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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숨겼어" 고문까지...사람 잡아먹는 괴물의 '반전 정체'
'지옥의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
'지옥의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Hieronymus Bosch)
방금 보여드린 그림은 500여 년 전 유럽에서 그려진, 폭이 4m에 이르는 대형 그림의 일부입니다. 이 그림 곳곳에는 끔찍한 괴물들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아래쪽에서 왕좌에 앉아있는 새 머리를 한 괴물 주변을 보시죠. 가마솥은 모자처럼 뒤집어썼고, 두 발은 항아리에 꽂혀 있군요. 이 괴물은 사람을 통째로 삼키는 중입니다. 먼저 삼킨 사람들은 소화가 끝났는지 왕좌 아래로 배설되고 있고요.
목숨을 건 그림
그림은 양쪽 날개를 여닫을 수 있게 만들어졌습니다. 닫으면 잿빛 지구가 나타납니다. 신이 세상을 만들던 중, 아직 해도 달도 사람도 없는 세상을 묘사한 겁니다.
단순히 사악한 악마나 무시무시한 지옥불을 그린 그림은 그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는 난생처음 보는 기괴한 형상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인간의 역사에 이런 이미지는 존재한 적이 없었습니다. 기괴하면서도 신비로움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 그림에 사람들은 열광했습니다.
그런데 알바가 보스의 그림을 확보하기 위해 부하들을 다시 저택에 보냈을 때, 그림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그래서 알바 공작은 저택의 문지기를 체포해 혹독한 고문을 가했습니다. 심문관들은 그를 천장에 매달고 발에 100㎏이 넘는 추를 달았고, 문지기의 사지 관절은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알바 공작은 작품을 얻어냈습니다.
악마의 화가?
이런 그림을 그린 사람이라면 삶도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미술사의 ‘문제적 천재’들은 대개 그랬습니다. 고흐는 자기 귀를 잘랐고, 카라바조는 사람을 죽이고 도망 다니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고갱은 처자식을 버리고 남태평양 섬으로 가 미성년자 원주민 소녀들과 살았지요. 그렇다면 500년 전 상상을 초월하는 지옥을 그린 이 남자, 과연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요.
보스의 삶은 풍족하고 편안했습니다. 그는 서른 무렵 부유한 상인 집안의 여성과 결혼해 시장 광장 건너편 4층 집에 살림을 차렸습니다. 벽난로가 다섯 개에 자체 양조장까지 갖춘 집이었지요. 세금 기록을 봐도 보스는 도시 상위 10% 안에 드는 납세자였습니다. 도시 유지들의 모임인 '성모 형제회' 회원이기도 했습니다. 이곳은 사제·법률가·의사 등 전문직 엘리트들이 모이는 사교 모임으로, 화가는 보스가 유일했습니다. 이 모임에서 백조 구이 요리가 나오는 호화 회식을 했던 기록도 있습니다. 1516년 여름 그가 죽자 형제회는 성대한 장례 미사를 치러 줬습니다.
그래서 보스가 죽은 뒤 사람들은 제멋대로 이야기를 지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시작은 별명이었습니다. 지옥과 악마를 워낙 실감 나게 그린 탓에 보스에게는 일찍부터 '악마의 화가'라는 꼬리표가 붙었습니다. 그러자 “보스의 그림에 이단의 낌새가 있다”고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나왔습니다. 일각에서는 보스가 나체주의 이단 종파의 신자였고, '쾌락의 정원'은 그 밀교의 교리를 그린 그림이라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곰팡이 핀 호밀빵을 먹고 환각 속에서 그림을 그렸다는 설, 보스의 무의식이 반영된 결과라는 정신분석까지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는 설득력이 없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보스는 부유한 상류층이자, 성직자와 친하게 지내던 '모범 시민'이었으니까요.
마침내 답을 찾아낸 건 보스의 고향인 네덜란드 학자들이었습니다. 열쇠는 보스가 살던 15~16세기 네덜란드 속담과 설교집에 있었습니다.
괴물의 재료
불경스러워 보일 정도로 괴상한 보스의 그림. 하지만 그 속에는 사실 종교적인 교훈이 담겨있다는 게 학자들의 결론입니다.예를 들어 보스의 그림 속 지옥의 악사 머리에는 깔때기가 얹혀 있습니다. 깔때기는 아무것도 담지 못하는 물건. 그래서 당시 사람들에게는 무절제와 낭비의 상징으로 통했습니다. 나팔을 부는 벌거벗은 남자는 일종의 말장난입니다. 당시 네덜란드 말로 나팔(트롬프)은 '속임수'와 발음이 겹치고, 나팔의 한 종류(클라레트)는 '포도주'와 겹칩니다. 사기꾼과 술꾼에 대한 비판을 일종의 말장난으로 담은 겁니다. 거대한 하프와 류트에 매달려 고문당하는 이들은 유랑 악사들. 당대 설교자들이 방탕한 삶의 앞잡이로 꼽은 직업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왜 보스의 그림은 큰 인기를 끌었을까요. 그건 보스가 그린 괴물들의 모습 덕분입니다. 괴물이나 귀신을 만들어낸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5년 전, 10년 전 공포영화의 컴퓨터그래픽 괴물 중 상당수는 지금 보면 조잡하고 우스꽝스럽지요. 반면 영화 '에일리언' 시리즈의 괴물은 1970년대에 만들어졌는데도 지금 봐도 압도적입니다. 독창적이고 사람을 몰입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보스의 그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상한 그림 보는 법
'쾌락의 정원'은 지금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몰리는 그림 중 하나입니다. 그림에 담긴 비범한 상상력, 작은 요소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는 재미 덕분입니다.보스가 그린 괴물의 뜻이 밝혀지면서 신비감은 줄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 앞을 떠나지 못합니다. 해석과 관계없이 작품이 계속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500년간 누군가는 이 그림 앞에서 비밀스러운 사이비 종교를 상상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인간의 뇌 속 무의식의 지도를 읽었지요. 한편 스페인의 젊은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이 그림 앞에서 초현실주의라는 새로운 예술의 영감을 얻었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화가들이 자기 그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보스의 그림이 그렇듯이, 어쩌면 화가의 의도를 넘어서는 해석이 생겨날 수도 있고, 그 결과 그림이 화가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생명력을 얻을 수도 있다고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의 위대한 현대미술가 마르셀 뒤샹은 이를 한 문장으로 정리했습니다. “창조는 예술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보는 사람의 해석으로 완성된다.”
미술관의 해설이나 작가의 말, 미술사 지식은 물론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거기에 너무 얽매여서 그림을 감상하는 일을 부담스럽게 여길 필요는 없습니다. 논문이나 책을 쓸 것도 아니니까요. 그러니 알아야 한다는 부담은 잠시 내려놓고, 일단 마음껏 보고 해석하며 즐기셔도 좋습니다. 500년 동안 모두가 이 그림 앞에서 그렇게 해 왔습니다.
지금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는 디트로이트 미술관 걸작전 <인상주의를 넘어: 디트로이트 미술 걸작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시리즈에서 다룬 여러 거장들의 명작들을 실제로 볼 기회입니다. 최근 출간된 책 '명화 시리즈' 완결편 <명화의 완성, 그때 그 사람>과 함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