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디코이 전술
미국 대통령과 그 가족을 지키는 비밀경호국(USSS)의 대표적인 경호법 가운데 하나가 디코이 전술이다. 디코이(decoy)는 원래 사냥감을 유인하기 위해 들판이나 물에 띄워두는 ‘가짜 미끼 새’나 ‘목각 인형’을 뜻한다. VIP 경호에서는 대통령의 실제 위치와 이동 경로를 감추기 위해 가짜 대상이 함께 움직이는 기만전술로 활용된다.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 전용 헬기 ‘마린원’, 전용차 ‘더 비스트’를 운용할 때 같은 기종을 2~3대씩 움직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대통령이 어느 차량, 어느 항공기에 탔는지 알 수 없게 해 기습 공격과 암살 시도를 막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경주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서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이동 행렬에 똑같은 비스트 두 대가 동시에 등장했다.

디코이 전술이 USSS만의 독자적인 경호법은 아니다. 적을 속이고 진짜 목표를 감추는 기만 작전은 인류가 전쟁을 시작한 역사만큼이나 오래됐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와 아돌프 히틀러 독일 총통도 암살과 공습 위협을 피하기 위해 신체 조건이 비슷한 대역을 활용했다. 대역을 공개 석상에 내보내거나 가짜 수송기에 태워 적의 정보망을 교란하는 식이었다.

워싱턴포스트는 미 정부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지난달 8일 튀르키예 앙카라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신변 보호를 위한 기만 작전이 펼쳐졌다고 지난 10일 보도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참석차 튀르키예를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의 암살 위협을 피하기 위해 백악관 출입기자와 직원들이 탄 에어포스원을 미끼로 활용하고, 자신은 기내식 운반 카트와 트럭을 이용해 몰래 빠져나와 군용 수송기로 옮겨 탔다는 것이다.

아무리 비상 상황이었다지만 세계 패권국 미국의 대통령이 자국 언론인과 참모를 방패 삼아 기내식 카트에 몸을 구겨넣고 탈출하는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다. 어쩌면 트럼프 대통령이 자초한 일인지도 모른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중동 전쟁은 보복이 보복을 낳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일탈적 외교와 힘을 앞세운 평화가 불러온 비극의 서막일 수 있다.

이정호 논설위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