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 시행 전 노조법상으로는 원청 기업이 하청 노동조합과 단체교섭을 할 의무가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2016년 발생한 사건에서 구 노조법 해석에 노란봉투법 개정 취지를 반영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조희대 대법원장)는 21일 HD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조가 원청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청구한 사건에서 상고를 8 대 4로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했다. 원심은 사내 하청업체가 소속 근로자에 대해 독자적 지휘·감독권을 행사했고 양측 근로자들이 혼재 근무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들어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를 부정했다.
이 사건은 노조가 2016년 단체교섭을 요구했으나 거부당하면서 시작됐다. 노조법은 2025년 9월 개정되면서 제2조 2호에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자도 사용자로 본다”는 조항이 추가돼 올해 3월 시행됐다. 그러나 경과 규정이 없어 2016년 발생한 이 사건에는 옛 노조법이 적용됐다.
이번 선고의 최대 관심사는 옛 노조법 사건에서 노란봉투법 개정 취지가 반영될지였다. 다수 의견은 “옛 법 사건에서 종전 법리를 변경해 신법과 유사한 법리를 창설·적용하려는 시도는 적절하지 않다”고 판시했다. 1986년 확립된 종전 법리는 “단체교섭의무를 부담하는 사용자란 근로자와 명시적·묵시적 근로계약관계를 맺고 있는 자”라는 원칙이다.
다수 의견은 노란봉투법 개정 이유서에 ‘실질적 지배력이 있는 자도 사용자에 포함한다’고 명시한 것 자체가 기존 판례에서는 원청이 사용자에 해당하지 않았음을 입법자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는 논리를 들었다. 단체교섭 거부가 형사처벌 대상인 부당노동행위인 만큼 사용자 개념을 엄격히 해석해야 한다는 점도 근거로 삼았다.
이흥구 오경미 신숙희 마용주 대법관 등 4인은 반대 의견을 냈다. 노란봉투법은 “새로운 입법이 아니라 하급심·노동위원회의 옛 법 해석을 반영해 명확히 규정한 것”이라며 “종전 법리는 논리적 정합성과 헌법정신 모두 상실했다”고 직격했다.
이번 판결은 옛 노조법이 적용되는 사건에 국한된다. CJ대한통운 현대제철 한화오션과 백화점·면세점 업계 등이 옛 노조법에 따른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대법원 다수 의견은 “노란봉투법이 적용되는 사건에서는 ‘실질적 지배·결정 지위에 있는 자’의 개념을 입법 목적에 맞게 해석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금속노조는 판결 직후 “노동 3권을 짓밟은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HD현대중공업은 “판결을 존중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