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허싱은 기업의 지속가능성 성과 결과와 목표에 대해 침묵하는 현상이다. 그린허싱은 결국 지속가능성에 대한 기준과 경쟁을 늦추고 더 낮은 기준으로 회귀를 이끌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린워싱보다 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한경ESG] ETC - 메가폰
최근 글로벌 비즈니스 현장에는 기이한 정적이 흐르고 있다. 그동안 실적보다 부풀려진 친환경 광고가 문제였다면, 이제는 기업들이 강력해진 규제와 대중의 비판을 두려워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실행이나 성과에 대해 입을 닫아버리는 ‘그린허싱(greenhushing, 녹색 침묵)’을 전략적으로 선택하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올해 9월 유럽연합(EU)에서 발효 예정인 ‘녹색 전환을 위한 소비자 권한 강화 지침’은 기업의 그린워싱(greenwashing, 녹색 위장) 행위에 대해 연간 매출액의 최대 4%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한다. 이와 유사한 법안들이 영국, 싱가포르, 호주, 미국 등 전 세계 각지에서 도입하면서 기업들은 ESG 커뮤니케이션에 극도로 신중해지고 있다. 지난해 미국 상장기업 상위 3000개 기업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발간 건수는 절반 이상 급속히 감소했다.
그린워싱보다 더 무서운 그린허싱
그린워싱이 임팩트를 실제보다 과장해 대중의 눈을 속인다면, 그린허싱은 정치적 노출과 시민사회의 반발, 대중의 평판이 손상되는 것을 우려해 지속가능성 분야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행 결과와 목표에 대해 침묵을 택한다. 그린워싱과 그린허싱 모두 대중의 이해를 왜곡하지만, 그린허싱은 실제 ESG 경영활동을 보이지 않게 만들어 대내외 가치 인식을 저해하고 예산, 경영 우선순위, 투자를 감소시키며, 결국 지속가능성에 대한 기준과 경쟁을 늦추고 더 낮은 기준으로 회귀를 이끌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린워싱보다 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기업들의 ESG 행동이 후퇴하고 있다는 지적이 확산되는 반면, 실제 데이터는 역설적인 실태를 보여준다. 지난해 글로벌 주요 대기업 사례를 연구한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따르면 ESG 전략을 실제로 철회한 기업은 8%에 불과하며, 85%는 현상 유지 또는 오히려 노력을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가시성으로, 많은 조직이 여전히 행동을 지속하면서도 이에 대해 소통하기를 주저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 비랩(B Lab)은 광고·마케팅 산업의 기후 행동을 지원하는 비영리 단체인 크리에이티브 포 클라이밋(Creative for Climate)과 협력하여 기업이 ESG 노력과 성과를 용기 있게 말할 수 있도록 실무 지침인 ‘그린샤우팅 가이드(THE GreenSHOUTING Guide)’를 무료로 배포했다.
가이드는 세 가지 단계로 구성된 프레임워크를 제시한다. 첫째는 기업 운영의 본질과 연결된 견고한 지속가능성 전략 수립이다. 둘째는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객관적으로 검증된 성과다. 셋째는 브랜드 정체성에 맞춰 조율할 수 있는 7가지 커뮤니케이션 구성 요소一어조, 단순함, 풍부함, 파격성, 문화, 감정, 겸손一를 활용하는 방법으로 구체적인 기업의 마케팅 사례와 함께 제시한다. 가이드는 지속가능경영 성과에 목소리를 냈을 때 예상되는 내부 반발이나 외부 비판에 대해서도 회복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대비 방안도 담고 있다.
그린샤우팅, 기업의 핵심 가치와 연결
1만 개가 넘는 비콥(B Corp) 인증 기업들은 브랜드 성격에 따라 특유의 방식으로 과감하게 사회환경적 문제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는 지난해 창립 52년 만에 전사 통합적인 책임경영 보고서인 ‘프로그레스 리포트(Progress Report)’를 발간하며, 성과와 동시에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투명하게 공개했다. 지속가능성과 윤리성을 갖춘 소재 사용률은 84%를 달성했지만 전체 제품의 85% 이상이 여전히 수명종료 솔루션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으며, 2차 폐기물을 재활용해 만든 합성섬유 사용은 6%밖에 되지 않는다. 파타고니아는 보고서를 통해 성과를 자축하기 위함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문제 해결에 함께 참여하기 위해 투명하게 공유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프랑스 윤리적 스니커즈 브랜드 베자(VEJA)는 한계 프로젝트(Project Limits)를 통해 현재 신발을 제작하는 시스템 내에서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를 인정하고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솔직하게 소통하고 있다. 스니커즈에 사용하는 일부 부품은 윤리적으로 조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며, 염색하는 데 사용되는 안료는 품질의 이유로 천연 제품을 사용하지 못하고, 아직 대체재를 찾지 못한 가죽의 생태적 대안을 찾는 것이 주요 목표임을 밝히고 있다. 베자는 투명성을 핵심 가치로 내세우고 전통적인 광고 없이 50개국 이상에서 판매되고 있다.
브라질에 본사를 둔 글로벌 화장품 그룹 나투라(Natura)는 재무적 및 사회환경적 관점에서 기업의 가치를 측정하는 통합 임팩트 보고서를 꾸준히 발간하고 있다. 보고서는 기업의 가치를 자연 자본, 사회적 자본, 인적 자본, 생산 자본이라는 네 가지 유형의 관계로 바라본다. 생활 임금 지급, 경력직 판매원들의 임금 증가 등 사회적 자본과 인적 자본 측면에서 긍정적인 사회 수익이 발생한 반면, 원자재 팜유로 인한 토양과 수질 오염, 플라스틱 사용으로 인한 자원 고갈과 기후변화 등 자연 자본 측면에서 연간 10억7000헤알(약 3200억 원)의 순 부정적 임팩트를 초래했다고 밝히고 있다. 나투라는 한 영역의 긍정적 성과가 다른 분야의 상쇄 메커니즘이 되어서는 안 되며, 각 범주에서 동시에 긍정적 임팩트를 창출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정보 공개와 투명성은 브랜드 신뢰도에 영향
이처럼 성과뿐만 아니라 실패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 공유하는 브랜드가 사랑받는다는 것은 데이터로도 증명된다. 28개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에델만 신뢰도 지표에 따르면, 대중은 더욱 단호한 기업의 기후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응답자의 55%는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브랜드 제품을 구매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답했으며, 53%는 기업이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기울이는 노력을 알리지 않으면 그 기업은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은폐할 의도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사회환경적 책임을 소홀히 하는 브랜드는 고객 충성도와 신뢰를 잃을 위험에 처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소비자는 견고한 전략을 바탕으로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려는 목표와 행동에 대해서 소통하는 기업들을 분별하고 있다. 대중은 기업이 사회환경적 성과를 부풀릴 때보다 한계와 실패를 인정하고 더 나은 목표로 나아가는 브랜드에 환호한다. 투명한 ESG 커뮤니케이션은 기업의 생존과 회복탄력성을 위해 계획된 비즈니스 전략이다. 침묵은 중립적이지 않다. 침묵은 단기적으로 기업을 비판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겠지만 인식을 왜곡하고 신뢰를 저해하며 우리 모두의 발전을 늦추는 대가를 가져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