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능한 사랑’에서 가난한 호석 가족이 예지 부부의 별장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장면.   넷플릭스 제공
영화 ‘가능한 사랑’에서 가난한 호석 가족이 예지 부부의 별장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장면.  넷플릭스 제공
예술가에게는 ‘창작하지 않는 것’이 윤리적인 선택이 될 때가 있다. 카메라를 들이대는 순간 누군가의 고통은 이야기로 남고, 의도와 다르게 소비될 수 있어서다. 창작자는 겪어보지 않은 타인의 아픔을 어디까지 들여다봐도 되는 걸까.

이창동 감독은 이 질문을 마주하고선 한 동안 작업을 멈췄다. 대기업 정리해고와 파업사태를 보고선 노동이 사라져가는 시대의 상실을 영화로 옮기려 했으나 각본을 쓰다가 덮었다. 스스로 납득할 만한 답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과연 이 이야기를 말할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숙고를 거듭한 이창동이 마침내 내놓은 결과물이 오는 23일 국내 개봉하는 ‘가능한 사랑’이다. 어떤 연출을 보여줄 것인가에 앞서, 타인의 고통을 빌려올 자격이 있는가를 묻는 영화에 베니스 국제영화제는 ‘오아시스’(2002) 이후 24년 만에 은사자상(심사위원대상)을 안기며 찬사를 보냈다.

영화는 두 쌍의 부부를 내세운다. 해고 노동자 호석(설경구)과 아내 미옥(전도연), 이들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찍는 영화감독 예지(조여정)와 부유한 남편 상우(조인성). 넷은 마치 이창동이라는 존재를 쪼갠 조각들 같다. 수십 년간 그 안에서 충돌하던 생각의 편린인 셈이다.

가장 노골적인 분신은 예지다. “난 그들(노동자·약자)을 사랑한다”는 그는 정작 압구정에서 자라 미국에서 유학한 뒤 부유한 남자와 결혼한 부르주아 예술가다. 해고 노동자를 인터뷰하면서 500만원이 넘는 명품백을 든다. 그런 예지에게 남편 상우는 “메소드 연기를 잘한다”고 비꼰다. 이 조소는 이창동에게 향하는 자기비판으로 읽힌다.

소설가·영화감독으로 성공하고 문화관광부 장관까지 지낸 이창동 감독의 삶은 바깥의 시선에서 보면 이제껏 그려온 약자의 세상과는 꽤 거리가 있다. 이 불편한 간극은 극중 예지가 남편의 돈 대신 공적 제작지원을 받으려는 시도에서 선명해진다. 이 감독 역시 넷플릭스 투자를 받기 전 정부의 지원사업에 선정됐고, 자진 취하 전까지 “형편 어려운 영화인에게 돌아갈 몫이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를 샀기 때문이다. 의도한 자기풍자인지는 알 수 없으나, ‘창작의 자격’에 대한 이창동의 고민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런 고민은 다른 인물들에게도 흩어져 있다. 해고 노동자를 자본에 짓밟힌 약자로 그리면서도 약자를 선량한 자로만 묘사하지는 않는다. “연대, 투쟁, 노동자의 권리 같은 말을 싫어한다”고 소리치며 노동조합을 대기업만큼이나 환멸하는 호석의 태도로 이를 잘 보여준다. 반대로 배우 조인성이 연기한 부유한 상우를 통해 부르주아에 대한 비판의식은 견지하면서도 비정한 악인으로 그리지는 않는다.

배우 전도연의 미옥에게 던진 질문은 다소 결이 다르다. 노동자 호석, 자본가 상우, 예술가 예지가 각자의 정체성을 사회적 위치로 드러낸다면 미옥은 그런 것으로 인간을 규정할 수 있는가를 묻는 인물이다. 가난한 집안의 딸, 해고 노동자의 아내, 자식을 책임져야 할 어머니라는 이름표에 갇히기보단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자신에게 가능한 자유가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탐색한다.

이 감독은 “살아가면서 어떤 사랑이 가능한지를 질문하고, 그걸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질문한다”고 영화를 소개했다. ‘가능한 사랑’은 어쩌면 욕망과 계급, 관계의 굴레 속에서 어디까지 자유로울 수 있는지를 묻는 영화는 아닐까. 164분. 23일 개봉 후 오는 11월 넷플릭스 공개.

유승목 기자 mo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