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오후 7시께 홍콩 침사추이의 한식당 앞에 현지 손님들이 길게 줄을 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족발과 갈매기살 등 한국에서 익숙한 메뉴를 내세운 식당에도 손님이 몰렸다. 권용훈 기자
지난 16일 오후 7시께 홍콩 침사추이의 한식당 앞에 현지 손님들이 길게 줄을 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족발과 갈매기살 등 한국에서 익숙한 메뉴를 내세운 식당에도 손님이 몰렸다. 권용훈 기자
"어서오세요. 몇 분이세요?"

지난 16일 오후 7시 홍콩 침사추이의 한 골목. 현지 식당 직원이 한국어로 손님을 맞았다. 가게 밖에는 수십 명이 길게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메뉴판에는 ‘족발’ ‘해물파전’ ‘삼겹살’ 같은 한글 메뉴명이 큼지막하게 적혀 있다. 직원도, 손님도 모두 한국인이 아니었다. 주문할 때 한국어 메뉴명을 그대로 말하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침사추이는 홍콩을 대표하는 관광·쇼핑 중심지다. 대형 쇼핑몰과 호텔, 글로벌 브랜드 매장이 밀집해 관광객과 현지인이 뒤섞이는 상권이다. 한인타운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인이 아닌 현지 사업자가 한글 간판을 내걸고 한식을 팔고, 현지인들이 줄을 서서 먹는 풍경이 이제 낯설지 않다.
지난 16일 홍콩 침사추이 킴벌리로드 일대에 ‘돌담길’ ‘광장시장’ 등 한글 간판을 내건 한식당들이 들어서 있다. 현지 상권에서도 한국식 상호와 메뉴명을 그대로 사용하는 식당이 늘고 있다. 권용훈 기자
지난 16일 홍콩 침사추이 킴벌리로드 일대에 ‘돌담길’ ‘광장시장’ 등 한글 간판을 내건 한식당들이 들어서 있다. 현지 상권에서도 한국식 상호와 메뉴명을 그대로 사용하는 식당이 늘고 있다. 권용훈 기자
골목을 조금만 걸어도 비슷한 풍경이 보였다. 삼겹살과 치킨뿐 아니라 족발, 곱창, 파전, 막걸리 등을 내건 식당마다 손님이 몰렸다. 몇몇 매장 앞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줄이 인도까지 이어졌다. ‘Korean BBQ’처럼 영어 설명을 앞세우던 과거와 달리 아예 한글 간판과 한국식 메뉴명을 전면에 내세웠다.

침사추이에서 족발집을 운영하는 유가명 씨(36)는 “홍콩에서는 한식이 다른 음식보다 싼 편이 아닌데도 현지 손님들이 많이 찾는다”며 “주말이나 저녁에는 예약이 계속 들어온다”고 말했다. 유 씨가 1년 전 문을 연 매장의 한달 임대료는 약 3000만원에 달한다. 그럼에도 매일 예약이 몰릴 만큼 현지 수요가 꾸준하다는 설명이다.
지난 16일 홍콩 침사추이의 한 골목에 한글 간판을 내건 한식당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남대문’ ‘김치’ ‘한옥’ 등 한국을 연상시키는 상호를 그대로 사용한 모습이다. 권용훈 기자
지난 16일 홍콩 침사추이의 한 골목에 한글 간판을 내건 한식당들이 줄지어 들어서 있다. ‘남대문’ ‘김치’ ‘한옥’ 등 한국을 연상시키는 상호를 그대로 사용한 모습이다. 권용훈 기자

곳곳에 ‘한국어’…홍콩 밤거리 파고든 K푸드

20일 홍콩 통계청에 따르면 홍콩의 한국산 즉석식품 수입액은 2024년 2552만달러에서 지난해 3116만달러로 22.1% 증가했다. 한국산 먹거리의 확산은 가공식품에 그치지 않는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홍콩으로 수출된 한우는 약 50t으로 전체 한우 수출량(71t)의 70% 안팎을 차지했다. 2024년에도 홍콩은 전체 한우 수출 물량의 약 80%가 향한 최대 시장이었다.

홍콩의 한류 소비 풍경도 달라지고 있다. 특히 불고기·비빔밥처럼 외국인에게 익숙한 메뉴를 넘어 한국인이 평소 즐겨 먹는 족발과 곱창, 파전, 막걸리, 간장게장과 한우 숯불구이까지 현지에서 소비가 확장되고 있다. 홍콩의 K푸드가 ‘음식 체험’에서 ‘일상 소비’로 넘어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 16일 오후 2시께 홍콩 침사추이의 한 한식당에서 현지 손님들이 족발을 먹고 있다. 점심시간이 지난 뒤에도 매장에는 한식을 찾는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권용훈 기자
지난 16일 오후 2시께 홍콩 침사추이의 한 한식당에서 현지 손님들이 족발을 먹고 있다. 점심시간이 지난 뒤에도 매장에는 한식을 찾는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권용훈 기자
이런 변화는 홍콩에서 한류를 소비하는 방식이 달라진 것과 맞물려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홍콩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소비재는 화장품이었다. 사드 사태와 코로나19를 거치며 중국계 관광객이 줄자 K뷰티 업체들도 매장을 축소했다.

반면 드라마와 예능, 소셜미디어를 통해 한국의 음식과 식문화가 꾸준히 노출되면서 최근 홍콩 거리에서 K푸드가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음식을 단순히 맛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한국인이 먹는 방식까지 경험하려는 수요가 커졌기 때문이다.

한식은 일부 마니아가 찾아 먹는 음식에서 일상적인 외식 선택지로도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부동산 컨설팅업체 JLL에 따르면 작년 상반기 홍콩에서 새로 문을 연 외식 브랜드 가운데 한국 콘셉트 식당 비중은 7.5%로 2018년 3.5%의 두 배를 넘어섰다.

한식당도 침사추이·코즈웨이베이 등 관광객이 몰리는 핵심 상권을 넘어 현지인들이 거주하는 주거지역으로 확산하고 있다. 일부러 찾아가 먹던 한식이 집과 직장 주변에서 자연스럽게 선택하는 음식으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지난 16일 홍콩 침사추이의 장어구이 전문점. ‘풍천장어’라는 한글 상호와 한국식 메뉴를 전면에 내세워 영업하고 있다. 권용훈 기자
지난 16일 홍콩 침사추이의 장어구이 전문점. ‘풍천장어’라는 한글 상호와 한국식 메뉴를 전면에 내세워 영업하고 있다. 권용훈 기자

비싸도 한식…'임대료 세계 4위' 침사추이 달군 K푸드


세계적으로 임대료가 비싼 상권에도 한식당은 잇따라 들어서고 있다.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업체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에 따르면 지난해 침사추이 주요 상권의 임대료는 연간 ㎡당 1만3907유로(약 2200만원)로 세계 주요 상권 가운데 네 번째로 비쌌다. 서울 명동(5997유로·세계 9위)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코즈웨이베이 역시 아시아·태평양에서 침사추이에 이어 임대료가 두 번째로 높은 상권인데도 한식당이 줄줄이 들어서고 있다. 코즈웨이베이는 홍콩섬의 대표 쇼핑·상업 중심지로, 글로벌 브랜드와 대형 쇼핑몰이 밀집한 핵심 상권이다.

홍콩은 높은 주거비와 좁은 주거공간 탓에 집보다 밖에서 식사하고 사람을 만나는 문화가 발달한 데다, 새로운 음식과 외식 경험에 지갑을 여는 소비 성향도 강하다. 한식이 비싸더라도 ‘한 번 먹어보는 음식’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선택하는 외식 메뉴로 자리 잡았다는 분석이다.
현지 한식당에서 판매하는 김밥은 한 줄에 40홍콩달러, 우리 돈으로 약 7000원이다. 한국보다 두세 배 비싼 가격인데도 점심·저녁 시간에는 꾸준히 팔린다. 권용훈 기자
현지 한식당에서 판매하는 김밥은 한 줄에 40홍콩달러, 우리 돈으로 약 7000원이다. 한국보다 두세 배 비싼 가격인데도 점심·저녁 시간에는 꾸준히 팔린다. 권용훈 기자
홍콩이 주목받는 이유는 중국 본토와도 대비된다. 중국은 한때 국내 외식기업들이 앞다퉈 진출했지만 임대료와 인건비 부담, 현지 경쟁 심화 등으로 ‘K외식의 무덤’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상당수 브랜드가 점포를 줄이거나 철수했다.

반면 홍콩은 인구가 약 750만명으로 시장 규모는 크지 않지만 구매력과 외식 소비가 높은 도시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홍콩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5만6983달러로 중국 본토(1만3862달러)의 네 배를 웃돌았다.

글로벌 외식업체도 한류 가세

지난 16일 홍콩 애드미럴티센터 맥도날드 매장 외벽이 지드래곤과의 협업을 알리는 이미지와 로고로 꾸며져 있다. 지드래곤이 햄버거를 들고 있는 대형 이미지와 그의 상징인 데이지 문양이 매장 전면을 채웠다. 권용훈 기자
지난 16일 홍콩 애드미럴티센터 맥도날드 매장 외벽이 지드래곤과의 협업을 알리는 이미지와 로고로 꾸며져 있다. 지드래곤이 햄버거를 들고 있는 대형 이미지와 그의 상징인 데이지 문양이 매장 전면을 채웠다. 권용훈 기자
K푸드의 확산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한국 기업이 완제품을 만들어 해외 슈퍼마켓에 파는 방식에서 벗어나 글로벌 외식업체의 메뉴 개발과 공급망으로 들어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맥도날드다.

홍콩 맥도날드는 최근 지드래곤과 협업한 메뉴를 선보이며 고추장과 불고기 등 한국적인 맛을 전면에 내세웠다. 일부 메뉴에는 동원홈푸드와 CJ제일제당, 오뚜기 등 국내 식품업체의 제품과 원료가 활용됐다. 한국맥도날드에서 개발된 고추장 기반 소스는 홍콩을 포함한 아시아 여러 시장으로 확산됐다.

이는 한국 식품산업의 수출 구조가 달라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소비자가 해외 슈퍼에서 한국 브랜드를 직접 집어드는 것뿐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 글로벌 외식 체인에서 한국 업체가 만든 소스와 원료를 먹는 방식으로 시장이 넓어지고 있어서다.

홍콩 식품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한국 음식’이라는 점 자체가 경쟁력이었다면 지금은 현지 소비자들이 맛과 품질을 따져 반복 구매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치킨·불고기 넘어 족발·곱창까지…홍콩에 부는 ‘K푸드 2.0’ [권용훈의 트렌드워치]
권용훈 기자 fac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