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KBS교향악단 창단 70주년 특별연주회
피아니스트 임윤찬·손민수 롯데콘서트홀 함께 올라
'모차르트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10번' 연주
수년간 피아노를 함께 맞댄 스승과 제자의 연주엔 그들만의 내밀함이 있다. 22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KBS교향악단 창단 70주년 특별연주회에서 피아니스트 손민수와 그의 제자 임윤찬은 그 내밀함을 관객에게 드러냈다. 이들은 일렬로 앉았다. 손민수가 지휘자를 등지고, 그 옆으로 임윤찬이 등을 맞대듯 다른 피아노 앞에 앉았다. 두 피아니스트가 서로 눈빛을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배치였다.
지난 22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KBS교향악단 창단 70주년 특별연주회' 공연./사진출처. KBS교향악단.
공연의 시작은 피아노 없이 악단이 맡았다. 지휘자는 스즈키 마사토. 일본의 인기 바로크 악단이자 그의 아버지인 스즈키 마사아키가 창단한 바흐 콜레기움 재팬의 상임지휘자다. 목에 닿는 하얀 장발을 휘날리며 포디움에 오른 그는 오페라 <돈 조반니> 서곡을 지휘했다. 초장부터 공기를 채운 현의 단단한 소리, 불안함과 밝음을 공존시킨 플루트의 가느다란 떨림이 뒤이을 본막에 대한 기대감을 안겼다. 스즈키 마사토는 템포를 능숙히 조절하며 모차르트 오페라 특유의 재치와 능청을 표현했다.
지적이면서 열정적인 사제...피아노로 춤을 췄다
협주곡 차례가 되자 피아노 2대가 등장했다. 무대에 올라온 손민수와 임윤찬에게선 편안함이 느껴졌다. 연주곡은 모차르트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10번’. 모차르트가 누이와 함께 연주하려 쓴 곡으로 추정되는 작품이라 그런지 두 피아노가 서로를 어루만지는 듯한 포근함과 모차르트 특유의 경쾌함이 공존한다. 클라리넷과 바순은 그윽하면서도 들뜬 분위기가 남아 있는 소리로 이 곡의 시작을 알렸다.
지난 22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KBS교향악단 창단 70주년 특별연주회' 공연./사진출처. KBS교향악단.
애피타이저 같던 약 2분간의 악단 서주가 끝나자 두 피아노 소리가 코스 요리처럼 차례대로 올라왔다. 임윤찬의 소리는 단번에 그가 왜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20대 피아니스트인지를 납득시켰다. 소리 한 알 한 알이 살짝 가볍고 선명하면서도 연결감과, 그 연결감으로 풀어내는 위트가 있었다. 파스타처럼 소리에도 삶는 정도가 있다면 임윤찬은 익힘 정도를 정확하게 잡아내는 노련한 셰프였다. 손민수의 소리는 조금 더 심지가 굵으면서 분절감이 있어 제자의 음색과 기분 좋은 대조를 이뤘다. 둘의 연주는 지적이면서도 서로 충돌하지 않았다.
2악장에서도 두 피아노는 긴밀히 엮이며 길을 걸었다. 간간이 머리를 드러낸 오보에는 풍성한 구름이 돼 쿠션처럼 피아노의 뒤를 푹신하게 받쳐주는 역할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제의 연주는 현란해졌다. 임윤찬의 손가락 위엔 날개 달린 요정들이 달려서 분주하게 피아노 건반 위를 날아다니는 듯했다. 경쾌함을 지키면서도 사색함을 한 숟갈 끼얹는데 그 균형감이 신묘했다. 사제의 팔짓이 서로 닮아 데칼코마니로 청출어람을 그리는 것 같았다.
지난 22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KBS교향악단 창단 70주년 특별연주회' 공연./사진출처. KBS교향악단.
마지막 악장의 카덴차는 두 피아니스트가 손을 맞잡고 춤을 추는 듯했다. 춤은 점점 더 내밀하고 격정적으로 흘러갔다. 악단의 침묵 속에선 피아니스트가 리듬을 살려 악보를 넘기는 소리도 음악이 됐다. 악단은 같은 빠르기로 두 피아니스트의 몰입을 따르며 함께 연주를 마쳤다. 앙코르에선 두 피아니스트가 한 피아노 앞에 나란히 앉아 바흐의 칸타타 ‘하느님의 시간이 최고의 시간’을 연주했다. 꿈을 꾸는 듯한 부유감이 인상적이었다. 연주가 끝나자 손민수와 임윤찬은 손을 맞잡은 채 살짝 쑥스러운 웃음과 함께 관객에게 인사했다. 이들에게 빠진 듯한 지휘자 스즈키의 웃음이 더 환했다.
지난 22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KBS교향악단 창단 70주년 특별연주회' 공연./사진출처. KBS교향악단.파도가 너울대는 바닷가처럼 시원한 교향곡
공연 2부는 KBS교향악단만의 차례였다. 공연 1부가 끝나고 관객 일부가 빠지면서 객석의 8분의 1가량이 비게 된 점은 악단이 통제할 수 없는 아쉬움이었다. 악단은 드보르자크 교향곡 8번을 준비했다. 새의 지저귐과 보헤미아의 춤곡 리듬을 곳곳에서 맛볼 수 있는 작품이다. 주로 새 소리를 맡게 되는 플루트의 1악장 소리는 통통 튀는 대신 부드럽게 새 소리를 표현했다. 객원 악장으로 분투한 WDR 쾰른 방송교향악단 수석인 문바래니를 필두로 열정적인 보잉이 돋보인 바이올린, 박력을 더한 더블베이스 등이 곡 전체에서 에너지 레벨을 끌어올렸다.
2악장 현의 시작도 유려하기보다는 장엄하고 굵직한 울림을 그렸다는 점에서 1악장의 결과 어울렸다. 플루트는 조금 빠르게, 현과 바순은 느릿하게 연주하면서 대조의 쾌감을 선사했다. 이따금 목관이 불안하게 들리기도 했지만 플루트와 오보에의 대화는 관객을 음악에 침잠시키기에 충분했다. 춤곡 리듬이 가득한 3악장은 넘실거렸다. 잔잔한 호수보다는 파도가 너울대는 바닷가가 어울렸다, 살롱의 왈츠보다는 보헤미아 산장의 춤에 가까웠다. 지휘자도 현의 피치카토에 맞춰 무릎을 살짝 튕기며 춤에 가담했다.
지난 22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KBS교향악단 창단 70주년 특별연주회' 공연. 이주현 기자
트럼펫의 울림으로 시작한 4악장에선 현이 폭발적인 소리를 내면서도 응집력을 유지했다. 덕분에 큰 소리로 총주가 쏟아질 때도 각 악기의 소리를 함께, 또 따로 듣는 맛이 좋았다. 바이올린은 포르테에 포르테를 포개듯 현 위에 에너지를 농축시켰다. 단원들의 열의 넘친 피날레는 이날 프로그램 북에 담겨 있던 KBS교향악단에 대한 설명인 “대한민국 클래식 음악을 선도하는 국가대표 교향악단”이란 말을 증명하려는 것 같았다. 악단은 마지막 악장의 코다를 다시 연주해 호랑이 기운을 관객에게 전하는 것으로 공연을 마무리했다.
지난 22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KBS교향악단 창단 70주년 특별연주회' 공연./사진출처. KBS교향악단.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