은 여전히 멀고, 올라갈수록 길은 더 가팔라진다. 때로는 안개가 짙어 정상의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요즘은 그 과정이 싫지만은 않다. 힘든 길을 함께 걷는 사람이 있고, 서로 손을 내밀어주며 예상하지 못한 길을 찾아내기도 한다. 잠시 멈춰 주변을 돌아보면 올라온 길이 보이고, 처음에는 미처 보지 못한 풍경도 눈에 들어온다. 어쩌면 내가 찾는 즐거움은 정상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혼자 걷는 길이었다면 이미 여러 번 돌아섰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앞에서 길을 살피고, 누군가는 뒤에서 힘을 보태며, 또 다른 누군가는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방향을 알려준다. 서로 다른 생각과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같은 길을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인지 요즘 새삼 느낀다. 이제는 내가 사람들을 이끌고 있다고 생각하기보다, 그 사람들 덕분에 나 역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더 자주 한다.
언젠가 우리가 처음 꿈꾼 정상에 도착할 수도 있고, 전혀 다른 곳에 이르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두려움을 이겨내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온 시간만큼은 어떤 결과로도 대신할 수 없을 것이다.
여전히 내일이 두렵고, 어디까지 가야 할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높은 곳에 오르느냐만이 아니라 누구와 함께, 어떤 마음으로 그 길을 걷느냐는 것이다. 아직 정상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오늘은 잠시 고개를 들어 주변의 풍경을 바라보며, 함께 걷는 사람들과 이 길을 조금 더 즐겨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