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모 계약을 소재로 한 영화 ‘투게더 투게더’. 대리모는 국가마다 허용 여부가 엇갈린다.  /넷플릭스 제공
대리모 계약을 소재로 한 영화 ‘투게더 투게더’. 대리모는 국가마다 허용 여부가 엇갈린다. /넷플릭스 제공
돈을 받고 다른 사람의 아이를 낳아주는 대리모와 돈을 받고 성관계를 하는 성매매. 둘 다 인간의 몸과 돈이 오가는 거래지만 사회가 그어놓은 ‘허용의 선’은 제각각이다. 미국에서는 여러 주가 대리모 계약을 허용하지만 성매매는 대부분 지역에서 불법이다. 독일은 거꾸로 성매매는 합법이지만 대리모는 금지한다.

왜 어떤 거래는 허용되고 다른 거래는 금지될까. 당사자들이 모두 원하고 서로에게 이익이 되더라도 사회가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막는 거래가 있다. 그 경계는 무엇으로 결정되는 걸까.

201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앨빈 로스 스탠퍼드대 교수는 최근 국내에 번역 출간된 <금지된 거래의 경제학>에서 이 문제에 파고들었다. 성매매와 대리모, 마약, 고금리 대출, 혈액과 혈장, 신장 이식, 의료조력사망과 임상시험까지 경제학 책 한 권에서 함께 보기 드문 논쟁거리가 등장한다.

[책마을] 대리모·장기 거래 금지로 치러야 할 대가는 얼마인가
이들을 하나로 묶는 개념이 로스가 말하는 ‘혐오’다. 단순히 개인적으로 싫다는 뜻이 아니다. 거래 당사자들은 서로 원하지만 제3자가 도덕이나 종교, 사회적 가치 등을 이유로 “그런 거래는 허용해선 안 된다”고 반대하는 현상이다. 이런 집단적 거부감은 무엇을 시장에 맡기고 무엇을 법으로 막을지 결정하는 강력한 힘이 된다.

문제는 그 기준이 시대와 장소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는 점이다. 한때 범죄였던 동성 간 성관계와 인종 간 결혼은 오늘날 많은 나라에서 합법이다. 나라마다 판단도 엇갈린다. 유럽의 여러 국가는 상업적 대리모를 금지하거나 엄격히 제한하면서 일정한 형태의 성매매는 허용한다. 미국은 대체로 반대다. 대부분 지역에서 성매매는 불법이지만 대리모 계약은 여러 주에서 허용된다.

그렇다면 어디에 선을 그어야 할까. 시장설계 분야를 개척한 경제학자답게 로스는 도덕적 찬반보다 거래를 금지했을 때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에 주목한다.

미국 로드아일랜드에서는 법의 허점으로 2003~2009년 실내 성매매가 사실상 처벌 대상에서 벗어났다. 경제학자 스콧 커닝햄 등은 이 기간 성폭력 신고와 여성의 임질 감염이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성매매가 옳다는 얘기가 아니다. 도덕적 직관과 정책의 실제 결과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마약도 비슷하다. 법으로 막는다고 수요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사고 싶은 사람과 팔고 싶은 사람이 남아 있으면 거래는 지하로 숨어든다. 그곳에서는 품질 관리나 거래자를 보호할 장치가 약해진다. 그렇다고 로스가 합법화를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금지가 거래를 줄이는 효과도 있기 때문이다. 거래 자체의 해악뿐 아니라 금지가 낳는 부작용까지 함께 따져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 책의 논리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곳은 로스의 오랜 연구 분야인 신장 이식이다. 이식받을 신장을 기다리는 환자는 많지만 장기 매매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금지돼 있다. 로스는 이를 ‘신장 매매를 허용할 것이냐, 말 것이냐’는 양자택일에서 끄집어냈다.

가족에게 신장을 주고 싶어도 혈액형이나 면역학적 이유로 이식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이때 서로 맞지 않는 환자와 기증자 여러 쌍을 연결해 다른 환자에게 신장을 주도록 짝을 맞추는 것이 ‘신장 교환’이다. 로스가 실제 설계에 참여한 시장이다.

여기에는 돈이 오가지 않는다. 하지만 로스에게 이것 역시 시장이다. 시장은 반드시 돈을 주고 물건을 사는 곳이 아니다. 희소한 자원을 가진 사람과 필요한 사람을 연결하는 규칙과 제도도 시장이다. 돈을 허용할 수 없다면 돈 없이 더 많은 사람을 연결하는 시장을 설계할 수 있다는 얘기다.

혈장과 비교하면 경계는 더욱 흥미로워진다. 신장을 제공한 사람에게 돈을 주는 데는 강한 거부감을 보이면서 미국에서는 혈장 제공자에게 보상하는 것이 허용된다. 미국은 세계적인 혈장 공급국이 됐다. 로스는 미국을 혈장 분야의 ‘사우디아라비아’에 비유한다. 사람 몸에서 나온다는 점에서는 비슷한데 왜 하나에는 가격을 붙일 수 있고 다른 하나에는 붙일 수 없는가.

경제학이 모든 답을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거래가 불쾌하다는 이유만으로 금지가 당연한 것은 아니다. 선의로 만든 금지가 거래를 지하로 밀어 넣거나, 보호하려던 사람의 선택지를 줄일 수도 있다. 도덕적 직관이 멈춘 자리에서 실제 결과를 따져보는 것. 로스가 경제학을 끌어들이는 이유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