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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봉의 호모 인베스티쿠스] 애프터마켓 시대, 잠은 없다
최정봉 이화여대 초빙교수·前 뉴욕대 교수
이른바 ‘국장’은 하루에도 수차례 롤러코스터를 타는 위험한 협곡이다. 개미의 시야를 벗어난 무수한 지뢰와 비대칭 내부정보 폭발물이 도사리는 전장이다. 자국 펀더멘털보다 외부변수로 움직이는 종속적이고 타율적인 시장이다. 미국 중앙은행(Fed) 의사록, 고용·소비 지표, 일본은행의 금리인상과 엔 캐리 트레이드, 전쟁을 비롯한 지정학적 리스크, 이 모든 것에 부침한다.
이렇게 널뛰는 국장이건만, 2010년대 중반 400만 명 선에 머물던 상장법인 개인투자자 수는 지난 몇 년 새 1400만 명을 돌파했다. 이들이 매일 감내하는 정서와 신경계의 마모는 묵과할 수 없는 한계 수치에 이르렀다.
‘스트레스’라는 뭉뚱그린 언어로는 이 심각성을 온전히 전달하지 못한다. 차라리 ‘화병(火病)’이나 ‘울화’가 더 적절할 지 모른다. 화병은 억눌린 분노와 불안이 신체화되는 한국 특유의 증후군으로, 과거 미국정신의학회 진단편람(DSM-IV) 부록에도 고유명사로 등재됐다. 1400만 명이 매수 버튼 앞에서 매일 희비를 반복하는 한국은 가히 ‘주식 화병’ 종주국이라 부를 만하다.
이 신경계의 파산은 국가의 통계 레이더망에서 완벽하게 지워져 있다. 금융당국과 거래소는 코스피 지수를 초 단위로 쪼개어 추적하고, 투자자별 순매수 대금을 억 단위로 실시간 중계한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고 정교하게 자본의 맥박을 계측하는 나라가, 정작 시민의 혈관과 뇌신경에 남긴 물리적 상흔은 단 한 번도 집계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제도적 방기 뒤편에서, 가공할 규모의 의료비 청구서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한국보건행정학회는 2033년 국민의료비가 2023년의 두 배 반에 달하는 561조 원, 국내총생산(GDP) 대비 15.9%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초고령화와 인구 감소를 주범으로 지목한다. 물론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국가가 묻지 않는 질문도 있다. 천장을 뚫고 솟구치는 이 의료비 곡선 위에, 1400만 명이 앓고 있는 주식 화병이라는 가산항이 얼마나 치명적인 무게로 얹히는지 말이다.
주가가 오른다고 해서 이 병이 완화되지도 않는다. 지난 7월 20일 하루 만에 코스피가 304.33포인트(4.46%), 코스닥은 5.33% 폭락했던 참사, 국민연금 리밸런싱을 둘러싼 극심한 변동성, 역대급 호재성 공시가 나온 날마저 매도 폭탄이 터져 나오는 기형적 장세가 개미를 항시적인 공포에 가둔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정책 입안자들은 더 크고 더 긴 판을 벌일 궁리만 거듭한다. 지난 14일부터 오후 4~8시 운영하는 야간 연장거래(애프터마켓)이 개설됐고, 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을 내세워 2027년까지 24시간 거래체제를 열겠다고 한다. 정규장 전후의 시간외 거래, 오전 8시~오후 8시 가동되는 대체거래소(ATS), 밤이면 시작되는 미국 정규장과 새벽 선물시장까지 투자자의 육체적·정신적 수용한계는 무너지고 있다. 정치가 다루어야 할 과제는 거래 시간을 쪼개 카지노의 문을 24시간 열어젖히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무너진 신경안정권과 수면권을 회복시키는 일이다. 주식 화병을 방치한 채 밀어붙이는 자본시장의 팽창은, 머지않아 국가 재정이 감당할 수 없는 파국적 의료비 청구서로 되돌아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