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러닝
PPA, 전력 확보의 해법일까…제도 보완 시급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캠페인이 널리 알려지면서 글로벌 기업들의 재생에너지 사용 요구가 지속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들도 RE100에 가입해 재생전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는 전기가 더 이상 단순히 공급받아 사용하는 에너지가 아니라는 뜻이다. 전기가 어떤 에너지원에서 생산됐는지에 따라 전력의 가치가 달라지고 있다.

미래는 전기의 시대다. 기후위기 대응과 넷제로 달성을 위해서는 전기화의 확대가 필수적이다. 최근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첨단 반도체 산업의 폭발적 성장에 정부의 반도체, AI 데이터센터(AIDC), 피지컬 AI를 중심으로 한 ‘3대 메가프로젝트’ 추진으로 안정적인 전력 확보가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또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호남권에 천문학적 규모의 투자를 공식화하면서 다시 한번 전기가 주목받고 있다.

첨단산업 전력 확보의 새 화두 ‘PPA’

그 가운데 요즘 자주 등장하는 용어가 바로 ‘PPA’다. PPA(Power Purchase Agreement, 전력구매계약)는 기업이 발전사와 직접 전력 구매 계약을 맺고 전력을 공급받는 방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원칙적으로 PPA가 금지되어 있지만, 재생에너지에 한해 예외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최근 산업계를 중심으로 안정적인 전력 확보를 위해 원전이나 액화천연가스(LNG)와 같은 다른 발전원에 대한 PPA를 허용하거나, LNG 자가발전의 조속한 추진을 지원해 달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실제 국회도 움직이고 있다. 지난 7월 27일 국민의힘 고동진 의원은 원전 직접 PPA 도입을 담은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최종안에서는 삭제됐지만 지난 5월 통과된 AI 데이터센터 특별법 초안에도 AI 데이터센터와 LNG 발전소 간 직접 PPA를 허용하는 특례가 담겨 있기도 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오해가 발생한다.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클러스터 등 ‘3대 메가프로젝트’가 발표된 이후, “첨단산업에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원전이나 LNG PPA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마치 전력망의 물리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수단인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전력망은 수도관과 비슷하다. 수도관 속의 물이 일정한 수압을 유지해야 하듯, 전력망(계통) 역시 전국의 모든 발전소와 소비처가 연결된 상태에서 일정한 주파수(60Hz)와 적정 전압을 유지해야 한다. 누군가 전기를 대량으로 사용하거나 사용을 중단해 전력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깨지면 수도관의 수압이 변하듯 전력망의 주파수가 흔들리고, 심할 경우 전력망 전체가 무너지는 블랙아웃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전력 공급의 물리적 안정성(계통 안정성)과 PPA는 서로 다른 차원의 문제다. 전력망에 연결된 이상, 원전이나 LNG 발전소가 만든 전기든 재생에너지가 만든 전기든 전력은 전력망 속에서 하나로 섞여 흐른다.

PPA는 발전사와 기업 간 ‘재무적·법적 정산 계약’일 뿐, PPA를 맺는다고 해서 물리적으로 해당 발전소의 전기가 특정 공장으로만 따로 흘러들어가 전력망을 더 안정적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전력의 물리적 안정성은 여전히 전력당국이 예비력을 확보하고 실시간으로 수급을 조절하며 계통을 운영함으로써 유지되는 영역이다.

원전·LNG PPA가 재생에너지와 다른 이유

PPA를 단순히 ‘기업의 첨단 전력 조달 수단’이나 ‘도입할수록 좋은 선진 제도’ 정도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원전 및 LNG의 PPA 허용 여부는 기존 재생에너지 PPA와는 성격이 완전히 다른 사안이다. 원전과 LNG PPA 혹은 자가발전에 내재된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재생에너지 PPA와의 구조적 차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재생에너지와 달리 원전은 현재 상대적으로 발전비용이 저렴한 에너지원이다. 저렴한 발전원을 누군가 우선적으로 이용하게 된다는 것은 나머지 전기 사용자들이 더 비싼 에너지를 부담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전 PPA를 할 만큼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곳은 주로 대기업이다. 소수의 대기업을 위해 수많은 중소기업과 국민이 상대적으로 비싼 에너지원의 비용을 추가로 부담하는 구조가 사회적으로 타당한지 따져봐야 한다.

둘째, 원전 PPA는 막대한 백업 비용을 유발할 수 있다. 소규모 분산형인 재생에너지와 달리 원전 1기는 1~1.4GW에 달하는 거대한 단일 설비다. 원전 1기가 불시 정지하거나 통상 15~18개월마다 시행되는 계획예방정비(30~60일)에 들어가면, PPA를 체결한 기업은 백업 전력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한전이 1.4GW 공백을 메우기 위해 LNG 발전소를 항시 대기시키는 순수 용량요금(CP)만 원전 1기당 연간 1000억 원 수준에 이를 수 있으며, 실제 고가로 구매하는 보완전력의 차액과 전체 전력 도매가격(SMP)에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한다면 원전 PPA가 야기하는 비용은 상상을 초월할 수 있다. 원전 PPA를 맺은 대기업이 이 백업 비용을 정당하게 부담하지 않는다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한전의 재무 부담이나 일반 국민의 전기요금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

셋째, LNG PPA와 자가발전은 가스 가격 변동성에 따른 극단적인 ‘체리피킹(cherry-picking)’의 가능성도 살펴봐야 한다. 연료비가 ‘0원’인 재생에너지와 달리, LNG는 국제 정세에 따라 가격이 크게 변동한다. 현재 구조로는 가스값이 쌀 때는 자가발전이나 PPA를 활용하고, 가격이 비쌀 때는 발전기 가동을 멈추고 한전 전력을 이용하는 방식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대한 적절한 비용 부담 장치가 없다면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라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PPA의 핵심은 결국 ‘비용을 누가 부담하나’

사회적 논의와 정교한 제도 설계가 뒷받침되지 않은 채 PPA를 확대할 경우 공기업 한전과 국가 전력망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 대기업에 대한 사실상의 지원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살펴봐야 한다. 물론 국가적 필요와 국민적 합의가 있다면 특정 산업에 대한 지원도 검토할 수 있다.

그러나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는 대기업과 해외 기업의 AI 데이터센터를 지원하기 위해 국민 개개인이 그 위험과 비용을 부담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는 생각해봐야 한다. 과거 개발도상국 시절의 국가 주도형 집중 지원 방식을 글로벌 선진국 반열에 오른 지금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더욱이 전국 각지에서 추진되는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거점들을 감안하면, ‘분산특구’ 등 특정 지역에 한정해 PPA를 허용하더라도 향후 다른 지역과 산업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산업 간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면 다른 제조업의 요구를 막기도 쉽지 않다.

결국 제도 설계에 따라서는 전력 시장 개방에 따른 혜택은 일부 대기업에 집중되는 반면, 송전망 유지비용과 백업 리스크, 한전 재무 부담에 따른 요금 인상 비용은 일반 국민과 중소기업이 떠안게 될 가능성이 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만약 원전 PPA, LNG PPA를 위해 사회적으로 지불해야 하는 백업 비용과 망 관리 비용이 기업에게 공정하게 전가된다 하더라도, 원전이나 LNG PPA, 자가발전이 실제로 경제적인 선택일지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메가프로젝트는 대한민국 경제의 미래가 걸린 중대한 국가적 과제다. 그러나 면밀한 검증 없이 ‘속도전’으로 밀어붙이기에는 전력 시장의 변화가 전 국민에게 미치는 파장이 너무 크다. PPA 확대 여부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위험을 누가, 어떤 원칙에 따라 부담할 것인가다. PPA 확대가 전력시장과 요금 체계, 비용 분담 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충분히 따져본 뒤 차분하고 냉정하게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김태한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KoSIF)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