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의 정원' 지옥 패널 부분(1490~1505년경). 새 머리 괴물이 사람을 통째로 삼키는 중이고, 부리 밖으로 다리가 삐져나와 있다. 머리에 뒤집어쓴 것은 부엌의 가마솥이다. 학자들이 이 괴물에 붙인 별명은 '지옥의 왕자'.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쾌락의 정원' 지옥 패널 부분(1490~1505년경). 새 머리 괴물이 사람을 통째로 삼키는 중이고, 부리 밖으로 다리가 삐져나와 있다. 머리에 뒤집어쓴 것은 부엌의 가마솥이다. 학자들이 이 괴물에 붙인 별명은 '지옥의 왕자'.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미술 작품은 무엇일까요. 가장 강력한 후보는 이 그림일 겁니다. 정말... 이상합니다.

방금 보여드린 그림은 500여 년 전 유럽에서 그려진, 폭이 4m에 이르는 대형 그림의 일부입니다. 이 그림 곳곳에는 끔찍한 괴물들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아래쪽에서 왕좌에 앉아있는 새 머리를 한 괴물 주변을 보시죠. 가마솥은 모자처럼 뒤집어썼고, 두 발은 항아리에 꽂혀 있군요. 이 괴물은 사람을 통째로 삼키는 중입니다. 먼저 삼킨 사람들은 소화가 끝났는지 왕좌 아래로 배설되고 있고요.
'쾌락의 정원' 지옥 패널 부분 확대. 왕좌에 앉은 새 머리 괴물의 전신. 두 발은 항아리에 꽂혀 있고, 먼저 삼킨 사람들은 왕좌 아래 구덩이로 떨어진다. 왼편에는 가슴에 두꺼비가 앉은 여인이 보인다. /프라도
'쾌락의 정원' 지옥 패널 부분 확대. 왕좌에 앉은 새 머리 괴물의 전신. 두 발은 항아리에 꽂혀 있고, 먼저 삼킨 사람들은 왕좌 아래 구덩이로 떨어진다. 왼편에는 가슴에 두꺼비가 앉은 여인이 보인다. /프라도
'쾌락의 정원' 지옥 패널 부분 확대. 사람 키보다 큰 귀 한 쌍이 화살에 꿰뚫린 채 칼날을 끼우고 굴러온다. 귀 밑에는 사람들이 깔려 있다. /프라도
'쾌락의 정원' 지옥 패널 부분 확대. 사람 키보다 큰 귀 한 쌍이 화살에 꿰뚫린 채 칼날을 끼우고 굴러온다. 귀 밑에는 사람들이 깔려 있다. /프라도
고개를 돌리면 더한 장면들이 이어집니다. 사람 키보다 큰 귀 한 쌍이 시퍼런 칼날을 끼운 채 서 있습니다(위). 하프에는 사람이 줄에 꿰인 채 매달려 있습니다(아래). 엎드린 죄인의 엉덩이에는 악보가 그려져 있지요. 이 모든 장면이 나무판 위에 그려져 있습니다.
'쾌락의 정원' 지옥 패널 부분 확대. 하프 줄에 사람이 꿰여 있고, 류트 아래 엎드린 죄인의 엉덩이에는 악보가 그려져 있다. 바퀴 악기 속에는 수녀의 얼굴이, 북 속에는 또 다른 얼굴이 갇혀 있다. /프라도
'쾌락의 정원' 지옥 패널 부분 확대. 하프 줄에 사람이 꿰여 있고, 류트 아래 엎드린 죄인의 엉덩이에는 악보가 그려져 있다. 바퀴 악기 속에는 수녀의 얼굴이, 북 속에는 또 다른 얼굴이 갇혀 있다. /프라도
그림의 제목은 '쾌락의 정원'. 그린 사람은 네덜란드 화가 히에로니무스 보스(1450~1516)입니다. 이 그림을 본 사람들은 궁금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그림은 무슨 뜻인지, 그리고 대체 얼마나 이상한 사람이길래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 오늘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에서는 납량 특집을 겸해, 이 섬뜩한 그림과 이상한 화가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 봅니다.

목숨을 건 그림

그림은 양쪽 날개를 여닫을 수 있게 만들어졌습니다. 닫으면 잿빛 지구가 나타납니다. 신이 세상을 만들던 중, 아직 해도 달도 사람도 없는 세상을 묘사한 겁니다.
'쾌락의 정원'의 날개를 닫은 모습(외판). 왼쪽 위 구석에 창조주가 작게 그려져 있고 상단에 라틴어 시편 구절이 적혀 있다. 날개를 여는 순간 다채로운 색채가 관객에게 충격을 주도록 설계된, 책으로 치면 일종의 '표지'다. /프라도
'쾌락의 정원'의 날개를 닫은 모습(외판). 왼쪽 위 구석에 창조주가 작게 그려져 있고 상단에 라틴어 시편 구절이 적혀 있다. 날개를 여는 순간 다채로운 색채가 관객에게 충격을 주도록 설계된, 책으로 치면 일종의 '표지'다. /프라도
날개를 열면 4m 너비의 그림에서 색이 쏟아집니다. 왼쪽은 아담과 이브의 낙원, 가운데는 벌거벗은 남녀 수백 명이 사람만 한 딸기 사이에서 노니는 수수께끼의 정원, 그리고 오른쪽이 앞서 보신 지옥입니다.
'쾌락의 정원'을 펼친 전체 모습. 왼쪽부터 낙원, 정원, 지옥. '쾌락의 정원'이라는 제목은 후대가 붙인 것이다. /프라도
'쾌락의 정원'을 펼친 전체 모습. 왼쪽부터 낙원, 정원, 지옥. '쾌락의 정원'이라는 제목은 후대가 붙인 것이다. /프라도
이 그림은 당대에도 큰 화제를 불러 모았습니다. 보스가 죽고 이듬해인 1517년, 이탈리아에서 온 한 성직자는 이 그림을 보고 기록을 남겼습니다. "어찌나 기이하고 환상적인지, 실물을 보지 못한 사람에게는 도무지 설명할 방법이 없다."

단순히 사악한 악마나 무시무시한 지옥불을 그린 그림은 그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는 난생처음 보는 기괴한 형상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인간의 역사에 이런 이미지는 존재한 적이 없었습니다. 기괴하면서도 신비로움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 그림에 사람들은 열광했습니다.
'쾌락의 정원' 낙원 패널 부분 확대. '생명의 분수' 한가운데 뚫린 어두운 구멍에 부엉이 한 마리가 들어앉아 밖을 내다본다. 밝은 낙원에서 홀로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새다. /프라도
'쾌락의 정원' 낙원 패널 부분 확대. '생명의 분수' 한가운데 뚫린 어두운 구멍에 부엉이 한 마리가 들어앉아 밖을 내다본다. 밝은 낙원에서 홀로 어둠 속에 숨어 있는 새다. /프라도
'쾌락의 정원' 중앙 패널 부분 확대. 남자가 제 몸집만 한 딸기를 짊어지고 있다. /프라도
'쾌락의 정원' 중앙 패널 부분 확대. 남자가 제 몸집만 한 딸기를 짊어지고 있다. /프라도
이 그림을 손에 넣으려 피비린내 나는 고문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16세기 네덜란드는 스페인 왕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때 네덜란드 총독으로 부임한 사람이 스페인의 귀족인 알바 공작입니다. 그는 독립을 꾀하던 오라녜 공 빌럼을 반역죄 재판에 넘기고 전 재산을 몰수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아챈 빌럼은 도망갔고, 그 즉시 알바는 빌럼의 집에 부하들을 보내 재산 목록을 조사하게 시켰습니다. 그 목록에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벽난로 앞에 걸린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큰 그림 한 점". 바로 아까 본 '쾌락의 정원'이었지요. 미술사학자 파울 판덴브룩은 "알바가 빌럼을 재판에 넘긴 건 보스의 그림을 빼앗기 위해서였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알바가 보스의 그림을 확보하기 위해 부하들을 다시 저택에 보냈을 때, 그림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그래서 알바 공작은 저택의 문지기를 체포해 혹독한 고문을 가했습니다. 심문관들은 그를 천장에 매달고 발에 100㎏이 넘는 추를 달았고, 문지기의 사지 관절은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결국 알바 공작은 작품을 얻어냈습니다.
'쾌락의 정원' 지옥 패널 부분 확대. 위쪽은 불타는 도시, 중간에는 거대한 귀와 칼, 사람 얼굴을 한 괴물이 보인다. 아래쪽에서는 거대한 악기들 옆에서 도박판이 뒤집히고, 갑옷을 입은 괴물들이 사람을 사냥한다. /프라도
'쾌락의 정원' 지옥 패널 부분 확대. 위쪽은 불타는 도시, 중간에는 거대한 귀와 칼, 사람 얼굴을 한 괴물이 보인다. 아래쪽에서는 거대한 악기들 옆에서 도박판이 뒤집히고, 갑옷을 입은 괴물들이 사람을 사냥한다. /프라도
세월이 흘러 공작이 세상을 떠나자 그림은 공작 집안의 유품 경매에 나왔습니다. 작품에 눈독을 들인 건 유럽 최강국 스페인의 왕인 펠리페 2세. 그는 그림을 사들여 1593년 왕실 수도원에 봉헌했습니다. 그 이후 작품은 스페인 왕실에 전해져 내려왔고, 지금은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 걸려 있습니다.

악마의 화가?

이런 그림을 그린 사람이라면 삶도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미술사의 ‘문제적 천재’들은 대개 그랬습니다. 고흐는 자기 귀를 잘랐고, 카라바조는 사람을 죽이고 도망 다니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고갱은 처자식을 버리고 남태평양 섬으로 가 미성년자 원주민 소녀들과 살았지요. 그렇다면 500년 전 상상을 초월하는 지옥을 그린 이 남자, 과연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요.
보스의 얼굴로 전해지는 초크 드로잉(1560년경). 그림 아래에 옛 글씨로 '화가 예로니무스 보스'라고 적혀 있다. 사후 44년 뒤에 그려진 것으로, 생전에 제작된 초상은 한 점도 확인되지 않는다. 오늘날 통용되는 보스의 얼굴은 전부 이 드로잉의 복제다. /아라스 시립도서관
보스의 얼굴로 전해지는 초크 드로잉(1560년경). 그림 아래에 옛 글씨로 '화가 예로니무스 보스'라고 적혀 있다. 사후 44년 뒤에 그려진 것으로, 생전에 제작된 초상은 한 점도 확인되지 않는다. 오늘날 통용되는 보스의 얼굴은 전부 이 드로잉의 복제다. /아라스 시립도서관
기록을 뒤진 학자들은 당황했습니다. 너무 멀쩡했기 때문입니다. 보스는 1450년께 네덜란드 남부의 도시 스헤르토헨보스에서 태어났습니다. 본명은 예로니무스 판 아켄. '보스'는 고향 이름(덴 보스)에서 따온 예명입니다. 집안은 할아버지 대부터 내려온 화가 가문이었고, 그는 시장 광장에 있는 아버지의 공방에서 그림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보스는 이 광장 주변에서 평생을 보내게 됩니다.

보스의 삶은 풍족하고 편안했습니다. 그는 서른 무렵 부유한 상인 집안의 여성과 결혼해 시장 광장 건너편 4층 집에 살림을 차렸습니다. 벽난로가 다섯 개에 자체 양조장까지 갖춘 집이었지요. 세금 기록을 봐도 보스는 도시 상위 10% 안에 드는 납세자였습니다. 도시 유지들의 모임인 '성모 형제회' 회원이기도 했습니다. 이곳은 사제·법률가·의사 등 전문직 엘리트들이 모이는 사교 모임으로, 화가는 보스가 유일했습니다. 이 모임에서 백조 구이 요리가 나오는 호화 회식을 했던 기록도 있습니다. 1516년 여름 그가 죽자 형제회는 성대한 장례 미사를 치러 줬습니다.
네덜란드 스헤르토헨보스의 시장 광장. 보스의 본가와 처가가 모두 이 광장에 있었다. 도시는 지금 화가의 이름을 딴 미술센터를 운영하며, 2016년 사후 500주년 전시에는 42만 명이 몰려 이 도시 미술관 개관 이래 최다 기록을 세웠다. /사진=위키미디어 공용
네덜란드 스헤르토헨보스의 시장 광장. 보스의 본가와 처가가 모두 이 광장에 있었다. 도시는 지금 화가의 이름을 딴 미술센터를 운영하며, 2016년 사후 500주년 전시에는 42만 명이 몰려 이 도시 미술관 개관 이래 최다 기록을 세웠다. /사진=위키미디어 공용
그렇다면 이 남자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보스는 편지 한 장, 일기 한 줄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림에 대해 무슨 말을 했다는 기록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보스가 죽은 뒤 사람들은 제멋대로 이야기를 지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시작은 별명이었습니다. 지옥과 악마를 워낙 실감 나게 그린 탓에 보스에게는 일찍부터 '악마의 화가'라는 꼬리표가 붙었습니다. 그러자 “보스의 그림에 이단의 낌새가 있다”고 수군거리는 사람들이 나왔습니다. 일각에서는 보스가 나체주의 이단 종파의 신자였고, '쾌락의 정원'은 그 밀교의 교리를 그린 그림이라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곰팡이 핀 호밀빵을 먹고 환각 속에서 그림을 그렸다는 설, 보스의 무의식이 반영된 결과라는 정신분석까지 나왔습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는 설득력이 없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보스는 부유한 상류층이자, 성직자와 친하게 지내던 '모범 시민'이었으니까요.

마침내 답을 찾아낸 건 보스의 고향인 네덜란드 학자들이었습니다. 열쇠는 보스가 살던 15~16세기 네덜란드 속담과 설교집에 있었습니다.
'일곱 가지 대죄와 네 가지 종말'(1500년경). 탁자 상판 형태의 그림. 한가운데 눈동자 자리에 그리스도가 서 있고
'일곱 가지 대죄와 네 가지 종말'(1500년경). 탁자 상판 형태의 그림. 한가운데 눈동자 자리에 그리스도가 서 있고 "조심하라, 조심하라, 주님이 보고 계신다"라는 라틴어가 적혀 있다. 신의 눈동자에 비친 세상은 곧 일곱 가지 죄의 파노라마라는 뜻이다. /프라도

괴물의 재료

불경스러워 보일 정도로 괴상한 보스의 그림. 하지만 그 속에는 사실 종교적인 교훈이 담겨있다는 게 학자들의 결론입니다.

예를 들어 보스의 그림 속 지옥의 악사 머리에는 깔때기가 얹혀 있습니다. 깔때기는 아무것도 담지 못하는 물건. 그래서 당시 사람들에게는 무절제와 낭비의 상징으로 통했습니다. 나팔을 부는 벌거벗은 남자는 일종의 말장난입니다. 당시 네덜란드 말로 나팔(트롬프)은 '속임수'와 발음이 겹치고, 나팔의 한 종류(클라레트)는 '포도주'와 겹칩니다. 사기꾼과 술꾼에 대한 비판을 일종의 말장난으로 담은 겁니다. 거대한 하프와 류트에 매달려 고문당하는 이들은 유랑 악사들. 당대 설교자들이 방탕한 삶의 앞잡이로 꼽은 직업이었습니다.
'광기의 돌 제거'(1500년경). 머리에서 '어리석음의 돌'을 꺼내 준다며 행해지던 엉터리 시술을 풍자했다. 자세히 보면 돌팔이가 정수리에서 꺼내는 것은 돌이 아니라 꽃이고, 탁자 위에 이미 한 송이가 놓여 있다. 당시 은어로 '돌'과 '튤립 구근'은 모두 멍청함을 뜻했다. 시술자가 쓴 것은 의사 모자가 아니라 깔때기다. 액자의 금박 글씨는 환자의 대사다.
'광기의 돌 제거'(1500년경). 머리에서 '어리석음의 돌'을 꺼내 준다며 행해지던 엉터리 시술을 풍자했다. 자세히 보면 돌팔이가 정수리에서 꺼내는 것은 돌이 아니라 꽃이고, 탁자 위에 이미 한 송이가 놓여 있다. 당시 은어로 '돌'과 '튤립 구근'은 모두 멍청함을 뜻했다. 시술자가 쓴 것은 의사 모자가 아니라 깔때기다. 액자의 금박 글씨는 환자의 대사다. "선생님, 이 돌 좀 어서 빼 주쇼." /프라도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1500년경). 보스의 3대 세폭화 가운데 가장 복잡한 작품. 불타는 마을과 하늘을 나는 배들, 성인과 악마들의 의식이 공존한다. /리스본 국립고미술관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1500년경). 보스의 3대 세폭화 가운데 가장 복잡한 작품. 불타는 마을과 하늘을 나는 배들, 성인과 악마들의 의식이 공존한다. /리스본 국립고미술관
다른 비유들도 대체로 이런 식입니다. 그러니까 이 괴물들은 화가의 환각이 아니라, 당대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는 '그림으로 된 설교' 였습니다. 괴상한 괴물들의 모습이 전하는 핵심 메시지는 "어리석음이 곧 죄이며, 쾌락에는 값이 따른다"는 것. 다시 말해 뻔한 내용입니다.

그런데도 왜 보스의 그림은 큰 인기를 끌었을까요. 그건 보스가 그린 괴물들의 모습 덕분입니다. 괴물이나 귀신을 만들어낸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5년 전, 10년 전 공포영화의 컴퓨터그래픽 괴물 중 상당수는 지금 보면 조잡하고 우스꽝스럽지요. 반면 영화 '에일리언' 시리즈의 괴물은 1970년대에 만들어졌는데도 지금 봐도 압도적입니다. 독창적이고 사람을 몰입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보스의 그림도 마찬가지입니다.
'쾌락의 정원' 지옥 패널 부분 확대 - '나무인간'. 깨진 달걀 몸통 속에 술집이 차려져 있고, 나무둥치 다리는 배 두 척 위에 서 있다. 머리에 얹은 원반 위에서는 괴물과 사람 들이 백파이프를 돌며 행진한다. 어깨 너머로 관객을 돌아보는 이 창백한 얼굴을 보스의 자화상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프라도
'쾌락의 정원' 지옥 패널 부분 확대 - '나무인간'. 깨진 달걀 몸통 속에 술집이 차려져 있고, 나무둥치 다리는 배 두 척 위에 서 있다. 머리에 얹은 원반 위에서는 괴물과 사람 들이 백파이프를 돌며 행진한다. 어깨 너머로 관객을 돌아보는 이 창백한 얼굴을 보스의 자화상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프라도
그림을 잘 보면, 보스가 그린 괴물들은 당시 사람들에게 친숙한 일상의 물건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몸의 부위와 칼, 솥, 하프와 류트 같은 악기 등은 실물에 가깝게 세밀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단지 크기와 쓰임새가 다를 뿐이지요. 그래서 당대 사람들은 보스를 "괴물과 키메라(여러 요소가 하나로 섞인 괴물)의 발명가"라 불렀습니다. 그 점이 묘한 섬찟함을 느끼게 합니다. 매일 만지던 익숙한 물건이 지옥에서 나를 고문하는 것이니까요. 보스 전기를 쓴 미술사학자 뷔트너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지옥은 너무나도 친숙하게 다가오기 때문에 무섭다."
'바보들의 배'(1490~1500년경). 술판이 벌어진 배의 한가운데서 수녀와 수사가 목청껏 노래한다. 성직자 풍자다. 돛대 꼭대기 나뭇잎 사이에는 부엉이가 숨어 있다. 원래 더 큰 세폭화에서 잘려 나온 조각으로, 나머지 짝은 미국 예일대 미술관에 있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
'바보들의 배'(1490~1500년경). 술판이 벌어진 배의 한가운데서 수녀와 수사가 목청껏 노래한다. 성직자 풍자다. 돛대 꼭대기 나뭇잎 사이에는 부엉이가 숨어 있다. 원래 더 큰 세폭화에서 잘려 나온 조각으로, 나머지 짝은 미국 예일대 미술관에 있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죽음과 수전노'(1490년대 이후). 죽음이 문틈으로 화살을 겨누며 들어서는 순간에도 침대의 남자는 악마가 내미는 돈자루에 손을 뻗는다. 당대 베스트셀러였던 '잘 죽는 법(아르스 모리엔디)' 교본의 이미지를 옮긴 것이다. /워싱턴 내셔널갤러리
'죽음과 수전노'(1490년대 이후). 죽음이 문틈으로 화살을 겨누며 들어서는 순간에도 침대의 남자는 악마가 내미는 돈자루에 손을 뻗는다. 당대 베스트셀러였던 '잘 죽는 법(아르스 모리엔디)' 교본의 이미지를 옮긴 것이다. /워싱턴 내셔널갤러리
시장에서 팔리는 물건들, 술집에서 오가는 말들, 광장에서 매일 마주치는 인간의 욕심과 어리석음. 보스는 남들이 흘려보내는 그 일상을 집요하게 들여다봤고, 그 안에서 지옥을 발견했습니다. 보스가 죽고 90년 가까이 지나 스페인 왕실 수도원의 사서는 이렇게 썼습니다. "다른 화가들은 인간을 겉모습대로 그리려 하지만, 오직 그만이 인간을 그 내면 그대로 그리는 대담함을 지녔다."

이상한 그림 보는 법

'쾌락의 정원'은 지금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몰리는 그림 중 하나입니다. 그림에 담긴 비범한 상상력, 작은 요소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는 재미 덕분입니다.

보스가 그린 괴물의 뜻이 밝혀지면서 신비감은 줄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 앞을 떠나지 못합니다. 해석과 관계없이 작품이 계속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500년간 누군가는 이 그림 앞에서 비밀스러운 사이비 종교를 상상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인간의 뇌 속 무의식의 지도를 읽었지요. 한편 스페인의 젊은 화가 살바도르 달리는 이 그림 앞에서 초현실주의라는 새로운 예술의 영감을 얻었습니다.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지속'(1931). 흘러내리는 시계로 유명한 초현실주의의 대표작이다. 달리와 초현실주의자들은 400년 전의 보스를 자신들의 선구자로 꼽았다. 보스 자신은 이런 미래를 결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뉴욕 현대미술관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지속'(1931). 흘러내리는 시계로 유명한 초현실주의의 대표작이다. 달리와 초현실주의자들은 400년 전의 보스를 자신들의 선구자로 꼽았다. 보스 자신은 이런 미래를 결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뉴욕 현대미술관
다양한 해석들은 결국 오답으로 밝혀졌지만, 헛되지는 않았습니다. 자유로운 상상들이 그림에 신비로움과 매력을 더하며 작품을 500년 내내 살아 있게 했기 때문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화가들이 자기 그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보스의 그림이 그렇듯이, 어쩌면 화가의 의도를 넘어서는 해석이 생겨날 수도 있고, 그 결과 그림이 화가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생명력을 얻을 수도 있다고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의 위대한 현대미술가 마르셀 뒤샹은 이를 한 문장으로 정리했습니다. “창조는 예술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보는 사람의 해석으로 완성된다.”

미술관의 해설이나 작가의 말, 미술사 지식은 물론 중요합니다. 그렇지만 거기에 너무 얽매여서 그림을 감상하는 일을 부담스럽게 여길 필요는 없습니다. 논문이나 책을 쓸 것도 아니니까요. 그러니 알아야 한다는 부담은 잠시 내려놓고, 일단 마음껏 보고 해석하며 즐기셔도 좋습니다. 500년 동안 모두가 이 그림 앞에서 그렇게 해 왔습니다.
'쾌락의 정원' 중앙 패널 부분 확대. 거대한 과일에 꽂힌 유리관 속으로 쥐 한 마리가 걸어 들어가고, 과일 창 안의 남자는 넋을 잃고 그것을 바라본다. 무슨 뜻인지는 지금도 해석이 갈린다. 마음껏 상상해 보자. 500년 전부터 모두가 그래 왔다. /프라도
'쾌락의 정원' 중앙 패널 부분 확대. 거대한 과일에 꽂힌 유리관 속으로 쥐 한 마리가 걸어 들어가고, 과일 창 안의 남자는 넋을 잃고 그것을 바라본다. 무슨 뜻인지는 지금도 해석이 갈린다. 마음껏 상상해 보자. 500년 전부터 모두가 그래 왔다. /프라도
**이번 기사는 Nils Büttner의 'Hieronymus Bosch: Visions and Nightmares'를 중심으로, Hans Belting의 'Hieronymus Bosch: Garden of Earthly Delights', Stefan Fischer의 'Hieronymus Bosch: The Complete Works', Paul Vandenbroeck 등이 참여한 도록 'Hieronymus Bosch: New Insights into His Life and Work', Dirk Bax의 'Hieronymus Bosch: His Picture-Writing Deciphered',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의 소장품 해설 등을 참조해 작성했습니다.
피 비린내 고문까지 당했다…유럽 발칵 뒤집은 '괴물'의 정체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그때 그 사람들>은 미술·문화재 담당 기자가 미술사의 거장들과 고고학, 역사 등을 심도 있게 조명하는 국내 문화 분야 구독자 1위 연재물입니다. 매주 토요일 새로운 이야기로 찾아옵니다. 기자 페이지 구독 버튼을 누르시면 미술 소식과 전시에 대한 심층 분석을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지금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는 디트로이트 미술관 걸작전 <인상주의를 넘어: 디트로이트 미술 걸작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시리즈에서 다룬 여러 거장들의 명작들을 실제로 볼 기회입니다. 최근 출간된 책 '명화 시리즈' 완결편 <명화의 완성, 그때 그 사람>과 함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