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HMM·KAI의 제자리걸음
옛 대우조선해양 시절부터 오래 근무한 영업직원에게 한화오션 직원이 된 소감을 물은 적이 있다. 답은 “일이 열 배 많아졌다”였다. 한화에 인수된 직후 직원 간 좌석 거리가 예전의 절반으로 줄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동료와 너무 가까워 불편할까 봐 걱정했는데, 정작 너무 바빠서 옆에서 뭘 하는지 서로 관심을 가질 겨를조차 없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한화오션으로 바뀌면서 대우조선 시절엔 상상하지도 못할 과감한 의사결정도 이뤄졌다. ‘마스가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미국 필리조선소 인수가 대표적이다. 경쟁사에선 대우조선 시절과 달리 독해졌다는 말이 나온다. 22년간 산업은행 산하에 있던 대우조선이 ‘진짜 민간 기업’이 되면서 일어난 변화다.

몸집 키우기 나선 경쟁사들

2016년부터 세계 8위 해운사인 HMM의 최대주주도 산은이다. 지금도 그렇다. 2023년 새 주인을 찾아주기 직전까지 갔지만, 막판에 무산됐다. 이후 논의는 잠잠하다. 그 사이 글로벌 해운사는 덩치 싸움에 들어갔다. 지정학적 위기와 운임 변동성 등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규모의 경제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선복량 기준 세계 5위 선사였던 독일 하파그로이드는 세계 10위 해운사 짐을 인수하기로 했다. 해운업계에선 1~5위 선사가 6~10위 선사를 계속 노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HMM은 2021년 이후 선복량 8위 선사에 머물러 있다. 선복량 7위와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해운사 연합인 얼라이언스를 구성하는 싸움에서도 밀리고 있다. HMM은 세계 6위 및 9위 선사와 동맹을 맺고 있는데, 다른 얼라이언스에 비해 규모가 작다. HMM이 몸집 키우기 경쟁에 제대로 뛰어들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대주주가 산은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경쟁사와 비교해 점점 뒤처질 것이란 우려가 사그라들지 않는 이유다.

민영화 논의 시작해야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상황도 비슷하다. 최대주주는 수출입은행이다. 1999년부터 계속 국책금융기관 산하에 있다. 지난 5년간 경쟁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매출은 네 배로 커졌고, LIG디펜스&에어로스페이스의 매출도 세 배 가까이 늘었다. 현대로템도 마찬가지다. KAI 매출은 2조8251억원에서 3조6963억원으로 소폭 늘었을 뿐이다.

KAI의 주된 사업영역 중 하나인 우주산업의 변화 속도는 아찔할 정도로 빠르다. 민간이 우주 개발 주도권을 잡으면서다. 미국의 스페이스X는 벌써 1만 개 이상의 위성(스타링크)을 우주에 띄웠다. 현재 미국에서 발사되는 로켓 대부분은 스페이스X가 쏜 것이다. KAI가 이 같은 변화의 속도를 따라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KAI만 유독 제자리걸음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지금까지 KAI 사장의 평균 임기는 2.8년. 정권이 바뀌면 기존 사장이 사표를 내고, 새 대통령의 캠프에서 뛰었던 인사가 새 사장으로 오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8개월간 사장이 공석인 적도 있었다. 역대 9명의 대표이사 사장 중 내부 출신은 한 명뿐이다. 민간 기업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앞으로 국내외 경쟁사에서 HMM과 KAI가 독해졌다는 말이 나올 수 있을까. 정답은 정해져 있다. 산은 산하 대우조선의 22년을 반복하지 않는 일이다. 정부에 묶여 있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경쟁사와의 격차만 벌어진다. 지금이라도 민영화 논의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