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AI가 사람을 대신하면서 조직의 역량이 약화되고 있다. 업무 효율을 높이면서도 인재의 역량을 지킬 수 있는 업무 설계가 절실한 상황이다.
[한경ESG] 커버스토리 - AI 시대, 다시 쓰는 인재전략 ⑤
사진=게티이미지
인공지능(AI)으로 인해 사람의 사고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생성형 AI가 사람의 사고와 판단이 필요한 일까지 맡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AI를 자주 사용할수록 이런 문제는 더 커질 수 있다. AI 도구를 활용하면 작업물을 빠르게 만들 수 있지만, 그 원리와 내용을 깊이 이해하기는 어려워질 수 있어서다. 이른바 ‘인지 부채’가 쌓이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직원 개개인의 능력 저하가 조직 전체의 역량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수백, 수천 명의 직원이 동시에 비슷한 변화를 겪으면 조직 전체의 사고력과 문제해결 능력, 회복탄력성이 떨어질 수 있다. 이를 ‘분산형 탈숙련(distributed deskilling)’이라고 부른다. 이는 단순히 채용이나 교육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업이 AI를 어떤 원칙 아래 사용하고, 업무 절차와 조직 문화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나타나는 조직 전체의 문제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이 최근 여러 산업의 최고경영진과 고위 임원 7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절반은 이미 조직에서 탈숙련 현상을 목격했다고 답했다. 60% 이상은 앞으로 3~5년 안에 탈숙련이 기업에 실질적인 위협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전사 차원의 전략이나 구체적인 대응책을 마련한 기업은 10곳 중 1곳에 불과했다. 3분의 1은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논의한 적조차 없었다.
생산성이 높아졌다고 해서 직원의 역량까지 강화됐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AI를 활용하면 겉으로 보이는 직원 간 성과 차이는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누가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누가 AI가 내놓은 답을 검증할 수 있는지는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따라서 조직은 당장의 성과와 장기적인 역량을 별개의 지표로 관리해야 한다. AI로 시간을 절약하는 대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부채가 계속 쌓일 수 있다.
위험에 처한 ‘판단력, 이해력’
경영진이 장기 성과에 가장 중요하다고 꼽은 역량과 AI 때문에 가장 약해질 수 있다고 본 역량은 거의 같았다. 판단과 의사결정, 문제 이해와 구조화, 창의적 사고, 분석과 인과 추론, 해법 도출과 평가다. 모두 전략적 사고에 꼭 필요한 능력이지만, 별다른 안전장치 없이 AI를 사용할 경우 쉽게 약해질 수 있다.
특히 문제를 이해하고 구조화하는 능력은 모든 업무의 출발점이다. 조직이 ‘무엇이 진짜 문제인가’를 정의하는 힘을 잃으면 AI로 더 많은 분석을 하고 더 빠르게 실행해도 좋은 성과를 내기 어렵다. 판단과 의사결정 능력도 마찬가지다. 이는 불완전한 정보 속에서 해법을 찾고 결정을 내린 뒤 결과를 살펴보며 생각을 수정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길러진다. 한 임원은 “AI가 회의실의 현명한 조언자처럼 활용되는 것을 봤지만, 충분한 정보 없이 짧은 지침만 주어지거나 회사의 전략과 가치가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며 “그 결과 그럴듯하지만 일반적인 답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AI가 빠르게 ‘괜찮아 보이는’ 아이디어를 내놓으면 직원은 스스로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 훈련을 덜 하게 된다. AI의 뛰어난 패턴 인식 능력은 정교한 분석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럴듯한 답이 원인과 결과에 대한 검증을 대신할 수는 없다. 실제로 여러 임원은 팀이 AI 분석의 논리와 가정을 충분히 따져보지 않은 채 결과를 받아들이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공감과 적극적 경청, 동기 부여와 자기 인식, 호기심과 평생학습, 회복탄력성과 유연성, 리더십과 사회적 영향력은 AI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역량으로 꼽혔다. 사람과의 관계와 경험, 정서적 교감이 중요한 능력이기 때문이다. 공감과 경청은 AI 때문에 약해질 수 있는 사람 간 멘토링 관계를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 리더십은 획일적인 AI의 답에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의견을 나누게 한다. 자기 인식과 호기심은 직원이 AI의 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다시 질문하도록 만든다. 기업은 이런 역량을 약해질 수 있는 사고 능력을 지켜주는 ‘조직의 면역체계’로 볼 필요가 있다.
탈숙련의 경고 신호, ‘의존성’
탈숙련은 여러 징후와 함께 나타나며 팀과 사업부 전체로 번질 수 있다. 조사 대상 임원의 약 90%는 AI가 만든 결과를 검증하거나 반박하지 않은 채 지나치게 의존하는 현상을 문제로 꼽았다. ‘이 정도면 됐다’며 비판적인 검토를 건너뛰면 오류나 놓친 부분을 발견하기 어렵다. 이는 단순한 품질 문제를 넘어 직원의 판단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다음으로 나타나는 변화는 주인의식과 책임감의 약화다. 절반이 넘는 임원이 이런 현상을 목격했다고 답했다. 직원이 AI가 내놓은 결과물을 충분히 따져보지 않기 시작하면 결과에 대한 책임에서도 한 걸음 물러서기 쉽다. 일이 잘못됐을 때 “AI가 제안했다”는 말이 책임을 피하는 방패막이가 될 수 있다.
개인의 판단력이 약해지면 조직의 집단지성도 흔들릴 수 있다. 임원의 49%는 사고의 다양성 감소, 43%는 건설적인 토론 감소, 34%는 협업과 팀워크 저하를 우려했다. 많은 직원이 비슷한 데이터로 학습한 AI를 사용하면 답과 형식, 논리가 비슷한 방향으로 흐르기 쉽다. 동료의 생각을 묻고 서로 반박하면서 더 나은 결론을 만드는 과정도 줄어들 수 있다. 속도 경쟁은 이런 문제를 더 키운다. 모든 일을 빠르게 끝내려는 환경에서는 충분한 토론이 이뤄지기 어렵다.
주니어 인재의 성장이 느려지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임원의 53%가 이를 역량 저하의 징후로 꼽았다. 조사와 초안 작성, 디버깅(프로그램의 오류 수정), 문제를 나누어 해결하는 일처럼 신입 직원이 직접 부딪치며 배우던 업무를 AI가 대신하면 판단력을 키울 기회가 줄어든다. 실전 경험이 줄면 주인의식이 약해지고, 이는 다시 AI의 결과를 제대로 검증하지 않는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기업은 초급 업무를 줄이는 한편 신입 직원에게 과거 5~10년 차 직원이 맡던 수준의 일을 요구하고 있다. 경력을 차근차근 쌓을 수 있는 사다리가 줄어드는 셈이다.
‘역량 보전’을 설계해야
대응의 출발점은 AI 사용을 막는 데 있지 않다. 사람이 계속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조직의 업무 방식을 설계해야 한다. 첫째, AI를 어떻게 사용할지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 승인된 AI 시스템의 결과를 어떤 방식으로 검증할지, 어떤 업무에서 사람의 검토가 반드시 필요한지 구분해야 한다. 독창성이나 윤리적 판단, 종합적인 사고가 필요한 업무에는 ‘AI 비사용 구역’을 둘 수도 있다. AI의 환각에 대응하는 방법, 모델의 답을 검증하는 방법, 어떤 상황에서 상급자에게 판단을 넘겨야 하는지도 행동강령에 담을 필요가 있다. 어떤 도구를 사용하더라도 최종 결과는 직원이 책임진다는 원칙도 분명히 해야 한다. AI를 많이 쓴다는 이유만으로 좋은 평가를 받아서도 안 된다. 기준은 AI 사용량이 아니라 실제로 가치를 얼마나 만들었느냐가 돼야 한다.
둘째, 업무의 배분과 순서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어떤 일은 AI에 맡기고, 어떤 일은 사람이 직접 하며, 어떤 일은 AI와 사람이 함께할지 구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사람의 역량을 유지할 수 있는 장치도 필요하다. 특히 판단을 내리거나 상황의 맥락을 해석해야 하는 업무는 사람이 주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AI 에이전트가 여러 단계의 업무를 처음부터 끝까지 대신할수록 사람이 직접 생각하고 판단할 기회는 줄어들기 때문이다. 최종 판단과 결과에 대한 책임도 사람에게 남겨야 한다.
영국 에너지 기업 셸은 해석과 검증, 최종 의사결정을 사람이 맡고 중요한 결과물은 동료의 검토를 거치도록 업무 절차를 바꿨다. 주니어 직원은 먼저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가정을 검증해 기초 분석을 만든 뒤 AI로 보완한다. 그 결과 질문의 질과 의사결정의 근거가 좋아지고 독립적으로 일하는 능력도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고객관리 솔루션 기업 세일즈포스는 소프트웨어 개발의 ‘페어 프로그래밍’ 개념을 AI 활용에도 적용한다. AI 활용에 능숙한 직원과 익숙하지 않은 직원을 소규모 팀으로 묶어 함께 일하게 하는 방식이다. 숙련된 동료가 AI를 사용하는 모습을 곁에서 보고 배우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셋째, 무엇을 만들어 냈는지만큼 그 결과를 어떻게 만들었는지도 평가해야 한다. AI가 결과물의 수준을 비슷하게 만들면 실제로 뛰어난 역량을 갖춘 직원을 구별하고 보상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교육과 인증을 많이 받아도 실제 실력이 함께 늘어난다고 볼 수는 없다. 기업은 장기 성과에 필요한 인간의 역량을 인사 평가와 승진 기준, 경력 개발 과정에 분명하게 반영해야 한다. 프랑스 개인정보보호 당국(CNIL)은 직원이 AI를 사용할 줄 아는지만 평가하지 않는다. AI가 내놓은 결과에 문제를 제기하고 반박할 수 있는지도 관리자가 살펴보도록 한다. 세일즈포스는 기존 평가 주기는 유지하면서 자신의 직무를 넘어서는 통찰을 만들고 이를 동료와 공유하는 직원에게 보상이 돌아가도록 했다.
평가가 결과물에만 집중되면 직원은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숨기고 보기 좋은 결과물을 만드는 데만 신경 쓸 수 있다. 반대로 어떤 가정을 세웠는지, AI의 어떤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는지, 동료의 반론을 듣고 무엇을 고쳤는지를 드러내도록 하면 사고 과정 자체가 조직의 학습 자산이 될 수 있다. 관리자는 답의 완성도뿐 아니라 질문의 질과 검증의 깊이, 자신의 판단에 얼마나 책임을 지는지도 살펴야 한다.
넷째, 일상 업무 속에 사고력을 유지하는 훈련을 넣어야 한다. 일을 시작하기 전 생각을 깨우는 준비운동을 하거나, AI 없이 문제를 푸는 회의를 열고, 일부러 서로 반대 의견을 주고받는 방식이 예가 될 수 있다. 한 인도 은행은 매월 첫째 금요일 모든 부서에서 AI를 사용하지 않는 세션을 연다. 토론과 산업 브리핑 등을 분석·창의·성찰을 중심으로 번갈아 진행한다. 미국의 한 B2B(기업 간 거래) 통신사는 팀이 사흘 동안 직접 실행 가능한 시제품을 만드는 ‘노 AI 해커톤’을 매년 열 계획이다. 한 기술 기업은 기획 단계에서 여러 시나리오를 만들고 각자의 입장을 설명한 뒤 서로의 논리를 반박하도록 한다. AI가 시나리오 작성을 도울 수는 있지만 최종 판단은 사람이 내린다.
더 좋은 질문을 만들어라
다섯째, AI를 단순히 답을 얻는 기계가 아니라 더 좋은 질문을 만드는 도구로 활용해야 한다. 과제를 설명하고 AI가 내놓은 답을 다듬는 식으로만 사용하면 생각하는 과정 자체를 AI에 맡기고 사고방식도 비슷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더 좋은 해법을 줘”라고 묻는 대신 “작동하지 않는 상황을 알려줘”라고 요구할 수 있다. 그러면 실패할 수 있는 지점과 예외 상황, 평범한 질문에서는 놓치기 쉬운 접근법이 드러날 수 있다. 법률·정책 분야의 ‘레드팀’ 방식도 AI를 일부러 비판적인 시각을 제시하는 도구로 활용한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거꾸로 취약점을 찾는 것이다. 아마존의 ‘워킹 백워즈’처럼 제품을 개발하기 전에 보도자료와 고객 문답을 먼저 작성하면 목표와 제약 조건을 초기 단계부터 분명히 할 수 있다. 공통된 원칙은 빠른 답을 얻는 것보다 더 좋은 질문을 만드는 데 AI를 활용하는 것이다.
여섯째, AI 도구 자체에 사용자가 다시 생각하도록 만드는 장치를 넣어야 한다. AI가 결론을 내놓기 전에 답에 대한 확신 수준과 반론을 함께 제시하거나, “지금 어떤 가정을 하고 있는가”라고 사용자에게 묻게 할 수 있다. AI가 추천을 내놓기 전에 사람이 먼저 짧게 판단 근거를 입력하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이런 장치는 AI의 답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막고 결과의 질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장기적으로는 자신이 언제 생각을 AI에 지나치게 맡기고 있는지 알아차리고 스스로 판단하는 힘을 되살리는 ‘메타인지’도 키울 수 있다. 일부 기업은 교육 과정에서 일부러 AI의 환각이나 예상 밖의 답을 경험하게 하는 ‘AI 실패 훈련’을 통해 직원이 예상하기 어려운 결과에 어떻게 대응하는지도 시험한다.
이 여섯 가지 방법은 단순히 교육 프로그램 몇 개를 추가하는 처방이 아니다. 기업은 먼저 AI를 어디까지 사용할지 경계를 정하고, 업무를 설계할 때 사람이 직접 판단하고 생각할 기회를 남겨야 한다. 인사 평가와 일상적인 훈련을 통해 이런 행동이 반복되도록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AI 도구 안에는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드는 장치를 넣을 수 있다. 이런 요소들이 서로 연결돼야 직원의 역량을 지키는 일이 개인의 의지나 습관에만 맡겨지지 않고 조직의 운영 방식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사람의 역량은 한 번 갖추면 영원히 유지되는 자산이 아니다. 사용하지 않으면 약해지고, 꾸준히 연습하면 다시 키울 수 있다. 판단과 의사결정, 문제 이해와 정의, 창의적 사고, 분석과 인과 추론, 해결책 도출과 평가 같은 역량은 AI가 확산할수록 약해질 위험이 있다. 동시에 리더는 공감과 경청, 호기심, 동기 부여, 회복탄력성, 리더십처럼 AI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는 역량에도 꾸준히 투자해야 한다. 기업이 지금부터 분산형 탈숙련을 관리한다면 이는 단순히 위험을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장기적인 경쟁력을 만드는 기반이 될 수 있다.
사거 고엘 BCG 파트너·데이비드 마틴 시니어 파트너·하리클리아 카페 리서치 디렉터 편집 이승균 기자 cs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