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내고 탄소를 ‘지워 온’ 회사가 올해는 작년의 20%만 지웠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탄소크레디트’ 구매 감축에 대한 이야기다. 탄소크레디트는 정부가 기업에 나눠주는 배출 허가증인 ‘배출권’과 달리, 다른 곳에서 줄이거나 없앤 탄소를 증서로 만들어 사고파는 것이다.
MS 같은 기업은 주주와 고객에게 한 기후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 증서를 사 왔다. 그중에서도 공기 중의 탄소를 직접 없앤 실적인 ‘탄소제거 크레디트’의 최대 구매자가 바로 MS다. 2020년 이후 전 세계에서 거래된 탄소제거 물량의 41%를 MS 혼자 사들였을 정도다. 그런 MS가 7월 중순까지 사들인 탄소제거 크레디트는 855만 톤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80% 줄었다.
MS가 유독 이 지우개를 많이 사들인 데는 이유가 있다. 2020년 1월 MS는 2030년까지 ‘탄소 네거티브’, 즉 내뿜는 것보다 더 많은 탄소를 없애는 회사가 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자사의 탄소 중립만으로는 부족하며, 여력 있는 기업이 더 빨리 더 멀리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약속의 범위도 넓었다.
2050년까지는 1975년 창사 이래 배출한 탄소까지 모두 없애겠다고도 약속했다. 사실 MS는 2012년부터 이미 ‘탄소중립’ 회사였지만, 그 방식은 주로 남이 탄소를 덜 내뿜도록 돈을 대는 것이었다. 2030년까지 자사뿐 아니라 협력사를 포함한 공급망 전체의 배출을 절반 넘게 줄이고, 나머지는 없애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인공지능(AI) 투자에 돈이 몰리면서 재무적 이유로 일부 구매를 멈췄다는 보도가 나왔다. 시장 전체의 절반 가까이를 사던 큰손이 지갑을 닫자, 같은 기간 전 세계 탄소제거 크레디트 판매량도 1800만 톤으로 66% 급감했다. AI에 쏟아붓는 돈 앞에서 지우개 예산부터 밀려난 셈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은 오히 후퇴한 것 같다.
기업 탈탄소, 크레디트 구매서 실제 감축으로
MS는 크레디트 구매가 탈탄소 전략의 한 부분일 뿐이라고 밝혔다. 9월 초, 그 '다른 부분'이 바다 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덴마크 해운사 노르덴은 9월 2일, MS에 검증된 해운 탄소 감축분을 인도했다고 발표했다.
여기 쓰인 ‘북앤클레임(Book & Claim)’은 저탄소 연료를 실제 사용한 배와 내 화물이 실린 배가 달라도, 줄어든 탄소 실적만 장부상 넘겨받는 방식이다. 배는 한번 지으면 수십 년을 쓰고, 저탄소 연료를 넣을 수 있는 항구도 아직 드물다.
그러니 연료를 구할 수 있는 곳에서 먼저 쓰고 그 비용을 화주가 부담하면서 저탄소 연료의 공급 자체를 늘려가자는 과도기적 거래 방식이다. 저탄소 연료(탄소 배출이 적은 연료)는 돈을 내면 당장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몇 안 되는 수단이기도 하다. 항공 분야에서 쓰이던 국제적으로 인증된 탄소감축 등록 시스템을 통해 해운 감축 실분이 거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노르덴은 이를 앞으로 표준 상품으로 팔겠다고 밝혔다.
이런 흐름은 MS 한 곳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마존·파타고니아 등이 만든 화주(화물 주인) 구매 연합 ZEMBA가 대표적이다. 첫 공동 구매에서 아마존과 메타, 나이키 등 10여 개 회원사가 2025~2026년 싱가포르~로테르담 항로에서 온실가스를 90% 이상 줄인 운송 실적을 함께 사기로 했다. 지난해 12월에는 수소로 만든 합성연료를 2027년부터 컨테이너선에 쓰는 것을 목표로 한 두 번째 공동 구매의 사업자도 선정됐다.
해운·항공 탄소 청구서는 화주가 부담
규제도 같은 방향이다. 유럽연합(EU)은 올해부터 유럽 항로 선박의 탄소 배출에 배출권 비용을 전면 적용하고, 하팍로이드 같은 선사는 이 비용을 할증료로 만들어 고객에게 청구하고 있다. 마침 9월 30일은 선사들이 지난해 배출량의 70%만큼 배출권을 제출해야 하는 마감일이다. 자발적 구매든 규제에 따른 의무 부담이든, 탄소 비용이 운임과 별도로 계산돼 화주에게 청구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늘길도 다르지 않다. 싱가포르는 2027년 1월 출발편부터 모든 여객에게 지속가능항공유(SAF, 폐식용유 등으로 만든 친환경 항공유) 부담금을 물리고, 이를 항공권 내역에 세금처럼 따로 표시하도록 했다. 걷힌 돈은 기금으로 모여 SAF와 그 감축 실적을 사는 데 쓰이며, 첫 물량은 2027년 중반 들어온다. 화물 부과는 항공사·포워더(운송 주선업자)·화주가 얽힌 거래 구조가 복잡하다는 이유로 2028년 1월로 1년 미뤘다. 유예 이유가 ‘화주에게 어떻게 청구할 것인가’에 있는 만큼, 결국 비용이 향하는 곳은 오히려 분명해졌다.
국내에서도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국내 최대 국적선사는 2024년 중유보다 20~30% 비싼 바이오선박유를 약 1만 톤 넣었다. 한 해 쓰는 중유가 170만 톤이 넘으니 아직은 시작 단계다. 바이오선박유는 폐원료로 만든 바이오디젤을 섞은 연료로, 엔진을 고치지 않고도 쓸 수 있어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꼽힌다. 이 선사는 이를 바탕으로 스웨덴 가구업체 이케아에 약 1만1500톤의 감축 실적을 넘기는 계약을 맺었다.
국내 정유사들도 국적선사와 해외 선사를 대상으로 바이오선박유 공급에 나섰다. 선사는 비싼 연료비를 감축 실적 판매로 일부 돌려받고, 화주는 급유지와 상관없이 자기 몫의 감축을 챙긴다. 해외 고객사를 둔 한국 수출기업이라면, 머지않아 ‘물건을 어떤 배로 보냈는가’를 질문받게 될 것이다.
남은 변수는 국제 규범이다. 유엔 산하 국제해사기구(IMO)는 전 세계 선박 연료에 공통 탄소 가격을 매기는 규칙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사우디아라비아가 낸 1년 연기안이 찬성 57, 반대 49로 통과됐고 한국과 일본은 기권했다. IMO는 오는 12월 4일 논의를 재개해 채택 여부를 다시 결정한다. 채택되더라도 실제 발효는 2028년 이후다. 11월 제3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1)를 앞두고 이 논의는 더 뜨거워질 수밖에 없다.
탄소를 사후에 ‘지우는’ 데 쓰이던 돈이 배의 연료를 바꿔 실제 배출을 줄이는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그리고 그 청구서는 이제 운송사가 아니라 화물 주인 앞으로 향한다. 12월 IMO의 결정은 이 흐름의 속도를 바꿀 수는 있어도 방향 자체를 되돌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