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반도체 세제, 감가상각 단축 허용해야
반도체 실적이 다시 정점을 향하고 있다. 인공지능 서버 수요가 메모리 가격을 끌어올리면서 기업 이익은 사상 최대 수준이다. 그러나 이 산업을 오래 지켜본 이들은 환호보다 걱정이 앞선다. 불과 몇 해 전 감산과 적자를 감내하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기 때문이다. 반도체는 짧게는 2년, 길게는 4년 주기로 호황과 불황을 오갔고, 정작 막대한 설비 투자가 필요한 시점은 이익이 바닥을 치는 불황기다. 호황기에 벌어들인 현금을 얼마나 빠르게 다음 세대 공정으로 밀어 넣느냐가 다음 사이클의 성패를 가른다.

문제는 우리 세제가 이 사이클과 잘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부는 지난해 반도체 시설투자 세액공제율을 대기업·중견기업 20%, 중소기업 30%로 5%포인트씩 올렸다. 방향은 옳지만 수단이 한쪽에 치우쳐 있다. 세액공제는 낼 세금이 있어야 의미가 있다. 적자가 나는 불황기에는 공제받을 세금 자체가 없어 이월만 될 뿐이고, 이익이 큰 호황기에는 최저한세라는 천장에 걸려 효과가 잘려 나간다. 대기업 최저한세율은 17%로 글로벌 최저한세율 15%보다 높다. 정작 돈이 필요할 때 작동하지 않는 인센티브인 셈이다. 공제율을 올려도 천장이 그대로면 체감 효과는 그만큼 깎인다.

감가상각은 성격이 다르다. 상각비는 과세소득 자체를 줄이므로 최저한세의 제약을 받지 않고, 결손이 나더라도 이월결손금으로 남아 다음 호황기에 회수된다. 경기 국면과 무관하게 작동하는 사이클 산업에 훨씬 적합한 수단이다. 게다가 반도체 장비는 기술 진부화 속도가 세법상 내용연수보다 훨씬 빠르다. 세법이 여러 해에 걸쳐 비용을 나눠 인정하는 사이, 장비의 경제적 가치는 이미 상당 부분 사라져 있다. 세법이 현실의 감가를 따라가지 못하면 기업은 실제보다 많은 세금을 앞당겨 내고, 그만큼 재투자 여력이 줄어든다.

주요국은 두 갈래로 갈린다. 미국 중국 인도는 감가상각을 직접 건드린다. 미국은 100% 보너스 감가상각을 영구화해 장비 취득 첫해 전액 비용처리를 허용하면서 첨단제조 투자세액공제까지 35%로 올려 두 제도를 함께 적용한다. 다만 공제액만큼 상각 기준가액을 줄여 이중 혜택은 차단한다. 중국은 제조업·연구개발용 신규 설비의 법정 내용연수를 60%까지 단축하거나 정률법을 쓸 수 있게 하고, 첨단공정 기업에는 파격적인 법인세 감면을 얹는다. 인도는 반도체 제조설비에 30% 정률상각을 적용해 4년이면 취득가액의 4분의 3가량을 털어낸다. 반면 대만과 일본은 상각 단축 대신 세액공제로 간다. 대만은 연구개발비 25%, 첨단공정 설비 5%를 공제하고, 일본은 가동 이후 생산량에 연동한 공제를 택했다. 방식은 달라도 목표는 하나다. 투자금 회수 시점을 최대한 앞당겨주는 것이다.

우리도 전자의 수단을 함께 써야 한다. 세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반도체 제조 장비를 별도 자산군으로 떼어내 기준내용연수와 신고내용연수 범위를 낮추고, 첨단공정 장비에는 즉시상각을 허용해야 한다. 노광·식각 장비의 실제 교체 주기를 생각하면 과도한 특혜라고 보기 어렵다. 미국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둘째, 가속상각과 투자세액공제의 병행 적용을 법문에 명확히 하고 반복 연장하는 일몰 규정을 없애야 한다. 국가전략기술 시설투자 공제는 최저한세 적용 대상에서 제외할 필요가 있다. 조 단위 팹 투자는 5년 앞을 내다보고 결정한다. 기업이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것은 낮은 공제율이 아니라 불확실한 제도다.

셋째, 사이클을 겨냥한 장치가 필요하다. 이익이 급증한 사업연도에 기존 설비의 상각 한도를 추가로 인정해 호황기 현금이 곧바로 다음 투자로 흘러가게 하고, 불황기에는 쓰지 못한 공제를 현금으로 돌려주는 환급형 공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미국이 이미 직접지급 방식을 쓰고 있다. 호황기에는 투자를 당기고 불황기에는 버틸 현금을 남겨주는 경기 대응적 세제가 필요하다.

감가상각 단축은 세금을 깎아주는 것이 아니라 납부 시점을 미루는 것이다. 세수가 영구히 줄지 않으면서도 기업이 느끼는 투자 유인은 커진다는 뜻이다. 호황은 길지 않다. 이익이 정점에 있을 때 제도를 고쳐둬야 다음 겨울을 건널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