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1914년경 미국 롬주립보호수용소 아동 병동의 내부 모습. 롬주립보호수용소·동아시아 제공
1910~1914년경 미국 롬주립보호수용소 아동 병동의 내부 모습. 롬주립보호수용소·동아시아 제공
20세기 초 미국 피츠버그의 철강 공장에서 손가락 하나를 잃는 일쯤은 드물지 않았다. 다친 손이 위험한 작업장에서 고되게 일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숙련의 징표’로 여겨지기까지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손은 취업을 가로막는 명백한 결격 사유가 됐다. 한때 경험을 드러냈던 것이 이제는 ‘일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낙인이 된 것이다.

장애인을 일할 수 없는 사람, 남의 도움으로 살아가는 존재로 여기는 통념은 언제부터 생겼을까. 세라 F. 로즈 미국 텍사스대 알링턴 캠퍼스 교수의 <장애의 발명>은 그 답을 찾기 위해 1840~1930년대 미국 노동시장에서 장애인이 배제되는 과정을 들여다본다.

저자는 산업화와 도시화, 가족구조의 변화와 공공정책이 한데 맞물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장애를 비생산성, 시민으로서의 자격 미달, 공적 지원 또는 자선 지원에 대한 의존과 동의어로 여기는 20세기의 통념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며 “그것은 한 시대의 조건들이 만들어낸, 그야말로 하나의 발명이었다”고 했다.

농업이 중심이던 과거 미국 사회에서는 장애인도 공동체에 비교적 통합됐다. 발달장애인을 교육하던 당시 ‘백치수용소’의 기록은 이를 보여준다. 농촌 출신 교육생은 시설에 머무는 기간이 비교적 짧았고, 집으로 돌아가 정착할 가능성이 높았다. 가족은 이들에게 맡길 일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산업화는 이런 환경을 통째로 흔들었다. 미국 남북전쟁 이후 수용소에는 도시의 가난한 임금노동자 가정 출신 아이가 늘어났다. 생계가 어려운 가족은 장애가 있는 구성원을 돌보기 어려웠다. 교육 후 가정으로 돌아가는 것을 전제로 했던 시설은 점차 장애인이 평생을 보내야 하는 공간이 됐다.

장애인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가 뜻밖의 배제를 낳기도 했다. 1910년대 미국에서 시행된 산재보상법은 일하다가 다치거나 숨진 근로자와 그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됐다. 피해를 보상하는 장치가 마련된 것이지만, 기업은 장애인을 고용하는 일을 잠재적인 보상 부담으로 여기게 됐다.

이미 장애를 지니고 있던 근로자가 두 번째 부상으로 중증도가 높은 장애인이 됐을 때도 기업이 거액의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에 기업들은 장애를 지닌 구직자를 채용에서 완전히 배제하기 시작했다. 결국 채용 전 신체검사를 통해 장애인을 걸러내는 일이 1920년대부터 주요 기업의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1917년 포드자동차에서 내장재 장식 작업을 하고 있는 남성 장애인 근로자. 다리가 절단돼 있다. 헨리포드박물관·동아시아 제공
1917년 포드자동차에서 내장재 장식 작업을 하고 있는 남성 장애인 근로자. 다리가 절단돼 있다. 헨리포드박물관·동아시아 제공
20세기 초반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도 있었다. 포드자동차 얘기다. 1919년 기준 전체 직원 3만3000명 중 9000명 이상, 즉 3분의 1에 가까운 근로자가 장애나 질병을 지니고 있거나 신체적으로 기준에 미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장애인을 적극적으로 고용한 것이다. 이는 창업자인 헨리 포드의 시각이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장애가 있는 사람을 적절한 직무에 배치하기만 한다면 이들도 비장애인만큼 생산적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1910년대 포드자동차의 사회학부서와 의료부서는 모든 개별 공정을 조사해 직무를 분류했다. 포드자동차는 670개 작업은 다리가 없는 남성이, 약 2600개는 한쪽 다리만 있는 남성이, 2개는 양팔이 없는 남성이 수행할 수 있다는 통계를 확보했다. 다만 포드자동차 역시 시대 변화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산재보상법 통과와 1930년대 대공황기를 거치면서 예전과 같은 기조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과 맞닥뜨렸다.
1934년 포드자동차 리버루지 공장에서 볼트와 너트를 분류하는 시각장애 남성들. 헨리포드박물관·동아시아 제공
1934년 포드자동차 리버루지 공장에서 볼트와 너트를 분류하는 시각장애 남성들. 헨리포드박물관·동아시아 제공
이 책은 <아픔이 길이 되려면>의 저자 김승섭 서울대 교수가 <장애의 역사>에 이어 번역과 해제를 맡았다. 김 교수가 출판사에 직접 번역 출간을 제안했다고 한다. 그는 해제에서 “한국에서 장애인은 학교와 병원, 대중교통에서 숱한 장벽을 만나지만 가장 명확히 배제가 드러나는 영역은 일터”라며 “이 책이 한국 사회에서 널리 읽히기를, 그리고 많은 자리에서 쓰이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