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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칼럼] 역사 파묘
무덤을 건드리는 것은 사회적 금기 중 하나다. 과거를 파헤쳐 재단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역사의 무덤에서 무엇이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 사람의 삶은 물론, 국가와 민족이 걸어온 길을 칼로 무 자르듯 선명하게 나눌 수 없기 때문이다. 영국 보수주의 사상가 에드먼드 버크가 기존 사회 질서를 부정하는 행동을 두고 “옛 통치자들의 시신을 무덤의 고요함에서 꺼내 끌고 다니는 행위”라고 비판한 것도 그런 이유다.
하지만 사람들은 선명한 서사를 좋아한다. 선과 악의 대비가 선명한 외세의 침입에 대한 ‘장렬한 저항’ ‘순결한 피해자’ 서사는 역사 연구의 인기 주제다.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나는 ‘옳은 편’이고 상대는 ‘악’으로 규정되기 일쑤다.
선명함에 매혹돼 서둘러 무덤을 판 결과를 감당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섞이는 사례는 흔하다. 적잖은 폴란드인은 나치 독일의 침공 피해자이자 유대인 학살의 협조자였다. 현대 일본인이 떠올리는 ‘원자폭탄 피폭국’이라는 이미지 속엔 침략 전쟁과 위안부 동원 같은 자국의 반인륜적 행위가 감춰져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삶도 마찬가지다. 정치가가 되고, 기업인이 되고, 의사가 되고, 교사가 되려면 차별과 순응 사이의 좁고 불투명한 길을 걸어야만 했다.
2006년 설치돼 2010년 해산된 친일재산조사위원회가 재가동된다는 소식이다. 친일파 168명이 보유했던 2359필지를 국가귀속 조치했지만, 이후 새로 드러난 친일파 재산을 환수할 법적 기구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어두운 과거를 바로잡자는 취지에도 실질적인 결과가 추가로 나올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 광복 81주년이 지났다. 이젠 무덤을 파헤치는 데 신중해도 되지 않을까.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