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현백코어’ 스타일의 스타로 꼽히는 배우 고윤정과 문가영.  인스타그램 캡처
대표적인 ‘현백코어’ 스타일의 스타로 꼽히는 배우 고윤정과 문가영. 인스타그램 캡처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현백코어’라는 신조어가 퍼지고 있다. 현대백화점의 줄임말인 ‘현백’과 자연스럽고 편안한 옷차림을 뜻하는 ‘놈코어’를 합친 말이다. 편한 옷을 입고 백화점을 여유롭게 돌아다니는 부잣집 딸 같은 이미지라는 의미다. SNS에서는 현백코어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이 빠르게 늘고 있다. 화려한 명품 로고를 드러내기보다 무심한 듯한 옷차림과 여유로운 태도로 경제적 여유를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백화점 브랜드가 특정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을 표현하는 단어가 됐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누가 찾는 곳인지’ ‘어떤 삶의 방식을 상징하는지’ 등 백화점 브랜드의 캐릭터가 새로운 경쟁력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백코어’ 유행 만든 영리치

'부잣집 딸'처럼 입는다더니…2030 女 난리 난 패션
현백코어가 새로운 트렌드가 된 배경에는 현대백화점의 젊은 고객층 유입 확대가 있다. 9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현대백화점 전체 방문객에서 20·30대가 차지한 비중은 2020년 37%에서 2021년 43.4%, 지난해 45.9%로 높아졌다. 올해 1~9월에는 46.7%로 전체 방문객의 절반에 육박했다. 같은 기간 전체 매출에서 20대와 30대 고객이 차지한 비중도 각각 10.4%, 31.6%에 달했다.

흥미로운 점은 현백코어가 현대백화점이 설계한 마케팅 용어가 아니라는 것이다. 젊은 층 사이에서 생겨난 신조어다. 현대백화점은 콘텐츠와 여가 공간이 현백코어 이미지가 형성된 배경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서울 여의도 더현대서울은 국내외 인기 브랜드 팝업 스토어와 대형 전시를 잇달아 선보이며 젊은 층이 찾는 문화·트렌드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더현대서울의 실내 조경 공간은 1만1240㎡(약 3400평)에 이른다. 의류 매장 약 170개가 들어갈 수 있는 면적을 상품 판매가 아니라 휴식과 체류를 위한 공간으로 내준 셈이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MZ세대를 끌어들이기 위해 쇼핑뿐 아니라 전시와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공간에 공들이고 있다”고 했다.

젊은 고객층 유입 속도도 가파르다. 올해 1~9월 현대백화점의 연령대별 고객 수 증가율을 보면 20대가 전년 동기 대비 38.1%로 가장 높다. 10대는 16.4%, 30대는 8.6%를 나타냈다. 젊은 고객은 매출을 끌어올리는 핵심 소비층으로 자리 잡았다. 같은 기간 고객 1인당 평균 구매액 증가율은 10대가 27.1%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고, 20대도 10.8% 증가했다.

현대백화점은 일찌감치 영리치 고객을 별도로 관리했다. 연간 3000만원 이상 구매한 20~45세 고객을 대상으로 ‘클럽 YP’를 운영하고 전용 라운지와 뷰티·파인다이닝·라이프스타일 바우처 등을 제공한다. 현대백화점에 따르면 올해 클럽 YP 가입 고객은 2024년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브랜드 차별화에 공들이는 백화점

백화점의 경쟁 포인트가 입지와 명품 브랜드 수를 넘어 브랜드로 확장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런 트렌드에 맞춰 백화점도 브랜드 이미지 차별화에 공들이고 있다. 롯데백화점이 10년 만에 광고 모델로 블랙핑크 제니를 내세운 것이 대표적인 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과거 에르메스와 샤넬, 루이비통 등 명품 브랜드 입점 수가 경쟁력을 좌우했으나 최근에는 특정 고객층과 라이프스타일을 상징하는 ‘캐릭터’가 중요해졌다”고 분석했다.

현대백화점의 브랜드 이미지가 ‘영리치’라면 신세계백화점은 ‘정통 럭셔리’ 이미지가 강하다. 소비 여력이 큰 40대 고객의 올해 매출 비중이 약 30%로 가장 높다. 신세계는 연 1억2000만원 이상 구매하는 ‘블랙 다이아몬드’ 등급 위에 매출 최상위 999명에게만 주는 ‘트리니티’ 등급을 별도 운영한다. 이들 회원은 샤넬과 루이비통 등 주요 명품 매장에 대기 없이 우선 입장할 수 있다.

롯데백화점은 상대적으로 대중적인 이미지로 각인돼 있다. 특정 취향이나 계층을 상징하기보다 전국적인 점포망을 기반으로 누구나 쉽게 찾는 ‘국민 백화점’에 가까운 이미지를 구축했다. 올해 1~9월 전체 매출에서 20대, 30대, 40대가 차지한 비중이 각각 25% 안팎으로 비슷하다. 고객층이 특정 연령에 집중되기보다 고루 분포돼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소유에서 경험으로 소비 트렌드가 바뀌면서 백화점 경쟁의 무게 중심도 상품에서 취향과 라이프스타일로 옮겨가고 있다”며 “과거에는 좋은 상품과 명품 브랜드를 한곳에 얼마나 많이 모아놓느냐가 핵심이었다면 앞으로는 ‘이곳에서 소비하는 나’를 어떻게 느끼도록 하는지도 주요한 경쟁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류은혁 기자 ehry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