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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실크로드서 되찾은 공급망의 길
윤영미 한국수입협회장
알마티에서 개최한 한·카자흐스탄 비즈니스 포럼과 최고경영자(CEO) 하계 세미나엔 70개 국내 회원사 관계자 100여 명이 참석해 현지 정부의 관심이 뜨거웠다. 무역통합부 차관이 수도 아스타나에서 알마티까지 비행기로 날아와, 아침 포럼부터 시작해 오찬과 만찬까지 함께 할 정도로 지극 정성인 모습을 보여줬다. 현지 국영방송도 우리 방문을 비중 있게 뉴스로 다뤘다.
출장 중 찾은 티무르제국의 옛수도 사마르칸트는 특히 나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세계 무역의 핵심이던 고대 실크로드를 직접 걸으며 티무르 제국의 찬란했던 역사를 눈으로 보고 느꼈다. 수백 년 전부터 이곳은 동서양의 사람과 물자, 문화가 오가던 교역의 중심지였다. 오늘날로 치면 거대한 글로벌 공급망의 길목인 셈이다.
비슈케크에서 알마티 국경을 넘으면서 버스 창밖으로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땅이 부러웠다. 카자흐스탄은 대한민국의 27배가 넘는 국토에 석유·가스·광물은 물론 농축산 자원도 풍부하다.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에서도 다양한 농산물과 원자재가 지닌 가능성을 확인했다.
하지만 이들과의 교역 현실은 아쉬움이 남는다. 한국의 대 중앙아시아 수출은 활발하지만, 우리가 수입하는 품목은 제한적이다. 중앙아시아의 주요 생산품인 좋은 건과일과 견과류는 높은 관세와 물류비 때문에 한국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 공급망 다변화를 이야기하면서 정작 새로운 수입의 길에는 여전히 장벽이 존재하는 것이다. 수입장벽을 낮추고 좋은 수입을 늘리는 것은 이제 국가안보의 문제다.
중앙아시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고려인이다. 1937년 스탈린 시대에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된 고려인은 혹독한 환경에서도 맨손으로 땅을 일구고 벼농사와 관개농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오늘날 카자흐스탄 최고 부호 반열에 오른 뱌체슬라프 김과 블라디미르 김 역시 고려인의 후손이다. 그 후손들이 현지 경제의 최정상에서 이끄는 기업인으로 성장했다는 사실에 한국인으로서 남다른 자부심을 느낀다.
중앙아시아 5개국 정상이 한국을 찾아 관세와 물류의 장벽을 낮추고, 무역 불균형을 해소할 길이 열리기를 기대해 본다. 우리가 자원과 안정적인 공급망을 필요로 하듯, 그들에게도 기술과 경제발전 경험을 갖춘 한국은 중요한 교역 파트너다. 자정이 넘어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생각했다. 어쩌면 우리는 새로운 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이어져 온 길을 다시 발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좋은 공급망은 위기가 닥쳤을 때 찾는 피난처가 아니라, 평화로울 때 서로의 장벽을 낮추며 미리 닦아놓는 튼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