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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펩시 팔고 싶어도 못 팔아요"…오세훈도 반한 '비밀 시장' [권용훈의 트렌드워치]
2030 점령한 서울의 '비밀 놀이터'
찾기 어려워 골목 몇 바퀴 돌지만
코카콜라 입히자 청년·외국인 북적
오세훈 서울시장도 감탄사 연발
찾기 어려워 골목 몇 바퀴 돌지만
코카콜라 입히자 청년·외국인 북적
오세훈 서울시장도 감탄사 연발
“지도에는 도착했다고 나오는데 입구가 안 보여서 주변을 세 바퀴나 돌았어요. 겨우 찾아 들어오니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네요.”
지난 20일 오후 서울 용산구 해방촌 신흥시장. 친구와 함께 시장을 찾은 직장인 이모씨(29)는 휴대전화 지도를 연신 확대하며 좁은 골목을 오갔다. 지도상 목적지에 도착하고도 낡은 주택과 상점 사이에 숨은 입구를 찾지 못해서다. 한참을 헤맨 뒤 작은 통로로 들어서자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오후 7시를 넘기자 골목에 놓인 테이블이 빠르게 찼다. 퇴근한 직장인과 데이트를 나온 연인, 외국인 관광객이 오래된 시장 지붕 아래 뒤섞였다. 반찬과 채소를 사던 생활시장은 세월의 흔적을 지우지 않은 채 2030세대의 저녁 놀이터로 변했다. 길을 헤매야 비로소 나타나는 서울의 ‘비밀 시장’. 그 안에서 시민들은 코카콜라만 주문했고, 펩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저녁만 되면 2030·외국인 '빼곡'
노란 전구가 길게 늘어진 시장 안은 젊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오래된 벽돌 건물 아래 놓인 테이블에서는 연인들이 와인잔을 기울였고, 바로 옆 중식당에서는 가족 단위 외국인 관광객이 식사를 즐겼다. 좁은 통로를 오가며 사진을 찍거나 빈자리를 찾는 방문객도 끊이지 않았다. 오래된 정육점과 반찬가게 사이로 와인바와 카페, 중식당, 사진관 등이 들어선 모습은 전통시장보다는 2030세대의 ‘비밀 놀이터’에 가까웠다.시장 전체를 지배한 색은 붉은색이었다. 식당 간판과 차양, 냉장고와 테이블마다 코카콜라 로고가 붙어 있었다. 음료를 주문한 손님 앞에도 어김없이 코카콜라가 놓였다. 펩시 제품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다. 신흥시장이 사실상 ‘펩시 청정지역’이 된 셈이다.
홍승진 신흥시장 상인회 부회장은 “지금 시장 안에서는 펩시를 쓰고 싶어도 못 쓴다”며 웃었다. 그는 “코카콜라와 협업한 뒤 시장 전체에 통일감이 생기고 사진을 찍으러 오는 젊은 손님도 많아졌다”며 “구경만 하고 가는 게 아니라 식사하고 술까지 마시면서 체류 시간도 길어졌다”고 말했다.
이달부터는 시장 상인들의 삶을 기록한 ‘신흥시장 사람들 위드 코카콜라’ 전시도 열고 있다. 시장 곳곳에서 오랫동안 장사해온 상인들의 얼굴과 이야기를 사진과 영상으로 보여준다. 브랜드가 시장의 오래된 흔적을 지우는 대신 상인들의 삶을 콘텐츠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팝업스토어와 차이가 있다.
연인과 시장을 찾은 대학원생 김모씨(27)는 “전통시장이라고 해서 오래된 식당 몇 곳만 있을 줄 알았다”며 “와인을 마시고 식사한 뒤 사진까지 찍을 수 있어 성수동보다 덜 붐비는 숨은 놀이터를 발견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서울시, 낡은 공간 정비나서
1953년 형성된 신흥시장은 한때 빈 점포가 늘며 쇠락한 전통시장이었다. 반전의 계기는 도시재생이었다. 서울시와 용산구는 노후한 시설과 주변 골목을 정비하고 시장 위에 구름을 형상화한 흰색 아케이드 ‘클라우드’를 설치했다. 오래된 콘크리트와 붉은 벽돌, 좁은 골목은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살렸다. 클라우드는 2024년 서울시 건축상 대상을 받았다.오세훈 서울시장도 지난해 5월 신흥시장을 찾아 클라우드와 점포들을 직접 둘러봤다. 당시 오 시장은 옛 시장의 분위기를 살린 공간과 젊은 상인들의 개성 있는 점포에 큰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코카콜라가 신흥시장을 택한 것은 낡은 전통시장과 젊은 외식문화가 공존하는 이곳이 2030 소비자와 접점을 넓히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개별 음식점에 음료를 공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냉장고와 간판, 차양 등을 지원해 골목 전체를 브랜드 체험 공간으로 만들었다. 상인에게는 시설 개선과 집객 효과를, 코카콜라에는 경쟁 제품을 밀어내는 ‘상권 선점’ 효과를 주는 전략이다.
신흥시장의 경쟁력은 역설적으로 불편함에 있다. 남산 아래 가파른 언덕을 올라야 하고 입구도 단번에 찾기 어렵다. 하지만 2030세대에게 이런 수고는 ‘남들이 모르는 장소를 발견했다’는 경험이 된다. 간판이 크게 보이는 대형 상권과 달리 일부러 찾아야 한다는 점이 오히려 입소문을 만드는 장치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