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광촌 '막장'에 선 재일교포들…아리랑 고개에서 희망을 캐다
재일교포가 모여 사는 1965년의 일본 탄광 마을 ‘아리랑 고개’. 가난은 일상이고 가족이 갱도에서 무사히 돌아올지도 알 수 없다. 재일교포 정의신이 각본을 쓰고 연출한 연극 ‘스미레 미용실’은 막장 같은 현실의 아리랑 고개 사람들을 그린다.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12일 개막한 ‘스미레 미용실’(사진)은 일본의 고도 경제성장기 한가운데서 쇠퇴하는 탄광 산업과 그 속 재일 한국인의 삶을 다뤘다. 일본에서 ‘이를테면 마치 들에 피는 꽃처럼’ ‘야끼니꾸 드래곤’을 선보이며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얻어낸 정의신의 ‘재일 코리안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무대의 중심에는 낡은 이발소를 지키는 재일 교포 수미가 있다. 언젠가 자신의 이름을 닮은 ‘스미레’ 미용실을 여는 게 그의 꿈이다. 언니 하츠미와 여동생 하루미뿐만 아니라 조선 국적을 끝까지 놓지 않는 아버지 홍길, 일본으로 귀화한 남편 나루히토, 다리를 다쳐 갱도로 들어갈 수 없는 시동생 히데히로 등 서로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이 한 마을에 모여 산다.

이들에게는 소박한 일상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여름 축제가 한창이던 어느 날 탄광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나고, 가난하지만 평온했던 삶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다. 어떻게 해도 가난을 벗어나기 어렵다. ‘지상낙원’으로 알려진 북한으로 가는 것도 선택지로 다가온다.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 데 참여할 수 있다는 유혹이 강렬하다. 어차피 지금보다 더 비참해지기는 어렵지 않은가.

우울한 주제의 공연이지만 가장 암울한 순간에도 유머가 비집고 나온다. 매번 힘내자고 외치는 ‘몽골고원 아저씨’ 같은 인물은 끝없이 무거워질 수 있는 이야기에 숨 쉴 틈을 낸다. 인물들의 태도도 마찬가지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삶의 터전이 무너지는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삶을 이어간다.

특히 여성들의 의지가 극의 중심을 붙든다. 수미를 비롯한 세 자매는 울고 불면서도 식구를 먹이고 일상을 이어간다. 남편이 사고로 크게 다쳐 막막한 상황에서도 주저앉아 있지만 않는다. 작품 제목으로 아직 존재하지 않는 수미의 꿈 ‘스미레 미용실’을 내건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무너지는 탄광촌에서도 앞날을 포기하지 않는 한 여성의 의지가 제목으로 미래에 먼저 도착해 있다.

작년 국내 무대에 오른 ‘야끼니꾸 드래곤’이 일본어 대사로 재일 교포의 삶을 그려냈다면, 이번 공연에선 모든 배우가 한국어로 대사를 주고받는다. 전무송, 최지연, 전국향, 송영주 등 12명의 배우가 무대를 채운다. 공연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다음 달 3일까지.

최한종 기자 onebel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