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로앤비즈의 'Law Street' 칼럼은 기업과 개인에게 실용적인 법률 지식을 제공합니다. 전문 변호사들이
조세, 상속, 노동, 공정거래, M&A, 금융 등 다양한 분야의 법률 이슈를 다루며, 주요 판결 분석도 제공합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영화 《관상》에서 송강호가 연기한 내경은 사람의 얼굴만 보고도 성품과 운명을 알아맞히는 천재 관상가다. 얼굴의 생김새를 살펴 과거를 읽고 앞으로 일어날 일까지 예측한다. 특히 화려하게 등장하는 수양대군의 관상을 한번 보고 그가 장차 수많은 사람을 죽일 잔혹한 인물임을 알아본다. 정말 사람의 얼굴에는 그 사람의 성품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일까.

관상을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의 얼굴과 성격, 삶을 관찰한 결과가 축적된 일종의 경험적 통계라는 견해도 있다. 생존을 위해 피해야 할 사람인지 아닌지 순간적으로 판단해야 했던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쌓아온 빅데이터라는 얘기다. 물론 관상을 과학이라고 부르기는 어렵지만, 사람의 외형을 관찰해 그 사람의 성향을 알아내려는 시도 자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범죄자가 될 상'이 있을까

19세기 이탈리아 의사이자 범죄학자인 체사레 롬브로소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그는 교도소에 수감된 범죄자들의 신체적 특징을 관찰하고 측정한 끝에 범죄성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며,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공통적인 신체적 특징이 있다고 생각했다. 비대칭 얼굴, 튀어나온 턱이나 광대뼈, 뾰족한 귀, 긴 팔, 불규칙한 치열 등 일정한 신체적 특징을 가진 사람은 문명화되지 못한 퇴행성 인간으로서 선천적인 범죄 성향을 갖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이른바 '생래적 범죄인' 이론이다.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황당하게 들리지만, 당시 롬브로소는 자신의 연구를 과학이라고 생각했다. 직관이나 느낌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실제 범죄자의 신체를 관찰하고 측정해 실증적인 공통점을 찾으려 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속 내경이 조선시대의 관상가라면 롬브로소는 19세기 유럽의 '과학적 관상가'였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롬브로소의 이론은 이후 연구 방법 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비판을 받았고, 범죄를 개인의 외형적 특징과 연결하는 생래적 범죄인 이론은 현대 범죄학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설령 어떤 외형적 특징과 특정 성향 사이에 통계적인 상관관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근거로 한 개인의 성격이나 행동을 단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얼굴이나 인상만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던 시대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심리학에는 '후광효과(Halo effect)'라는 개념이 있다. 어떤 사람의 한 가지 두드러진 특성에 대한 평가가 그 사람 전체에 대한 평가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다. 외모가 단정하고 말투가 점잖으면 왠지 정직하고 능력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좋은 학력이나 번듯한 직업, 높은 사회적 지위 역시 그 사람의 말을 더욱 신뢰하게 만든다. 반대로 인상이 험악하거나 말투가 어눌하면 특별한 이유도 없이 경계심부터 생기기도 한다.

흔히 '사기꾼처럼 생겼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필자 경험상 실제 사기 범죄자 중에 사기꾼처럼 생긴 사람은 별로 없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누가 봐도 사기꾼처럼 생긴 사람은 애초에 사기를 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히려 실제 사기범들을 보면 외모나 말투만으로는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인 경우가 많다. 말쑥한 외모와 세련된 말투, 그럴듯한 경력과 사회적 지위가 경계심을 무너뜨린다. 그런 의미에서 사기꾼에게 가장 필요한 관상은 '사기꾼의 관상'이 아니라 '절대로 사기 치지 않을 사람의 관상'인지도 모른다.

더 큰 문제는 한번 만들어진 인상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처음 누군가를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의심스러운 행동을 보더라도 '그럴 만한 사정이 있겠지'라고 합리화한다. 반대로 처음부터 조심해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평범한 행동조차 의심스럽게 보인다. 심리학에서는 이처럼 자신의 기존 판단에 부합하는 정보는 크게 받아들이고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한다.

'관상'에 맞서는 형사법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이러한 판단의 오류를 특히 경계해야 할 곳이 바로 법정이다. 수사관이나 판사 역시 사람인 이상 첫인상이나 선입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피고인의 외모와 표정, 말투와 태도를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예단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일단 '이 사람은 유죄일 것 같다'는 생각이 자리 잡으면, 그 판단에 부합하는 증거는 크게 보이고 반대되는 증거는 작게 보일 위험도 있다.

그래서 근대 형사법은 인간의 직관을 경계한다. 무죄추정의 원칙을 세우고 객관적 증거에 의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혐의가 증명되도록 요구한다. '저런 사람이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와 '저 사람이 그랬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는 전혀 다른 명제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수백 년에 걸쳐 발전해 온 이러한 형사법의 원칙들은 인간이 가진 후광효과와 확증편향에 맞서기 위해 만들어온 제도적 안전장치인지도 모른다.

영화 《관상》의 마지막에 내경은 사람의 얼굴은 볼 줄 알았지만, 시대의 흐름은 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파도는 보았지만, 그 파도를 만드는 바람은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람의 얼굴을 읽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어쩌면 그 인상만으로 사람을 단정하지 않는 일인지도 모른다.

롬브로소는 얼굴에서 범죄자를 찾으려 했고, 내경은 얼굴에서 사람의 운명을 읽으려 했다.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라고 하겠지만, 누군가의 인상만으로 믿을 만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나누고 있다면 우리 마음속에도 여전히 작은 관상가 한 명이 살고 있는 것이리라.

‘마흔 이후 얼굴은 자신의 책임’이라는 말처럼, 사람의 얼굴에는 그가 살아온 세월이 어느 정도 새겨져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형사절차에서의 판단만큼은 밖으로 보이는 외모에서 읽으려 해서는 안 된다. ‘범죄자가 될 상인가’를 인상으로 추측할 수 있을지 몰라도, 유죄는 오로지 증거만으로 엄격히 증명되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