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ESG] 데이터로 본 기업 거버넌스 ②·완

정부가 최근 기술특례상장 요건 완화와 코스닥 벤처펀드 세제 혜택 확대 등을 통해 혁신기업의 시장 진입을 유도하고 투자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 일각에서는 이러한 정책이 자칫 부실기업 양산으로 이어지거나, 과거처럼 ‘반짝 급등 후 장기 부진’이라는 실패를 되풀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투자자 보호 장치가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기업 경영 부진으로 주가가 하락하는 것은 투자자가 감내해야 할 시장 리스크의 일부다. 하지만 경영 악화 끝에 상장폐지에 이르거나, 더 나아가 불투명한 세력이 경영권을 장악한 뒤 외부 자금으로 기업 규모만 키우고 핵심 자산을 빼돌린 후 회사를 방치하는 약탈적 행태는 반드시 근절돼야 한다. 이는 자본시장의 신뢰와 자본주의 질서를 훼손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상장폐지된 코스닥 기업들의 거버넌스 문제를 분석하고자 한다. 특히 무자본 인수합병(M&A)이 의심되는 사례들에 주목한다. 무자본 M&A는 실질적 인수 주체를 숨긴 채 대규모 메자닌(Mezzanine) 발행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이를 바탕으로 경영권을 장악하는 방식이다. 이후 기업 자산을 대규모로 유출해 재무구조를 악화시키고, 결국 감사의견 거절과 상장폐지로 이어지게 만든다. 그 결과 기업은 껍데기만 남고, 투자자들은 투자금을 대부분 잃게 된다.

무자본 M&A의 폐해

우리나라 200대 기업의 거버넌스 분석에 사용한 두 가지 지표를 사용했다. 형식적인 ‘구조’와 실제 발생한 ‘행동’ 사이의 격차를 측정하는 지표다. 구조적 격차 점수(Structure Gap Score, SGS)는 독립이사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선출 등 개정 상법이 요구하는 거버넌스 수준과 기업의 실제 구조 사이의 격차를 정량화한 점수다. 거버넌스 행동 점수(Governance Behavioral Score, GBS)는 2015년부터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횡령, 배임, 분식회계 등 기업이 실제로 일으킨 거버넌스 관련 사건 사고 이력을 측정한 지표다. GBS와 SGS는 높을수록 나쁘다.

연구팀은 기업별로 점수를 부여하고 산점도를 그렸다. 데이터의 왜곡을 피하려고 중앙값을 사용하여 4분면으로 나눴다. <그림 1>은 세 개 집단의 거버넌스 가로축(SGS)과 세로축(GBS) 분포다. 대상은 현재 거래소와 코스닥에 상장 중인 기업들(살아 있는 기업, 회색), 2015-2025년 사이에 상장폐지된 코스닥 기업(상폐 기업, 파란색)이고, 그리고 무자본 M&A를 당한 것으로 의심되는 곳이다(의심군, 빨간색).

상장폐지 코스닥 기업들의 거버넌스 리스크 분석해보니


투자자가 기업의 거버넌스 리스크에 대한 우려는 내려놓고 투자할 수 있는 영역은 3사분면이다. 거버넌스 구조도 갖추면서 거버넌스 행동도 양호한 안심 구역이다. 의심군은 1사분면(Bad/Bad), 2사분면(Good/Bad)에 73.7%가 분포돼 있다. 이 두 영역은 GBS가 높은 곳으로, 거버넌스 사건사고 이력이 많다는 뜻이다. 1사분면은 거버넌스 구조와 행동이 모두 미흡한 곳이니 의심군이 포진해 있는 것이 쉽게 이해가 된다.

그런데 2사분면은 거버넌스 구조는 상당 수준 갖춘 기업의 영역이다. 의심군이 거버넌스 구조를 갖췄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이것은 일종의 측정의 함정이다. 거버넌스 SGS를 측정할 때 ‘사외이사 비율’이 크게 작용하는데, 의심군은 실질적으로 거버넌스를 개선시킬 의지가 없이 가짜 사외이사나 친인척 등을 동원해 표면적인 사외이사 비율 요건만을 형식적으로 충족시키는 방식을 취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대 기업 분석에서도 다뤘듯이 2사분면은 겉으로는 거버넌스 구조를 갖췄더라도 행동이 그에 못 미친, 쉽게 말하면 형식과 실제의 차이가 큰 곳이다.

회계·경영 신뢰 낮음에도 과도하게 자본조달을 한다면

거버넌스 SGS와 GBS는 상장폐지의 주요 원인인 재무구조 악화를 포착하는 지표가 아니다. 그럼에도 의심군이 도대체 어떤 거버넌스 행동을 보였기에 1사분면 비중이 높을까? 2015-2025년 동안 의심군과 일반 상장폐지 기업을 비교하면 의심군은 다음과 같은 적신호를 보였다.

먼저, 회계 신뢰성이 하락한다. 비적정 감사 의견(한정·의견거절·부적정)을 받은 건수가 일반 상장폐지 기업은 1.6%에 그친 반면, 의심군은 27개 중 무려 24개(88.9%)가 비적정 감사 의견을 받았다. 그다음, 경영이 불안정하다. 의심군은 최대주주가 평균 3.67번 바뀌었다. 즉 약 3년에 한 번꼴이다. 최대주주가 빈번하게 변경되면 경영이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과도하게 자본조달을 한다. 의심군은 전환사채(CB)와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이 평균 4.67건이었으나, 일반 상장폐지 기업은 0.22건이다. 과도한 메자닌 발행은 기회주의적 자본조달 가능성이 있다. 의심군이 보인 행태는 3~5년에 걸쳐 전형적으로 진행되는 무자본 M&A 5단계 과정과 흡사하다.

상장폐지 코스닥 기업들의 거버넌스 리스크 분석해보니


많은 투자자가 투자금을 날린 뒤에나 당했다는 것을 알아챈다. 기업의 최대주주와 경영진의 변동을 감지하고, 큰 규모의 자금 조달이 있을 때 자금 출처와 용도에 대해서 꼭 살펴보는 것은 스스로를 보호하는 최소한의 노력이다. 투자자를 보호하는 것은 기업을 육성하는 것만큼 중요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투자자를 홀대하고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정보와 시간에서 열세인 개인투자자들을 “살아 돌아오라”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보호할 방법을 생각해 내야 한다. 행정안전부에서 재난문자를 보내주듯 주식시장에도 재난 경고가 필요하다.

정승혜 이에스지데이터 연구위원
상장폐지 코스닥 기업들의 거버넌스 리스크 분석해보니