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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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상업 영화들이 수개월 혹은 수년의 서사로 사건을 빌드업하는 것과 달리, 우리 영화는 네 개의 대화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작고 사소함에 담긴 아름다움에 집중하고 싶었습니다." (김종관 감독)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무르익어가는 시기, 아늑한 카페 공간을 매개로 네 쌍의 남녀가 주고받는 담백하고 유쾌한 대화가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의 화려한 막을 올렸다.

6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영화 '낮과 밤은 서로에게'의 공식 시사회 및 기자간담회가 성황리에 개최됐다. 이 자리에는 메가폰을 잡은 김종관 감독을 비롯해 주연 배우 김민하, 주종혁, 한선화, 장률, 심은경, 전소영, 김동휘, 그리고 작품을 이끈 정지혜 프로그래머가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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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의 포문을 연 '낮과 밤은 서로에게'는 김종관 감독의 신작으로, 2016년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 파노라마 부문에 선정됐던 '더 테이블'의 계보를 잇는 작품이다. 하나의 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네 가지 이야기를 담았으며, 총 80분의 러닝타임 동안 불특정 다수가 머물다 떠나는 카페라는 장소적 특성을 적극 활용해 인물 고유의 서사와 미세한 뉘앙스를 경쾌한 호흡과 사려 깊은 시선으로 풀어냈다.

작품은 동일한 카페의 서로 다른 시간대에 머물며 우연한 마주침을 겪는 유진(김민하)과 현오(주종혁)의 이야기로 문을 연다. 이어 중학교 동창인 상미(한선화)와 영민(장률)의 엉뚱하고 느닷없는 재회, 웹소설 작가 혜진(심은경)과 영화감독 동남(이희준)의 웃음기 가득한 불꽃 튀는 첫 만남, 아이돌 준비생 나경(전소영)과 연인 종수(김동휘)가 나누는 애틋한 한순간이 차례로 이어진다. 과도한 설정이나 과격한 갈등 전제 없이 관계의 미세한 진동을 포착해 낸 점이 두드러진다.

정지혜 프로그래머는 이번 작품의 선정 배경에 대해 "'낮과 밤은 서로에게'는 김종관 감독이 벼려낸 완숙한 결실"이라고 평가하며 "감성적인 축조 속에 관객의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힘이 있고, 출중한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가 더해져 탁월한 내공이 온전히 전달된다. 규모의 대소를 떠나 의미와 가치가 깊은 작품이며, 너른 연령층의 관객들이 무리 없이 즐겁게 볼 수 있어 주저 없이 개막작으로 낙점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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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관 감독은 개막작으로 선정된 소감에 대해 "오랫동안 같은 작업을 지속해 오며 단련되었다고 생각했는데도 여전히 떨리고 긴장된다"며 운을 뗐다. 이어 "우리 영화는 거대하고 자극적인 사건 대신 작고 사소함에 집중한 이야기"라며 "현호가 처음 시계를 보며 그 작은 세계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듯, 일반적인 상업 영화들이 수개월 혹은 수년의 서사로 사건을 빌드업하는 것과 달리 우리 영화는 네 개의 대화만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화라는 단면을 통해 관객들이 인물들이 어디서 왔고 어디로 흘러갔을지 상상하고, 그 다음의 무언가를 스스로 그려보길 바랐다"며 "세계적 위상의 영화제에서 우리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작고 사소한 것들의 가치에 손을 들어준 것 같아 깊이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영화의 제목이 지닌 함의에 대해선 "한 사람은 낮, 다른 사람은 밤을 대변하며 서로 연결되기도 하고, 마지막 에피소드처럼 같은 공간 안에서 낮과 밤이 교차하기도 한다"며 "그 안에는 창작을 향한 꿈과 현실의 대비, 그리고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고자 하는 소망이 겹겹이 쌓여 있다. 영화가 끝난 뒤 관객 개개인의 감상으로 확장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배우들의 입을 통해서는 작품에 참여하게 된 감격스러운 소감과 비하인드 에피소드가 쏟아졌다. 특히 김민하와 한선화는 촬영 시기와 맞물린 특별한 '선물' 같은 일화를 전해 눈길을 끌었다.

캐나다 토론토에서 해외 촬영을 소화하던 중 대본을 받아들었다는 김민하는 "어릴 적부터 김종관 감독님의 열렬한 팬이어서 관객과의 대화(GV)도 쫓아다니곤 했는데, 제게 대본을 주신다는 것 자체가 꿈만 같았다"고 회상했다.

이어 "토론토에서 글을 읽고 마치 누군가의 비밀스러운 일기장을 훔쳐본 듯한 느낌에 곧바로 문자를 보냈다"며 "더 놀라운 건 제 에피소드 촬영 날이 마침 제 생일이어서 평생 잊지 못할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소소한 행복과 삶의 물결을 돌아보게 해 준, 제게는 총 세 번의 선물을 안겨준 작품"이라며 벅찬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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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이날 생일을 맞이한 한선화 역시 감격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는 "민하 씨가 세 번의 선물을 받았다고 했는데, 저 역시 감독님께 최고의 생일 선물을 받았다"고 화답했다. 이어 "고향인 부산에서, 그것도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참석하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너무나 설레고 행복하다"며 "'더 테이블', '최악의 하루' 같은 감독님의 전작들을 몇 번이고 돌려보며 팬 자처했는데, 내가 그 화면 안에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기뻐했다.

주종혁은 감독과의 깊은 신뢰를 드러냈다. 그는 "2년 전 부산국제영화제 저녁 자리에서 처음 뵙자마자 속내를 털어놓고 싶을 정도로 최고의 리스너이셨다"며 "대본을 받아들고 우리 삶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정말 많이 나누며 촬영 내내 이토록 편안했던 적이 없었다. 감독님을 전적으로 의지했고, 김민하 배우가 숨 쉬듯 자연스럽게 연기한다는 말씀을 듣고 그 톤에 발맞추려 부단히 연구하며 즐겁게 임했다"고 전했다.

장률은 독특한 호흡을 맞춘 상대 배우와 에피소드에 대한 소회를 풀었다. 그는 "여행 중에 대본을 제안받았는데 너무나 재미있게 읽혀서 하루빨리 감독님을 뵙고 싶었다"며 "특히 한선화 씨가 파트너라는 이야기를 듣고 기대가 컸다. 다른 에피소드에 비해 대사의 개연성과 특색이 강한 장면들이라, 파트너의 연기를 온전히 감각하며 반응하는 데 집중했다. 다음 작업에서도 꼭 다시 만나고 싶은 행복한 작업이었다"고 찬사를 보냈다.

이에 대해 김종관 감독은 한선화와 장률의 호흡을 언급하며 "두 사람의 연기는 공격과 수비의 공수가 아주 분명하다"며 "영화는 액션과 리액션으로 이루어지는데, 한쪽이 맹렬하게 액션을 펼칠 때 다른 한쪽이 리액션으로 채워내는 과정은 엄청난 계산과 섬세함을 요구한다. 실제로 리허설을 가장 많이 거친 팀"이라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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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연기 변신에 나선 심은경은 깊은 고민과 도전의 과정을 털어놓았다. 그는 "집에서 조용히 대본을 받아 읽었을 때, 혜진이라는 인물은 제게 평소 익숙하지 않은 성격이자 해보지 않았던 결의 캐릭터라 다가가기 쉽지 않았다"며 "왜 감독님이 하필 나에게 이 역할을 제안하셨을까, 혹시 더 잘 어울리는 다른 배우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워낙 좋아하는 감독님이기에 꼭 함께하고 싶었고, 짧은 기간이었지만 새로운 캐릭터를 소화한다는 도전적인 의미가 남달랐다. 첫 테이크에는 긴장했으나 점차 릴렉스되면서 나중에는 애드리브까지 섞어갈 정도로 편안하게 임했다. 관객들이 제 새로운 얼굴을 어떻게 마주하실지 자그마한 기대가 된다. 한여름 밤의 꿈처럼 아름다운 작품"이라고 기대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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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데뷔작에 임한 신예 전소영은 떨리는 목소리로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는 "시나리오를 받고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겁부터 났지만, 감독님께서 용기를 북돋아 주셔서 큰 배움의 기회를 얻었다"며 "인생 두 번째 작품이라 카메라 동선부터 눈빛, 대사 처리까지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는데 감독님과 선배님들께서 처음부터 끝까지 자상하게 이끌어주셨다. 동휘 선배님이 연기를 너무 잘 받쳐주신 덕분에 촬영장이 편안했고 행복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군 입대 전 마지막 작품을 완성한 김동휘는 벅찬 심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학창 시절 영화 수업마다 빠지지 않고 거론되던 거장 김종관 감독님의 세계에 일원이 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배우로서 큰 뿌듯함이었다"며 "당시 경력이 없던 소영 배우가 현장에서 좋은 에너지를 불어넣어 준 덕분에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입대를 사흘 앞두고 촬영을 끝마쳤는데, 오늘 비로소 영화를 완성된 형태로 관람하게 되어 감회가 새롭다"고 소회를 전했다.

기자간담회 막바지, 김종관 감독은 미시적인 세계 속 감정들을 오롯이 직조해 내기 위한 치열한 고민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그는 "이 미세하고 섬세한 이야기를 스크린에 구현하기 위해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수많은 도전과 싸움을 감내해야 했다"며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모두 현장을 지킨 배우와 스태프들의 뜨거운 열의 덕분이었다. 시각적으로도 흥미로운 요소들이 담긴 만큼, 관객들의 마음에 깊은 울림으로 남기를 바란다"고 갈음했다.

한편 올해 영화제는 이날 개막식을 시작으로 오는 15일까지 열흘간 부산 일대에서 대장정에 돌입한다. 이번 영화제에는 59개국에서 총 247편의 작품이 공식 초청되었으며, 전 세계 최초로 공개되는 월드 프리미어만 93편에 달한다. 공식 초청작 외의 작품을 모두 포함하면 총 316편의 영화가 부산 전역의 8개 극장, 31개 스크린을 통해 관객들과 만난다. 마지드 마지디, 고레에다 히로카즈, 라브 디아즈, 차이밍량 등 세계적 거장들은 물론, 저우쉰, 판빙빙, 나가사와 마사미, 매기 질렌할 등 글로벌 스타들이 대거 부산을 찾아 축제의 열기를 더할 전망이다.


부산=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