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공적 연기금은 ESG를 넘어 환경·사회적 변화를 창출하는 임팩트 투자를 전체 자산군으로 확대하고 있다. 위험·수익뿐 아니라 임팩트를 핵심 투자 기준으로 삼으며 포트폴리오와 투자 전략을 재편하는 추세다.
[한경ESG] 투자 트렌드
과거 기업의 기후변화(E)나 이사회 독립성(G) 등 비재무적 위험을 관리하는 데 초점을 맞추던 글로벌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의 무게중심이 근본적으로 이동하고 있다. 단순한 리스크 완화를 넘어, 투자를 통해 환경과 사회에 실질적이고 긍정적인 변화(impact)를 창출하는 ‘임팩트 통합(Impact Integration)’ 방식이 글로벌 자본시장의 새로운 주류 전략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극단적으로는 특정 기업이 지속가능성 이슈 전반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더라도, 연기금이 목표로 하는 기후변화 전환 등의 임팩트를 창출하지 못하거나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면 포트폴리오에서 전면 배제되는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공적 연기금, 임팩트 투자 전면 확대
그동안 벤처캐피털(VC)이나 인프라 투자 등 사모시장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임팩트 투자를 공모 주식과 채권 등 전체 자산군으로 끌어올린 주역은 글로벌 공적 연기금이다. 국제임팩트투자네트워크(GIIN)의 설문에 따르면 3조5000억 달러 규모의 자산을 가진 22개 기관투자자(연기금 16곳, 보험사 6곳)는 임팩트 투자 목표를 수립하고 있으며, 이 중 절반 이상이 2023년 이후 해당 목표를 설정했다. 이들이 운용하는 글로벌 임팩트 투자 전체 자산은 2024년 말 기준 약 1조5710억 달러(약 2180조 원)로 추정된다. 임팩트 투자 재원 중 연기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34%로 가장 크며, 은행(14%)과 보험사(12%)가 그 뒤를 이었다.
연기금들이 임팩트 투자를 전면 확대하는 이유는 이들이 자본시장 전체에 투자하는 ‘유니버설 오너’기 때문이다. 거대한 규모의 자산을 장기적으로 운용하는 연기금의 특성상 기후위기나 빈곤 등 시장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시스템적 리스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따라서 저평가된 기업을 발굴해 초과 수익(알파)을 창출하는 전통적 주주행동주의를 넘어, 시장 전체의 시스템적 리스크를 낮춰 전체 수익률(베타)을 방어하려는 ‘베타 행동주의’의 일환으로 임팩트 투자에 뛰어들고 있는 것이다.
2D(위험·수익)에서 3D(위험·수익·임팩트) 투자로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는 곳 중 하나는 세계 최대 공적 연기금인 일본의 연금적립금관리운용독립행정법인(GPIF)이다. GPIF는 2025년 3월 ‘지속가능성 투자 정책(Sustainability Investment Policy)’을 제정하고, 기존의 지속가능성 투자를 ‘ESG와 임팩트를 고려한 투자’로 재정의했다. 나아가 2025년 7월에는 주식 ESG 지수와 펀드를 신규 공모하며 긍정적인 지속가능성 효과, ESG 관련 핵심성과지표(KPI) 설정, 그리고 안정적인 시장 평균 수익률 달성이라는 세 가지 핵심 요구사항을 운용사에 제시했다. 일본 정부의 8대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우선순위에 발맞춰 전반적인 투자 전략에 임팩트 접근 방식을 적극적으로 결합하고 있는 것이다.
네덜란드에서 두 번째로 큰 의료 부문 공적 연기금인 PFZW도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2520억 유로를 운용하는 PFZW는 2021년 기존의 위험과 수익이라는 2차원 투자를 넘어 임팩트를 추가한 3차원(3D) 투자로 전략을 전면 수정했다. 이를 위해 자산 운용을 전담하는 PGGM은 기존 책임투자팀을 해체하고 전사적 포트폴리오 관리 팀으로 통합했다.
백지 상태에서 수익·리스크·임팩트 기준을 통과한 자산으로만 포트폴리오를 구성한 결과, PFZW의 공모주식 투자종목 수는 기존 6000여 개에서 800~850개로 대폭 축소되었다. 포트폴리오의 추적오차 역시 기존 50bp에서 300bp로 크게 증가했지만, PFZW는 이러한 집중 투자가 장기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이들은 2030년까지 네덜란드 환자당 기대수명 0.27년 연장, 15메가톤의 이산화탄소 배출 회피, 그리고 압박받는 의료 시스템 부담 완화를 위한 6000개에서 1만 개의 일자리 자동화라는 매우 구체적인 정량 임팩트 목표를 수립해 실천 중이다.
“필요하면 빅테크도 매각” 엄격한 원칙 내세운 임팩트 투자자
임팩트 창출을 위해 과감히 단기 수익률 하락을 감수하는 연기금도 등장했다. 네덜란드 최대 연기금인 ABP는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관점에서 가장 엄격한 ESG 스크리닝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2021년부터 화석연료 생산 기업에 대한 투자를 중단한 데 이어, 2024년에는 플랫폼 윤리와 개인정보 침해 등 지배구조 및 디지털 인권 문제를 이유로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과 메타(페이스북)를 주식 포트폴리오에서 전면 배제했다. 2024년 정기 주주총회에서는 일론 머스크의 560억 달러 규모 보상안에 반대표를 던진 후 테슬라 주식을 전량 매각하는 강수를 두기도 했다.
강화된 스크리닝 정책을 본격 적용한 2025년, ABP의 주식 포트폴리오 수익률은 벤치마크를 1.2%포인트 하회하며 수익률 희생에 대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러나 ABP는 단기적 약세를 인정하면서도 2030년까지 총 300억 유로(기후 전환 100억 유로, 생물다양성 10억 유로 등)를 임팩트 투자에 배정하며 전략을 밀어붙이고 있다.
반면 영국의 지방공무원 연금 중 최대 규모인 GMPF는 ‘지역 기반 임팩트 투자(PBII)’라는 독자적인 프레임워크를 통해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GMPF는 전체 자산의 5%를 현지 투자에 배분하도록 규정을 수정했으며, 2024년 말 기준 약 15억 파운드를 북서부 잉글랜드(North West)와 그레이터 맨체스터(Greater Manchester) 지역의 주거, 중소기업 금융, 청정에너지 등에 투자했다. 지역 주민의 삶의 질 개선과 지역경제 발전을 투자 수익과 동일선상에 놓고 있는 셈이다.
임팩트 측정의 과학화… ‘ToC’와 ‘ABC 분류법’의 도입
연기금들이 임팩트 투자를 전체 자산으로 확대하면서, 가장 큰 과제로 떠오른 것은 ‘임팩트를 어떻게 과학적으로 측정하고 증명할 것인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대부분의 기관은 ‘변화 이론(Theory of Change, ToC)’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ToC는 투입부터 활동, 산출, 결과, 그리고 최종적인 임팩트에 이르는 인과관계를 구조화한 프레임워크다. 사후적으로 성과를 측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조직이 원하는 결과를 먼저 설정한 뒤 이를 달성할 수 있는 투자 활동을 역으로 찾아나가는 진일보한 방식이다.
투자 성과를 관리하는 데는 ‘ABC 분류법’이 널리 쓰이고 있다. 이는 투자의 임팩트를 △피해 방지(Avoiding harm) △사람과 환경에 긍정적 기여(Benefiting stakeholders) △문제 해결에 기여(Contributing to solutions) 등 세 단계로 구분하는 방식이다. 모든 자산군에 이 기준을 적용함으로써, 한 기관의 임팩트 투자 포트폴리오가 얼마나 적극적인지 진단하고 펀드 매니저의 투자 목표를 구체적으로 설정할 수 있게 해준다.
이나예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임팩트 투자는 아직 상장 주식이나 국채 등 전통 자산에 적용할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부족하고, 시장 평균 수준의 수익을 보장할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도 더 필요한 초기 단계”라면서도 “지속가능투자의 가장 적극적인 플레이어인 공적 연기금이 임팩트 투자를 전면 확대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향후 자본시장에 거대한 지각변동을 예고하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