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섬을 떠나 세상으로 향하는 이들
어느 날 갑자기 지도 위에서 서울 은평구만 한 도시 하나가 자취를 감춘다면 어떨까. 지금 대한민국에는 그만한 ‘눈에 보이지 않는 도시’가 존재한다. 전국 54만 명에 달하는 고립·은둔 청년들의 이야기다. 은평구의 인구보다도 많은 청춘이 무력감 속에 각자의 섬으로 숨어들어 세상과 고립돼 있다.

나는 어두운 섬에 갇힌 청년들을 이끌어내는 데 무척이나 공을 들이고 있다. 2024년 기초지방정부 최초로 전담 인력을 채용했다. 2025년 1월에는 ‘고독대응팀’을 신설해 상설 대응 체계를 갖췄다. 실태 조사를 통해 위험군 청년 422명을 확인했고, 이들에게 총 276건의 심층 상담을 해줬다. 예상보다 많은 청춘이 고독 속에 숨어 있기에 멈출 수 없었다.

작년 12월 열린 특별한 한 연말 콘서트에선 고립·은둔 위험군이던 청년들이 나와 자작곡과 랩을 선보였다. 가슴이 뭉클했다. 희귀 난치병을 앓는 청년, 직장을 그만둔 청년 등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청년들은 은평구 안에서 함께 볼링을 치고 요리를 배우고, 소문난 빵집을 찾아가고, 퍼스널 컬러 진단을 받으며 세상 밖으로 걸어 나왔다. “일정이 생겨 좋았다”,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어 감사했다”는 고백 속에서 나는 희망을 봤다.

중앙정부가 거대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제도를 마련한다면, 지방정부는 주민 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본다. 그렇기에 화려한 치적이 되기 어려운 일도 많다. 누군가는 내게 가끔 말한다. ‘이런 일 아무런 티도 안난다’고. 하지만 나는 이 일을 계속할 것이다. ‘끝내는 한 도시의 인구수와 맞먹는 이들을 구해 내는 일이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앞서 얘기한 난치병 청년은 이제 은평구 장애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는 어엿한 사회 일원이 됐다. 또 다른 청년은 활동가가 돼 다른 은둔 청년에게 희망을 전하고 있다. 청년들이 자기만의 섬을 떠나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내일 세계 자살예방의 날을 맞아 마음이 더욱 무거워진다. 외로움이 자살 생각을 부추긴다고들 한다. 청년 고립은 개인의 의지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과제다. 초기 단계부터 지방자치단체가 개입하도록 제도를 재정비해야 한다. 나는 이제 은둔고립청년뿐 아니라 그 가족을 위한 지원도 확대할 계획을 세워 놨다.

지원사업에 참여한 한 청년은 고립을 끝내며 이렇게 표현했다. ‘나의 분신 같던 섬이여 안녕. 이젠 보내야 할 시간.’ 혹시 지금 외로운 청년이 있다면 주저 없이 손 내밀어 주길 바란다. 도움을 요청하는 용기가 새로운 삶을 향한 첫걸음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