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자금만으로 기후금융을 모두 메우기는 어렵다. 한국 기업들이 가진 다양한 기술 역량은 개발도상국 현장에서 광범위한 수요를 형성하고 있다. GGGI는 올해 3월부터 기업과 함께하는 기후투자 파이프라인 준비 이니셔티브를 이끌고 있다.
[한경ESG] 러닝
지난 7월 포항시가 주최해 개최한 2026 세계녹색성장포럼 (WGGF)에서의 GGGI 세션 사진. 사진=GGGI 제공
기후금융의 규모는 사상 최대로 불어났지만, 정작 그 자본의 흐름은 기후 취약국을 비껴가고 있다. 2024년 전 세계 기후금융 규모는 사상 처음으로 2조 달러를 넘어섰으며, 이 중 민간 금융이 1조2000억 달러 이상을 차지했다. 하지만 그 혜택의 약 80%는 선진국과 중국에 집중되었고, 최빈국들이 가져간 비중은 2% 미만인 360억 달러에 불과했다. 신흥 시장과 개발도상국의 기후금융 규모가 2023년 1조 달러를 넘어섰으나, 그중 80%는 해당 국가 내부 자금이었다. 가장 빈곤한 시장의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2024년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을 위해 직간접적으로 투입하거나 유치한 기후금융은 1367억 달러였으나, 이 중 약 4분의 3은 공공 자금이었으며 민간 금융은 305억 달러에 그쳤다.
이처럼 자본 사각지대가 생기는 것은 전 지구적인 자본 부족 현상이기보다 자본이 적재적소로 흐르지 못하는 ‘배분의 실패’에 가깝다. 기록적인 투자 수준에도 불구하고, 2024년부터 2030년까지 넷제로(net-zero) 경로를 유지하기 위해 매년 필요한 자금은 약 5조9000억 달러에 달한다. 이는 각국의 정책 이행 속도와 기술 발전 시나리오에 따라 최소 4조5000억 달러에서 최대 7조8억 달러까지 변동 가능한 규모로, 현재의 투자액은 이에 비하면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 설상가상으로 2025년 공적개발원조(ODA)마저 23% 급감하며 재원 조달의 마중물 역할을 하던 양허성 금융의 가용성마저 낮아졌다. 공공자원 확대만으로는 이 막대한 격차를 메우기 어려운 만큼, 기존 금융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새로운 전략이 무엇보다 절실하다.
기업이 개발도상국에서 찾는 기회
이 난관을 돌파할 핵심 열쇠는 바로 ‘프로젝트 기획 및 개발(Project Preparation)’ 단계에 있다. 민간 투자는 금융 수요가 아닌 위험조정수익률을 따르는데, 많은 개발도상국에서 청정에너지 프로젝트의 금융 비용은 선진국보다 2~3배 높게 형성되어 있다. 결과적으로 단순히 자본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투자 가능한 수준의 프로젝트(bankable projects)’가 부족한 것이 핵심이다. 각국 정부는 기후 대응 우선순위를 정하고, 투자자들은 사업성을 갖춘 기회를 찾지만, 초기 구상 단계에서 금융적으로 실행 가능한 단계로 넘어가는 프로젝트는 극소수다.
녹색기후기금(GCF)의 최근 워킹 페이퍼 <프로젝트 준비지원기구(PPF)의 현황 및 협력체계 분석(Project Preparation Facility(PPF) Landscape and Partnership Analysis)>에 따르면 75개의 프로젝트 준비 시설을 분석한 결과 초기 단계 지원과 민간 부문 참여, 그리고 사업화 단계와 실제 금융 조달 단계 간의 연계가 미흡하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진단은 파편화된 사업화 생태계를 체계적으로 조정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을 싣는다. 또한 공식 타당성 조사 이전에 시장 수요와 기술적 타당성을 검증하는 전문적인 조언이 선행될 때 초기 구상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의 현장 경험과도 일맥상통한다. 프로젝트 개발의 혜택은 여러 이해관계자에게 분산되는 반면, 그 가치를 온전히 누릴 주체는 불분명하기에 시장에서는 구조적인 과소 공급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격차를 해소하는 데 한국은 매우 유리한 위치에 있다. 한국무역협회(KITA),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한국환경산업기술원(KEITI) 등은 이미 한국 기업들의 해외 시장 진출과 파트너십 구축을 뒷받침하고 있으며, 에너지저장장치(ESS), 청정 수소, 지속가능한 교통, 폐기물 관리 및 순환경제, 물과 위생, 저탄소 산업, 스마트 인프라 등 한국이 보유한 다양한 기술 역량은 개발도상국 현장에서 광범위한 수요를 형성하고 있다.
파키스탄의 102MW급 굴푸르(Gulpur) 수력발전 프로젝트는 이를 증명하는 사례로, 대규모 인프라 개발에서 협업이 창출하는 거시적인 가치를 잘 보여준다. 이 사업에서는 한국이 주도하는 프로젝트 회사가 소유권을 확보하고, 정부의 보증을 받는 구매자가 수익 모델을 뒷받침했다. 여기에 한국 기업들이 건설(EPC, 설계·조달·시공) 및 운영·유지보수(O&M) 역량을 공급했고, 여러 국가의 금융기관이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을 제공하며 힘을 보탰다. 2020년부터 상업 운전을 시작한 이 프로젝트가 중요한 이유는 공공·민간·금융의 역할이 각자의 영역에서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해 대규모 해외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협업 모델을 확산하기 위해 글로벌녹색성장기구(GGGI)는 올해 3월부터 ‘기후투자 파이프라인(CIP) 준비 이니셔티브(Climate Investment Pipeline Readiness initiative)’를 추진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GGGI는 기술적·시장적 통찰을 프로젝트 구상 단계부터 반영할 수 있도록 파트너 국가 정부와 한국 기업, 투자자, 기술 제공자, 공공기관을 직접 연결한다. 파트너 국가는 한국의 기술 리더 및 혁신가들로부터 실질적인 피드백을 제공받는 한편, 한국 기업들은 해당 국가의 녹색 성장 우선순위를 조기에 파악하여 프로젝트 구상이 최종 확정되기 전부터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협력을 통해 사업 구상의 완성도를 높이고, 후속 준비와 파트너십, 투자 유치를 위한 더 견고한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목적이다.
기후투자 파이프라인 확보 위한 협력
우리나라 재정경제부의 ‘한국 그린뉴딜 신탁기금(KGNDTF)’을 통해 지원받는 이 이니셔티브는 콜롬비아, 에티오피아, 인도네시아, 라오스, 페루, 필리핀, 르완다, 우간다, 우즈베키스탄, 베트남 등 10개국이 대상이며, 대상 분야는 청정에너지, 순환경제, 폐기물 관리, 지속가능한 교통, 산업 탈탄소화, 기후 회복력 인프라, 수자원 안보 등이다.
기업과 투자자 및 공공기관은 ‘한국 파트너 파이프라인’을 통해 각자의 역량, 관심 지역, 선호하는 역할 및 상업적 요구사항을 등록할 수 있다. 적절한 기회가 포착되면 GGGI는 오는 10월 서울에서 개최되는 ‘글로벌 녹색성장 주간’ 등을 활용해 각국 정부 및 프로젝트 팀과 현장 연수, 지식 교류, 실무 협의 등을 주선할 예정이다.
이 이니셔티브의 핵심은 ‘체계적인 조기 협력’에 있다. 초기 단계의 대화가 즉각적인 투자로 직결되지는 않더라도, 시장 통찰력 부족으로 인한 시행착오를 예방하는 효과가 크다. GGGI는 사업 구상이 유연한 초기 단계부터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각 주체들을 긴밀히 연결함으로써 프로젝트의 타당성을 높이고 실질적인 협업 모델을 발굴하여 후속 사업화와 금융 조달을 위한 단단한 토대를 마련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