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중국 베이징은 거대한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열리는 첨단기술 행사에선 휴머노이드 로봇이 춤을 추고 격투를 벌이는가 하면 공장에서는 짐을 나르기도 한다. 인공지능(AI)과 전기자동차, 배터리 등의 기술력을 과시하는 자리도 적지 않다. ‘레드테크의 진격’은 더 이상 중국의 선전 문구만은 아니다.
레드테크에 취한 중국
이 같은 레드테크의 배경에는 30년 전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 있었다. 주룽지 당시 총리가 주도한 구조조정을 통해 중국 정부는 ‘큰 것은 움켜쥐고 작은 것은 놓아준다’며 경쟁력 없는 국유기업에 칼을 댔다. 수천만 명이 일자리를 잃고 동북지역의 탄광과 제철소가 줄줄이 문을 닫았다. 엄청난 고통이었다. 이런 구조조정이 아니었다면 2001년 세계무역기구 가입도, 세계의 공장으로 도약하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은 다시 구조조정의 갈림길에 서 있다. 이번엔 문제가 더 복잡하다. 철강과 시멘트뿐 아니라 전기차, 배터리, 태양광, 로봇 등 중국이 미래 먹거리로 꼽은 산업 곳곳에서 과잉투자로 지나치게 많은 생산이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중국 제조기업 가운데 적자를 낸 기업 비중은 23.8%에 달했다. 중국이 세계 제조업 부가가치의 3분의 1가량을 생산하는 사이에도 공장 넷 중 하나가 돈을 벌지 못하는 역설적인 구조가 자리 잡았다.
자동차는 그 축소판이다. 지난해 중국 자동차업계의 잉여 생산능력은 약 1500만 대다. 살아남으려고 가격을 낮추고, 수익성이 떨어지면 다시 지방정부 지원과 은행 대출에 기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중국 정부도 이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반(反)‘네이쥐안(內券·출혈경쟁)’을 내걸고 저가 경쟁과 무분별한 증설을 막고 있다. 문제는 가격 전쟁을 멈추는 것과 부실 기업을 퇴출시키는 건 다른 일이라는 점이다. 생산능력 감축은 지방정부의 세수와 기업의 시장 점유율, 은행의 대출 회수에 동시다발적인 악영향을 준다. 누구도 먼저 공장의 전원을 끄려 하지 않는 이유다. 내수에서 소화되지 못한 물건은 해외로 향한다. 지난해 중국이 사상 최대 무역흑자를 낸 이유 중 하나다.
중국의 기술력을 폄하할 이유는 없다. 전기차와 배터리, 통신장비, 로봇에서 구축한 공급망 경쟁력은 보조금 하나로 설명되지 않는다. 다만 로봇이 아무리 빨리 달리고 인공지능(AI)이 미국 모델을 추격해도 지갑을 닫은 소비자와 부동산 침체, 지방정부 부채까지 대신 해결해줄 순 없다.
과잉생산 청구서 온다
구조조정은 언제나 고통스럽다. 기업이 쓰러지고 일자리가 사라지며 지방정부와 은행도 손실을 떠안아야 한다. 정치 지도자라면 피하고 싶은 선택이다. 하지만 팔리지 않는 물건을 더 만들고 부실기업의 퇴출을 미룰수록 언젠가 치러야 할 구조조정의 청구서는 더 늘어날 뿐이다.
공장과 설비투자에만 자원이 몰리고, 가계소득과 소비가 살아나지 않으면 과잉생산은 산업을 옮겨가며 반복될 수밖에 없다. 레드테크의 기술력은 상당 부분 증명됐다. 남은 문제는 그 기술을 수익으로 바꾸지 못하는 기업을 정리하고, 공장을 돌려 성장률을 지키는 오래된 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다. 30년 전 중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만든 건 더 많은 공장이 아니라 과감한 정리였다. 중국에 제2의 주룽지가 필요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