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클리마테크 현장은 기후테크가 단일 기술뿐만 아니라 데이터와 인프라·금융·운영 모델이 결합되는 산업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도시와 기업이 실제로 요구하는 것은 각 기술이 만든 성과를 관리하고 검증하는 체계다. 보스턴은 이미 이를 묻고 있다.
[한경ESG] 러닝 - 2026 보스턴 클리마테크
보스턴 클리마테크 메인 세션에서 김인현 한국공간정보 대표가 AI 기반 도시 탄소 MRV 플랫폼을 발표하는 모습. 사진=저자 제공
최근 필자는보스턴에서 열린 ‘클리마테크(ClimaTech) 2026’에 참여하며 기후테크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올해 3회를 맞은 보스턴 클리마테크는 ‘보스턴 기후 주간(Boston Climate Week)’의 대표 행사 중 하나다. 보스턴 기후 주간은 테크·금융·비즈니스 분야 글로벌 리더들이 모여 기후 기술의 상용화와 가속화를 논의하는 자리다. 올해는 5월 3일부터 10일까지 진행됐으며 100개가 넘는 부대 행사에 5000명 이상이 참여한 대형 기후 기술 주간이었다.
보스턴에서 이런 행사가 열리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하버드대와 매사추세츠공과대(MIT), 보스턴컨설팅그룹 등 세계적 지식·기술·전략 역량이 밀집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셸 우 보스턴 시장과 마우라 힐리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직접 참석, 기조연설을 통해 지역 리더십의 강한 의지를 보여줬다. 기후변화 대응은 이제 환경 부서만의 과제가 아니다. 기술, 금융, 정책, 대학, 스타트업, 산업계가 함께 움직여야 하는 복합 산업이 됐다. 클리마테크 현장은 이러한 변화가 실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보여주는 실험장 같았다.
혁신기술의 상업화 생산설비 장벽 논의
클리마테크 행사 프로그램은 전시와 세션, 네트워킹, 투자자 미팅이 촘촘히 결합된 방식으로 운영됐다. 5월 4일에는 프런티어 엑스포(Frontier Expo), 오프닝 키노트, 브레이크아웃 세션과 패널, 투자자와 기업을 연결하는 캐피털 커넥트(Capital Connect), 보스턴 기후 주간 환영 리셉션이 이어졌다. 5월 5일에는 오프닝 리마크, 전시, 네트워킹, 브레이크아웃 세션, 클로징 리마크가 진행됐다. 공식 프로그램 트랙도 단순한 기술 전시를 넘어 자본과 고객 연결, 스마트 인프라, 에너지 수급 최적화, 기후 회복력, 인력 전환, 글로벌 경쟁력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
올해 클리마테크의 가장 뜨거운 화두는 스타트업이 겪는 최초 상업화 생산설비 장벽이었다. 혁신기술이 실험실을 나와 첫 번째 공장을 지을 때 마주하는 고비를 넘기 위해 벤처캐피털(VC)의 초기 자금과 대형 자산운용사의 매칭, 그리고 기업 바이어들의 선구매 계약(off-take agreement)을 결합하는 다자간 파트너십 구조가 깊이 있게 논의되었다. 또 대기업들이 기후 기술 스타트업들의 솔루션을 선제적으로 도입해 실증(파일럿)을 할 수 있도록 돕는 협력 프레임워크도 제시됐다.
또 정보기술과 인프라의 중요성도 언급됐다. 전력망 최적화를 위한 인공지능(AI) 기반의 전력 수요 예측, 분산형 에너지 자원(DER), 그리고 실시간 수요반응(DR) 등 기술이 강조되었다. 또 송배전망 혁신과 장주기 에너지저장장치(ESS), 핵심 광물 안정적 확보 등이 기후 안보 측면에서 논의됐다. 지열에너지의 첨단화와 커먼웰스퓨전시스템스가 이끄는 핵융합 기술, 저탄소 제조 솔루션들, 그리고 보스턴의 강점인 로봇 기술을 기후 기술에 접목한 사례들이 ‘이노베이터스 플레이그라운드’를 통해 시연됐다.
전시장에는 미국 각 주의 기업뿐 아니라 유럽, 아시아, 중동, 중남미, 아프리카, 중국, 일본, 호주 등 다양한 지역의 기업과 기관이 함께했다. 규모만 보면 초대형 전시회라기보다 선별된 기후 기술 장터에 가까웠다. 그러나 오히려 그 점이 장점이었다. 관심이 분명한 사람들이 모인 만큼 단순한 명함 교환보다 실증사업(PoC), 데이터 연계, 공동 사업화 가능성을 깊이 논의하기 좋은 분위기였다. 전력망, 탄소저감 소재, 스마트 제조, 로보틱스까지 현장에서 논의된 주제도 폭넓어 기후 기술이 더 이상 특정 설비나 단일 장비의 문제가 아니라, 데이터와 인프라, 금융, 운영 모델이 결합하는 산업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프론티어 엑스포 현장. 사진=저자 제공도시 탄소 데이터 운영체계에 쏠린 관심
이 자리에서 필자는 가온아이의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인공지능전환(AX) 기술력과 한국공간정보통신의 탄소중립 솔루션을 결합한 인공지능(AI) 기반 도시 탄소중립 MRV 플랫폼(AI-Enabled Urban Carbon MRV Platform using Digital Twins)을 발표했다. 한국공간정보통신이 30여 년간 축적해 온 공간정보·디지털트윈 엔진(공간 인텔리전스)과 가온아이의 SaaS 워크플로 플랫폼(워크플로 인텔리전스)의 결합이 핵심이다. 이번 참가는 경기환경에너지진흥원이 추진한 경기도 유망 기후테크 기업 해외진출 지원사업을 통해 이뤄졌다.
당초 우리 발표는 소규모 세션에 배정됐다. 그러나 발표 후 도시 전체 차원의 탄소 데이터를 측정·계획·실행·보고·검증으로 연결하는 접근에 관심이 이어져 메인 행사장에서 한 차례 더 발표할 기회를 얻었다. 두 번째 발표에서는 미국·유럽·중남미의 도시 정책 담당자, 기후 기술 투자자, 연구자들이 도시 단위 탄소 데이터의 운영체계를 자국 도시나 기관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묻는 후속 논의가 이어졌다. 대부분의 기술이 특정 분야의 감축이나 효율화에 집중했다면, 우리가 제안한 방향은 도시 전체의 탄소중립을 하나의 운영체계로 관리하는 방식이었다. 메인 행사장에서의 호응은 바로 이 차별성, 곧 ‘점의 기술’이 아니라 ‘면의 운영체계’에서 나왔다고 본다.
보스턴 현장에서 만난 글로벌 도시 정책 담당자와 투자자들의 질문도 결국 이 지점에 닿아 있었다. 어떤 공간정보 위에서, 어떤 디지털트윈으로, 어떤 검증 체계를 만들 것인가. 기존 탄소관리 시스템은 배출량을 계산하거나 탄소지도를 보여주는 데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다. 중요한 것은 탄소 데이터를 실제 기후행동으로 전환하고, 그 결과를 검증 가능한 자료로 남기는 일이다.
그린타운랩스 클라이밋 살롱에서 기후 문제 정의와 협력 모델을 토론하고 있다. 사진=저자 제공기후 기술은 운영의 문제다
이번 탐방에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기후 기술의 중심이 장비와 부품에서 플랫폼과 운영체계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에너지 절감 장치도 필요하고, 친환경 소재도 필요하다. 그러나 도시와 기업이 실제로 요구하는 것은 각 기술이 만든 성과를 한데 모아 관리하고 검증하는 체계다. 부족한 것은 데이터가 아니라, 데이터를 검증 가능한 성과로 엮어내는 운영체계와 표준화된 플랫폼이다.
보스턴 클리마테크 현장에서 확인한 글로벌 시장의 갈증도 정확히 이 지점이었다. 앞으로 탄소중립 경쟁력은 좋은 목표를 세우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목표를 실행하고, 실행 결과를 측정하며, 검증 가능한 형태로 설명하며 운영하는 능력에서 나온다. ESG도 선언과 홍보의 단계를 넘어 운영체계의 문제로 이동하고 있다. 보스턴 탐방은 이 방향이 단지 국내의 고민이 아니라 글로벌 시장이 이미 묻기 시작한 질문임을 확인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