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인사 업무를 대체하는 범위가 넓어질수록 사람에 대한 기업의 책임도 커지고 있다. 채용과 평가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편향과 개인정보 침해를 통제하고, AI와 사람이 맡아야 할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나누는 일이 AI 시대 인재전략과 ESG 경영의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한경ESG] 커버스토리 - AI 시대, 다시 쓰는 인재전략 ②
로봇과 사람이 함께 일하고 있다. 사진=챗GPT
“인사(HR)로 들어오던 일의 100%가 사라질 수 있다.” 지난 6월 미국 올랜도에서 열린 세계 최대 인사 행사 ‘SHRM26’에서 조니 테일러 미국인적자원관리협회(SHRM) 회장이 한 말이다. 약 2만 명의 HR 전문가가 모인 행사장의 화두는 인공지능(AI)이었다. AI가 빠르게 발전하면서 HR이 해오던 업무 상당 부분이 자동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8월 4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력서 분류와 복리후생 문의 대응 등 HR 주요 업무가 AI로 넘어가면서 미국 고용서비스 종사자는 2022년 3월 고점보다 18% 감소했다. 맥킨지글로벌연구소는 현재 HR 업무의 약 3분의 2가 자동화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AI가 HR 업무를 대신한다고 해서 사람을 관리하는 기업의 책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채용과 평가, 배치와 승진에 AI가 깊숙이 들어올수록 기업은 누가 최종 결정을 내렸는지를 더 분명히 정해야 한다. AI를 어떻게 활용하고 통제할지가 새로운 인재전략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AI가 판단할수록 ‘책임자’ 분명해야
기업들은 AI 채용 도구와 성과분석 알고리즘, 이직예측 모델을 빠르게 도입하고 있다. 이들 시스템은 주로 정보기술(IT) 부서나 외부 업체가 도입·관리하고 있다. HR은 AI를 활용하면서도 시스템 설계에는 직접 관여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경우 AI가 잘못된 판단을 내렸을 때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질 수 있다. AI 채용 도구가 특정 성별이나 학력에 불리한 결과를 내놓으면 HR은 AI의 추천을 근거로 들고, IT 부서는 HR이 정한 기준을 시스템에 반영했다고 설명할 수 있다. 피해는 지원자가 입지만 법적·평판 책임은 결국 기업에 돌아간다.
이와 관련, 김영기 산업정책연구원장은 “AI의 기술적 작동은 IT의 영역일 수 있지만 AI가 채용과 평가, 배치, 승진, 징계에 영향을 미치는 순간 결과를 설명하고 최종 판단을 승인할 책임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AI 도입 과정에서 누가 AI의 판단을 검토하고 최종 결정을 내릴지까지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은 우선 어떤 HR 업무에 AI가 쓰이고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김 원장은 채용이나 평가처럼 사람에게 큰 영향을 주는 AI 도구부터 목록에 올리고 최종 승인권자를 정할 것을 제안했다. AI의 추천 내용과 사람이 내린 최종 판단을 기록하고 편향 여부도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편향·개인정보 막고, 마지막 판단은 사람이
김 원장은 사람을 대상으로 AI를 사용할 때 네 가지를 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첫째는 편향이다. 과거 채용 데이터에 성별이나 출신 학교 등에 대한 편향이 있었다면 AI도 이를 학습할 수 있다. 학교와 전공, 경력 등이 특정 집단을 대신하는 기준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점검해야 한다.
둘째는 개인정보 보호다. HR이 다루는 정보에는 평가 점수와 급여, 징계 이력 등 민감한 개인정보가 많다. 출입 기록이나 이메일 이용 정보처럼 다른 목적으로 수집한 데이터를 이직 가능성이나 성과 예측에 활용할 경우 개인정보 침해 우려가 커질 수 있다.
셋째는 설명가능성이다. AI가 지원자 탈락이나 낮은 평가를 추천했다면 경력이나 직무 역량 등 어떤 요소가 판단에 영향을 미쳤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은 인간 감독이다. 채용과 승진, 징계처럼 개인에게 큰 영향을 주는 결정은 사람이 최종 승인해야 한다. AI의 판단이 그대로 인사 결정으로 굳어지지 않도록 사람이 재검토하고 판단을 바꿀 수 있는 권한도 보장해야 한다. 직원이나 지원자가 AI 판단의 근거를 확인하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절차도 필요하다.
규제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뉴욕시는 2023년 7월부터 자동화된 채용 의사결정 도구를 사용하는 기업에 편향 감사를 실시하고 결과를 공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구직자와 직원에게 AI 도구 사용 사실도 알려야 한다. 유럽연합(EU)도 2024년 8월 발효된 AI법에서 채용과 근로자 관리에 사용하는 AI를 고위험 시스템으로 분류했다. 일부 고위험 AI 시스템을 대상으로 2027년 12월부터 위험관리와 기록 등 의무를 부여할 예정이다.
ESG 실행하는 ‘사람 사슬’ 관리가 HR 새 역할
AI에 대한 책임 문제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과도 연결된다. 김 원장은 저서 <사람 사슬 경영>에서 기업이 기존의 ‘가치사슬’뿐 아니라 ‘사람 사슬’도 함께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재료 조달부터 생산과 물류, 판매에 이르는 가치사슬의 모든 단계에는 사람이 있다. 본사 직원뿐 아니라 협력업체 노동자와 간접고용 인력, 물류센터 작업자, 고객 상담사, 알고리즘을 만들고 감독하는 관리자도 포함된다.
ESG 문제 상당수도 이 사람 사슬에서 발생한다. 공급망 인권 문제는 2·3차 협력업체의 근로조건에서 시작될 수 있고 안전사고는 작업자의 교육과 배치, 피로 관리와 연결된다. 채용과 평가, 승진 과정의 편향이 누적되면 차별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그동안 많은 기업이 ESG 목표와 데이터를 정교하게 만들고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하는 데 집중했다. 그러나 현장 직원이 회사의 ESG 목표를 자신의 업무와 연결하지 못하면 실제 행동의 변화로 이어지기 어렵다. 김 원장은 “사람 평가 지표에 ESG가 들어가지 않으면 관리자는 움직이지 않고, 보상과 연결되지 않으면 구성원은 우선순위를 바꾸지 않는다”며 “ESG가 보고서에서 멈추는 이유는 HR이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AI 시대에는 ESG 경영과 관련한 HR의 역할도 달라진다. 이력서 검토와 문의 대응, 단순한 성과 분석은 AI가 대신할 수 있다. 대신 HR은 어떤 일을 사람에게 맡기고 어떤 일을 AI에 맡길지 설계해야 한다. 동시에 ESG 목표를 채용과 교육, 평가, 보상에 연결해 조직의 실제 행동을 바꾸는 역할도 맡아야 한다. 김 원장은 “AI 시대의 인재전략은 기술을 얼마나 많이 도입했느냐보다 사람과 AI 사이의 역할과 책임을 얼마나 분명하게 설계했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