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아이가 주인공인 영화를 본 적 있나요?
“김미경 구청장이라면 지켜줄 것 같다.” 몇 해 전 구로구에서 10년간 이어온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가 존폐의 기로에 놓였을 때 들었던 말이다. 단체장이 바뀌어 영화제 존속이 어려워지자 당시 구로구청장이 은평구에 운영을 제안하며 건넨 말이다.

왜 나였을까. 생각해 보면 나에게도 아이와 영화에 대한 기억이 있다. 어릴 적 나는 영화를 보고 나면 한동안 그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집에 돌아와 주인공이 돼보기도 하고, 인상 깊은 장면을 몇 번이고 되새겨보기도 했다. 어린 시절 영화 속 세상은 현실만큼이나 생생했다. 초등학생 때 담임선생님께서 ‘사운드 오브 뮤직’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에델바이스’를 가르쳐준 기억도 아직까지 선명할 정도다. 돌이켜보면 영화 한 편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잠시 들여다보게 해준 작은 창이었다.

그래서 제안을 받았을 때 생각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새로운 시선이 필요하겠다고.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을 보고, 나와 다른 삶을 만나고, 새로운 꿈을 발견할 기회 말이다. 당시 은평구에 문화 콘텐츠를 하나라도 더 만들고 싶었던 터라 속으로는 ‘이게 웬 굴러 들어온 복인가’ 싶기도 했다. 흔쾌히 손을 잡았다.

영화제를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첫해에는 아이들에게 영화제를 알리겠다며 뙤약볕 아래에서 ‘꿈빛파티시엘’ 노래에 맞춰 집행위원장, 댄서 아이키와 댄스 챌린지 영상을 찍기도 했다. 멋쩍은 웃음이 나오는 상황이었지만, 아이들 한 명이라도 더 영화제에 대해 알게 된다면 뭐든 적극적으로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얼마 전 영화 ‘오디세이’를 보다가 문득 그때의 생각이 떠올랐다. 수많은 인물과 명장면이 등장했지만, 이상하게 내 눈에 들어온 건 어린이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었다. 우리가 보는 많은 영화에서 어린이는 주인공의 어린 시절이거나, 어른들의 이야기를 돋보이게 하는 조연으로 등장한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자기 이야기를 주인공으로 들려주는 영화제는 얼마나 귀한가. 내가 지키고 있는 것은 단순한 ‘영화제’ 그 이상의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국제어린이영화제는 어느덧 은평구와 4년째 동행 중이다. 올해는 123개국 3311편 출품작 중 33개국 129편의 작품이 상영된다. 어떤 영화에서는 어른들이 꺼내지 못한 질문을 던지고, 또 다른 영화에서는 평범한 일상을 새로운 시선으로 담아낸다. 폐막식의 레드카펫도 기억에 남는다. 어린이 배우들이 의젓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인생 첫 레드카펫을 밟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린이’라는 말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세계를 품고 있지 않나? 어린 사람이 아니라 당당한 주인공으로 말이다.

아이가 주인공인 영화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만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아이들이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마음껏 펼칠 수 있으면 좋겠다. 어린이영화제를 지킨다는 것은 결국 어른들의 세계에서 조연으로, 누군가의 아역으로만 머물렀던 아이들을 무대 정중앙으로 데려오는 일일 것이다. 나는 그 무대를 오래도록 지켜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