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갈하게 빗어 올린 하얀 가발의 신사. 그가 서른다섯 해 생애 동안 남긴 600여 곡 가운데 어두운 단조 작품은 5%에 불과하다. 고전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 모차르트의 음악이 밝고 단정하다는 인식이 강한 이유다.
지난 5일 대구 수성아트피아에서 리사이틀을 연 피아니스트 임윤찬. 수성아트피아 제공 ⓒKim Taehyeon
지난 5일 대구 수성아트피아에서 열린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리사이틀은 모차르트에 대한 그간의 통념을 뒤흔든 파격의 무대였다. 임윤찬의 헝클어진 머리칼처럼 자유롭고 대담한 해석을 만난 모차르트는 때로 신비주의 음악의 대명사인 스크랴빈을 연상시켰다. 템포를 자유롭게 밀고 당기고 잔향을 길게 늘이자, 반듯하던 고전주의의 선율이 환상적이고 입체적으로 살아났다. "음반으로 예습한 곡과 완전히 다르다"는 탄성이 객석 곳곳에서 나온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이번 공연은 올해 모차르트 탄생 270주년을 맞아 임윤찬이 기획한 월드 투어의 첫 무대였다. 1부는 초기작인 피아노 소나타 1번과 6번으로 채워졌다. 낮게 깔리는 임윤찬의 허밍과 함께 시작한 1번 1악장을 지나 2악장에 들어서자 마치 악보 위에 잠들어 있던 음들이 하나둘 깨어나듯 했다. 그는 정형화된 해석에서 벗어나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지점에서 힘을 주거나 음들을 흘려보냈다. 아티큘레이션(음의 표현 방식)과 템포에 변화를 주며 음 하나하나를 굴절시켜 전에 없던 빛깔의 선율을 만들어냈다.
지난 5일 대구 수성아트피아에서 리사이틀을 연 피아니스트 임윤찬. 수성아트피아 제공 ⓒKim Taehyeon
쉬는 시간 이후 이어진 2부에서 기대를 모은 곡은 환상곡 라단조였다. 미완성으로 남은 이 곡의 종결부는 연주자에 따라 다른 해석을 채워넣을 수 있다. 임윤찬은 일본 출신 피아니스트 미츠코 우치다처럼 도입부의 묵직한 단조 선율로 돌아가는 해석을 택해 긴 여운을 남겼다.
이어 오페라적 색채가 강한 소나타 12번의 3악장에서 격렬한 타건을 쏟아낸 임윤찬에게 객석은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다. 마지막 곡인 소나타 8번에서는 모차르트 특유의 순수함 뒤에 숨은 비극성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앙코르는 다시 첫 곡인 소나타 1번의 3악장으로 돌아가 무대를 마무리했다.
이날 임윤찬은 고전주의라는 틀 안에서 모차르트를 바라보는 청중에게 해석의 자유를 선사했다. 단정하기만 한 모차르트가 아니라 어느 정도 헝클어진 모차르트, 그래서 더 매력적인 모차르트였다. 공연은 6일 울산에 이어 다음 달 26일 김해·27일 강릉·28일 시흥 등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