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김정관 장관의 '뻗치기'
언론계 용어 중에 ‘뻗치기’란 게 있다. 취재원을 특정 장소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을 뜻한다. 때로는 한겨울 야외에서 대여섯 시간 넘게 ‘자신과의 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취재 성공에 대한 간절함만큼 허탕에 대한 두려움도 크다. 그래서 취재원의 성향부터 당일 동선까지 꼼꼼한 사전 취재가 필수적이다. 현장 돌발상황에 대응하는 순발력도 필요하다. 무대포처럼 보이는 뻗치기가 취재의 결정판으로 불리는 이유다.

난항 겪던 협상 돌파구 마련

뻗치기 얘기를 꺼낸 건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때문이다. 과거 기자들과 스킨십이 잦아서인지 김 장관은 뻗치기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1년 전 한·미 관세협상이 교착 국면에 빠졌을 때 그랬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행정부 고위 관료들은 한국의 투자처와 수익 배분 문제 등에 불편한 기색을 대놓고 드러냈다. 실무진 미팅을 잡는 것조차 쉽지 않았고 협상 결렬 가능성까지 불거졌다.

돌파구가 된 건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을 겨냥한 김 장관과 현지 산업부 직원의 뻗치기였다. 25년 전 월가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로 일하던 시절 가족을 잃은 러트닉은 매년 뉴욕 추모식에 참석한다. 김 장관은 러트닉의 일정을 파악해 추모식 현장에 갔고, 면담 일정을 잡는 데 성공했다. 결과는 다 아는 대로다.

올해 대미 투자 협상을 총괄하는 김 장관은 최근 워싱턴이 아니라 뉴욕 인근 공항으로 미국에 들어와 비공개 일정을 소화하고 출국했다. 9·11 테러 추도 행사에 참석하는 한편, “이번에도 뻗치기를 했다”는 관측이 나왔다. 진행 중인 투자 협상 상황은 1년 전 관세협상 때보다 훨씬 어려운 것으로 평가된다. 올 초부터 미 행정부 안팎에선 ‘한·미 관계가 매우 안 좋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트럼프 대통령과 미 관료들은 한국 정부의 협상과 관련해 ‘의도적인 지연 전략’이라고 의심하며 여러 채널을 통해 불만을 나타냈다고 한다. 우리 정부의 뚜렷한 태도 변화가 없자 미국 현지에선 “한국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수군거림이 들렸다.

올 들어 몇 차례 성사된 외교·통상 장관 회담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일정을 몇 번 연기하고, 낮은 수준의 의전을 제공했다는 건 외교가에서 쉬쉬하는 사실이다. 손을 맞잡고 웃는 사진과 달리 현장 분위기는 냉랭했다고 한다.

통상전쟁서 통하는 진심

다행히 한국 정부는 뒤늦게 미국의 기류를 파악하고 적극적인 행보에 나섰다. 김 장관이 유럽 출장을 마치고 바로 뉴욕으로 온 것도 마지막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절박함의 발로로 해석된다.

돌이켜보면 20년 가까이 언론사를 다니며 했던 뻗치기의 결과는 실패보다 성공이 많았다. 그래도 취재 대상에게 명함을 건네며 인사할 기회를 얻기도 하고, 가끔 집까지 들어가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미국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 노벨상 수상자 등과의 짧은 인터뷰가 성사되는 행운도 따랐다. 사람의 진심을 움직이는 행동은 어디서든 통할 확률이 높다.

국가 간 외교와 통상 협상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국운이 걸려 있는 이번 협상에서 김 장관의 진심이 담긴 뻗치기 전략이 한 번 더 통했기를 기원한다. 계획대로 이번주 미국과 투자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뒤 성공적인 협상의 후일담을 풀어놓는 김 장관의 모습을 꼭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