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스페셜 리포트
포커스 인터뷰② - 법무법인 율촌
왼쪽부터 법무법인 율촌의 윤용희 변호사, 이민호 고문. 사진=이승재 기자
왼쪽부터 법무법인 율촌의 윤용희 변호사, 이민호 고문. 사진=이승재 기자


글로벌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규제의 패러다임이 판도 자체를 바꾸는 거대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과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이드라인이나 자율 지침 등 권고 수준에 머물렀던 연성규범(soft law)의 시대가 저물고, 유럽연합(EU)과 유럽 각국을 중심으로 강제력과 처벌 권한을 가진 법률이 법제화되면서다.

에코디자인 규정(ESPR), 디지털제품여권(DPP), 공급망 실사법, 과불화화합물(PFAS) 전면 제한 조치 등 유럽발 화학물질 및 순환경제와 관련한 강도 높은 환경 법률들이 현실화함에 따라, 반도체·배터리·자동차 등 한국의 핵심 수출 제조업과 상·하류 공급망 전반에 비상이 걸렸다.

법무법인 율촌은 누구보다 빠르게 ESG 규제의 국제적 변화 추세를 분석하고, 한국 기업이 직면한 법적 리스크와 대응 전략을 제시해왔다. 율촌의 이민호 고문과 윤용희 변호사는 “국가별 법제 동향을 정밀하게 분석하지 않으면 글로벌 공급망에서 즉시 낙마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PFAS, 제2의 석면 취급…공급망에 고려 요소로 부상

특히 최근 가장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과불화화합물(PFAS) 규제의 경우, 발암성 및 난분해성 문제로 인해 ‘제2의 석면’으로 불리며 전 세계적인 퇴출 수순을 밟고 있다. EU는 위험성이 예견되면 1만 종 이상의 물질군 전체를 묶어 사전 금지하는 ‘사전배려 원칙’을 적용하는 반면, 한국 정부는 핵심 제조업에 미칠 타격을 고려해 개별 물질별 유해성을 입증 후 규제하는 보수적 방식을 취하고 있어 온도 차가 존재한다. 그러나 국내법 완화 여부와 상관없이, 유럽과 미국으로 수출하는 국내 기업들은 이미 글로벌 바이어로부터 ‘PFAS-Free’ 증명서나 탄소배출 데이터 제출을 직접 요구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등 글로벌 대기업들은 자체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전사적인 사용 현황 조사에 착수했다.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화장품, 식품 포장재, 섬유 등 소비재 제품에는 EU 수준의 무관용 원칙이 빠르게 도입될 것으로 보인다. 규제 방식이 일차적인 행정 관리에서 기업의 공급망 데이터 증명 책임으로 전환됨에 따라, 유해물질이 없음을 기업 스스로 서류와 데이터를 통해 입증해야 하는 구조가 되고 있다.

규제가 강화되면서 기업 간 실무적 갈등도 깊어지고 있다. 바이어들이 공급망 실사나 대체물질 검증을 이유로 부품 배합 비율 등 내밀한 정보 제출을 요구하면서 협력사의 ‘영업비밀 보호’와 강력하게 충돌하는 까닭이다. 이에 대해 윤용희 변호사는 “제3의 전문 기관을 통한 검증서(certificate) 발급, 필수 정보 외 마스킹 제출, 계약서상 목적 외 사용금지 조항 명시 등의 법적 장치가 필수적”이라며, “한국은 하도급법과 대리점법 등 갑을관계를 특별 규제하는 법제가 있는 만큼, 과도한 정보 요구가 부당한 경영 간섭에 해당하지 않는지 법률적 검토를 거쳐 대등하게 협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순환경제 전환 법제화 움직임…기업 자원 재배치 필요

제품의 생애주기 전체를 바꾸는 ‘순환경제(Circular Economy)’로의 전환도 시급한 과제다. EU의 에코디자인 규정(ESPR)과 디지털제품여권(DPP) 도입으로 규제 패러다임이 ‘판매 후 폐기물 관리’에서 ‘초기 설계 및 전 생애주기 데이터 추적’으로 확장됐다. 기존 분절적 재활용 정책에서 벗어나 설계 단계부터 내구성과 재활용성을 고려하는 법제 및 기업 자원 재배치가 시급하다.

최근 정부가 기후에너지환경부를 중심으로 ‘에코디자인 포럼’을 운영하며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지만, 아직 한국의 순환경제사회 촉진법은 갈 길이 멀다. 유럽은 제품이 태어나는 시작점(설계)을 강력하게 통제하는 반면, 한국은 제품이 버려지는 종착점(폐기 및 재활용)을 관리하는 데 여전히 치중해 있다. 특히 가이드라인이 ‘권고’나 사후 재활용(EPR제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국은 순환경제 정보 플랫폼을 구축하는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어, 공급망 하부로 갈수록 데이터가 단절되고 기업이 재생 원료를 쓰고 싶어도 공급처가 부족, 환경 규제 이슈에 가로막힌다. 친환경 설계와 재생 원료를 적극 도입한 기업에 세제 혜택이나 공공 조달 가점을 과감하게 부여하는 실질 유인책과 규제 샌드박스가 절실하다.

정부와 기업 이사회를 향한 제언도 이어졌다. 윤 변호사와 이 고문은 “한국은 이미 중대재해처벌법, 하도급법 등 강한 특별법들을 두고 있는 만큼, 해외 선진 규제를 맹목적으로 중복 도입하기보다는 국내 현실에 맞춘 ‘한국형 맞춤 규제’를 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대기업과 달리 자금과 인력이 부족한 공급망 하단의 중소·중견기업들이 낙오하지 않도록 정부 차원의 실질적인 컨설팅과 연구개발(R&D) 지원책이 마련되어야 하며, 기업 이사회 역시 최고경영진 차원의 톱다운 결단으로 R&D 투자와 거버넌스를 재편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법무법인 율촌의 이민호 고문. 사진=이승재 기자
법무법인 율촌의 이민호 고문. 사진=이승재 기자

법무법인 율촌의 윤용희 변호사. 사진=이승재 기자
법무법인 율촌의 윤용희 변호사. 사진=이승재 기자


“공급망 추적 불가능성, 우리 기업의 가장 큰 페인 포인트”

[박스 인터뷰] 이민호 법무법인 율촌 고문, 윤용희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 EU 등에서 ESG 연성규범이 강제력 있는 법적 조치로 전환되는 상황에서 국내 기업이 가장 유의해야 할 점은.

윤 변호사: 약 5년 전만 해도 ESG는 기업들이 선제적으로 참여하는 자율적 어젠다였지만, 현재는 에코디자인 규정, 공급망 실사법, 의무 공시 등이 EU를 중심으로 실제 ‘법률’로 제정되었다. 과거에는 바이어가 ESG 준수를 권고했다면, 이제는 “유럽 법률 준수를 위해 이 정보가 법적으로 반드시 필요하다”며 법적 근거를 갖고 요구한다. 국가별 법제 동향과 법률상 수범 범위를 정밀하게 분석하고 준비해야만 수출길이 막히지 않는다. 미국, EU, 아시아 등 지역마다 요구하는 공시 기준과 의무 범위가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규제 불일치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철저한 국가별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지금의 ESG 법제 분석은 단순한 규제 대응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비즈니스를 지속하기 위한 필수적인 '입장권'을 확보하는 일이다.

- EU에서 과불화화합물(PFAS) 전면 제한 추진 등 강한 화학물질 규제가 이어지고 있다. 기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윤 변호사: EU는 ‘사전배려 원칙’에 따라 1만 종 이상의 PFAS 물질군 전체를 묶어 사전 배제·퇴출하는 방침을 취한다. 반면 한국은 반도체·배터리 등 핵심 산업 타격을 우려해 개별 물질의 유해성을 검증하며 규제하는 보수적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기후부의 기조와 별개로, 유럽에 수출하는 기업들은 이미 현지 바이어로부터 ‘PFAS-Free’ 증명서를 직접 요구받고 있다. 우리 기업들은 자사 제품이 유예기간을 벌 수 있는 카테고리나 예외 대상에 속함을 증명할 수 있는 객관적·법적 근거를 소명하는 준비가 시급하다. 이와 함께 자사 제품과 공급망 전체를 아우르는 화학물질 인벤토리(inventory)의 디지털화가 시급하고, PFAS-Free 대체 물질 및 친환경 공정 기술 확보를 R&D의 최우선 과제물로 삼아야 한다. 환경·품질 부서에만 규제 대응을 맡겨둘 것이 아니라, 구매-생산- 법무-영업 부서가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전사적 글로벌 컴플라이언스 리스크 관리 체계를 고도화해야 한다.

- PFAS 제한 규제로 기업들이 마주친 가장 큰 어려움은.

윤 변호사: 기업들이 마주친 가장 고난도의 실무적 위험은 공급망 하부의 추적 불가능성이다. PFAS는 완제품 안의 미세 부품에 코팅제나 윤활유 형태로 숨어 있다. 대기업조차 3~4차 하위 협력사가 어떤 화학물질을 썼는지 완벽히 추적하는 것이 실무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여기에 더해, 법적으로는 EU 최종 법안이 확정되기 전인데도 프랑스나 덴마크 등 개별 국가들이 특정 제품군을 먼저 금지하는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기술적으로도 PFAS를 대체할 경우 내구성이 떨어져 제품 수율이 악화되는 품질 저하 리스크가 매우 크다. 우리 기업 중 상위 대기업은 위기감을 갖고 추적을 시작했으나, 공급망 전반의 생태계 준비는 아직 걸음마 단계다. 가장 큰 구멍은 규제 동향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전문 분석 장비를 갖출 여력이 없는 중소·중견 부품사들이다. 반도체나 배터리 핵심 공정 소재의 대체물질 전환까지는 최소 5년에서 10년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보여 타임라인 압박이 극심하다.

- 공급망 조사 과정에서 해외 협력사의 영업비밀 보호 요구와 바이어의 정보 개시 요구가 충돌할 때 현실적인 대안은 무엇인가.

윤 변호사: 원료 배합비 등 내밀한 기술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 바이어에게 직접 서류를 주는 대신 중립적인 제3의 전문 기관에 제출해 검증서(certificate)만 발급받아 전달하는 유일 대리인 방식을 활용해야 한다. 또 필수 정보 외 노하우는 마스킹 처리 후 제출하고, 계약서에 자료 요청 범위를 ‘ESG 법령 준수에 필요한 최소한의 합리적 수준’으로 한정하는 조항을 넣어야 한다. 특히 한국은 하도급법 등 갑을관계 특별법이 있으므로 과도한 요구가 부당한 경영 간섭에 해당하는지 법률적 검토를 거쳐 대등하게 대응해야 한다.

- EU의 에코디자인 규정(ESPR)과 디지털제품여권(DPP) 도입 시 제조업체들이 당장 준비해야 할 사항은.

이 고문: 규제 패러다임이 ‘제품 판매 후 단순 폐기물 관리’에서 ‘초기 설계 및 전 생애주기 책임’으로 완전히 전환되었다. DPP를 통해 원료 채취부터 생산, 사용, 폐기, 재자원화까지의 라이프사이클 데이터가 디지털로 트래킹된다. 기업들은 과거처럼 좋은 제품을 싸게 만들어 팔고 끝내는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설계 초기 단계부터 내구성, 수리 용이성, 재활용 가능한 원료 채택 등 설계 중심의 자원 투입과 데이터 관리 역량을 필수적으로 갖춰야 한다. 또 실제 재생 원료를 도입할 때는 법적 리스크 관리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재생원료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위해 공급 계약 시 품질 보증 스펙(SLA)을 극도로 정밀하게 세분화하고 특정 물성 기준을 통과한 원료로 합격 기준을 명시하고, 제3자 기관의 성적서 제출을 의무화하는 등의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

- 글로벌 ESG 규제 파고 속에서 한국 정부와 기업 이사회가 당장 실행에 옮겨야 할 핵심 과제는.

이 고문: 국내에 중대재해처벌법, 하도급법 등 독자적이고 강력한 규제들이 존재하는 만큼, 해외 선진 규제를 맹목적으로 중복 도입하기보다 국내 산업 현실에 맞춘 한국형 맞춤 규제를 정립해 기업의 이중 부담을 줄여주어야 한다. 또한 자금과 인력이 부족한 중소·중견기업들이 글로벌 공급망에서 탈락하지 않도록 실질적 컨설팅과 R&D 지원이 절실하다. 기업 CEO 및 이사회 역시 PFAS 대체물질 개발이나 순환경제 전환은 1개 실무 부서가 해결할 수 없는 만큼, 최고경영진 차원의 톱다운 결단으로 자원 투입과 구조 재편을 주도해야 한다.

구현화 기자 kuh@hankh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