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위 10% 월평균 80시간 일할때
상위 10%는 175시간…2.2배 差
단기알바 늘고 최저임금 인상탓
이창용 "주52시간 후 급여 줄어
주4.5일제 도입 신중해야" 지적
30년 전과 비교해 근로자 사이의 ‘시간당 임금’ 불평등은 줄었지만 손에 쥐는 월급의 격차는 오히려 커졌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저임금 근로자의 시급은 올랐지만, 일할 수 있는 시간이 그보다 더 빠르게 줄었기 때문이다.
◇상·하위 10%, 근로시간 격차 2배 넘어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달 발간한 ‘노동정책연구’에 실린 ‘근로시간과 임금불평등의 구조적 전환’ 보고서에 따르면 시간당 임금 상위 10%와 하위 10%의 임금 격차는 2008년 9.56배에서 2023년 6.02배로 줄었다. 최저임금 인상 등의 영향으로 불평등이 완화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시간당 임금이 아닌 월급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같은 기간 상위 10%의 평균 월급은 하위 10%의 8.92배에서 12.4배로 되레 벌어졌다.
시간당 임금 격차와 월임금 격차가 거꾸로 움직인 건 근로시간 때문이다. 월임금 하위 10% 근로자의 월평균 근로시간은 1995년 203.6시간에서 2008년 157.7시간, 2023년 80.5시간으로 급감했다. 2008년 이후 15년 만에 거의 절반으로 감소한 것이다.
반면 월임금 상위 10% 근로자의 근로시간은 1995년 202.3시간에서 2008년 177.0시간, 2023년 174.9시간으로 소폭 줄어드는 데 그쳤다. 2008년 이후로는 사실상 제자리였다. 1995년만 해도 두 집단의 근로시간 격차는 0.99배로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2008년 1.12배로 벌어지더니 2023년에는 격차가 2.17배에 달했다.
보고서는 “저임금층의 시간당 보상은 나아졌지만 일하는 시간이 크게 줄면서 그 효과가 월급 격차 완화로 이어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얼마나 일할 수 있느냐가 곧 소득
근로시간 감소로 받는 타격도 계층마다 달랐다. 고임금층은 대체로 월급제나 연봉제로 보상받고, 보상 수준도 직무 성과와 직위, 기업 내부 보상체계에 따라 정해진다.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으로 근로 시간이 법정 한도까지 줄었지만, 감소 폭에는 한계가 있었고 월급도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시급제가 대부분인 저임금 일자리에서는 근로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소득도 곧바로 깎였다. 결국 ‘얼마나 오래 일할 수 있느냐’가 소득을 좌우하는 셈이다.
하위 10%에서 근로시간이 급감한 것은 ‘단시간 일자리’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사용자가 근로시간을 줄일 유인이 생겼다고 봤다. 사업주는 늘어난 인건비 부담을 덜기 위해 근로시간을 줄이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임금근로자 가운데 월 소정근로시간 60시간(주 15시간) 미만인 초단시간 근로자 비율이 2012년 3.7%에서 2024년 8.5%로 두 배 이상으로 뛰었다.
보고서는 “1990년대 중반까지는 낮은 시급이 저임금의 주된 원인이었지만 오래 일해서 부족한 임금을 어느 정도 메울 수 있었다”며 “2008년 이후에는 일할 시간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저임금층의 월급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가 됐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창용 전 한국은행 총재는 6일 ‘서울대 국가 미래전략원 인구클러스터 포럼’에서 ‘근로시간 제도, 어떻게 바꿀 것인가?’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주 52시간제 도입이 저소득층의 소득을 감소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주 52시간제 도입 후 1분위(하위 20%)의 초과근로시간과 초과급여는 각각 15.5%, 15.9% 감소했다. 이에 비해 5분위는 각각 3.0%, 0.1% 줄어드는 데 그쳤다.
이 전 총재는 “주 4.5일제 도입은 신중해야 한다”며 “근로시간을 일률적으로 줄이기보다 휴가를 제대로 쓸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